‘영웅’ 윤제균 감독, 한 컷 한 컷에 담은 진실과 진심 [인터뷰]
입력 2022. 12.29. 15:31:21

'영웅' 윤제균 감독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이 영화에 넣었어요. 공연엔 없죠. ‘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독립을 하면 고국으로 데려와 달라, 꼭 부탁한다. 우리 후손들이 그 유언을 지켜줬으면 좋겠다’라고. 유해를 찾는데 여러분이 도와주셨으면 해요. 감독의 입장이 아닌, 안중근의 영화를 만들고, 공부했던 인간 윤제균이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이죠. 유해를 꼭 찾아주셨으면, 그리고 도와달라고 그 자막을 넣은 이유는 ‘국뽕’이 아닌, 감독을 떠나 작품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유해를 찾는데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진실 되게, 진심을 담았다. 우리가 몰랐던 인간적인 안중근 의사, 그리고 독립투사들의 뜨거운 순간을 영화 ‘영웅’에 담아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113년의 시간을 거슬러 스크린에 재현해낸 윤제균 감독이다.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영화다. ‘해운대’(2009)와 ‘국제시장’(2014)으로 국내 최초 쌍천만 흥행을 기록한 윤제균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인 이 영화는 2009년 초연한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2019년 크랭크업 한 ‘영웅’은 당초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이자 하얼빈 의거 111주년을 맞아 2020년 8월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인해 개봉이 연기됐다. 영화는 2년의 기다림 끝에 개봉이라는 빛을 보게 된 것.



“결과적으로 보면 절반의 아쉬움과 절반의 감사함이 있어요. 아쉬움은 크게 두 가지예요. 관객들에게 빨리 선보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기다림이 길어졌어요. 두 번째 아쉬움은 본의 아니게 ‘아바타2’와 대결하게 됐죠. 2년 동안 배급팀과 이야기할 때 ‘영화는 최선을 다해 만들었기에 자신 있다. 나는 어느 시기에 개봉해도 상관없다. '아바타2'만 아니면 된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개봉하게 돼 부담감이 있어요. 고마움은 2년의 시간이 생기면서 후반 작업 시간이 길어졌죠. 완성도를 극강으로 끌어올리는 시간을 벌어 감사해요. 2020년 8월에 개봉했다면 몇 신은 재촬영을 못하고 개봉했을 거예요. 후반작업 시간이 길어지면서 재촬영, 사운드 믹싱 작업을 계속 하며 완성도는 2020년보다 훨씬 높아졌죠. 재촬영 장면들은 우리 영화에서 많은 관객에게 임팩트 있게 다가온 신들이에요. 설희(김고은)가 마지막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신, 마진주(박진주)와 유동하(이현우)가 마지막을 맞이하는 신, 조마리아(나문희) 여사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는 신, 안중근(정성화)의 ‘장부가’ 엔딩신이 다 재촬영이었죠. 2020년 8월에 개봉했으면 시간 때문에 재촬영을 못했을 거예요. 소위 말하는 임팩트 장면은 다 재촬영해서 완성도를 극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죠.”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크나큰 도전이었을 터. 특히 오랫동안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던 창작 뮤지컬이었기에 그 부담은 더욱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윤제균 감독은 공연을 넘어선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 시도된 바 없는, 촬영 현장에서 직접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녹음 방식을 채택, 라이브 가창 버전을 영화에 담았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명확한 건 제가 뮤지컬 영화 마니아라 ‘국제시장’ 다음에 뮤지컬 영화를 하기로 하고, 원작 ‘영웅’을 만든 게 아니에요. 뮤지컬 영화를 그렇게 선호하거나 그런 건 없었거든요. 뮤지컬 ‘영웅’을 보고 감명 받아 영화화한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뮤지컬 영화가 되어야 했어요. 그 다음부터 뮤지컬 영화에 대해 공부를 하고, 많이 보고 준비한 거죠. ‘과연 내가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와 ‘해내야한다’는 두 가지가 충돌하는 지점이었어요.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 ‘해내야한다’는 사명감. 두 지점에서 고민을 많이 했죠. 결론은 ‘해내야한다’였어요. 그때부터 올인했고요.”

윤제균 감독은 감정 연기와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라이브만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롱테이크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오리지널 넘버의 50%를 극장 환경에 맞게끔 재편곡하기도. 이로써 오직 영화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넘버를 추가해 특별함을 더해 완성해냈다.



“뮤지컬 공연을 똑같이 영화화 한다면 뮤지컬 공연 장면을 찍어 트는 게 낫잖아요. 영화화할 때 의미가 있어야 했어요. 뮤지컬을 본 사람들도 만족할 수 있고, 안 본 사람들도 만족할 수 있어야 했죠. 그래서 저는 절반의 새로움과 절반의 익숙함을 택했어요. 익숙함은 뮤지컬 공연의 가장 큰 장점인 살아있는 라이브, 현장에서 그대로 듣는 생생함이었죠. 공연을 본 사람들은 영화화했을 때 연기하다가 갑자기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툭 튀어나오면 생생함을 느낄 수 없잖아요. 공연 본 사람도 만족을 시켜야 했기에 라이브로 가야했어요. 현장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한 방식이 라이브였죠.”

‘영웅’은 오리지널 캐스트 정성화를 중심으로 김고은, 나문희, 조재윤, 배정남, 이현우, 박진주까지 세대를 망라한 배우들이 총 출동, 진한 울림을 더한다. 윤제균 감독은 공연에서 보이지 않고, 설명되지 않았던 인물들에게 서사를 주며 더욱 높은 파고의 감동을 만들어냈다.

“새로움에선 첫째, 내용과 형식이었어요. 공연과 다른 새로움은 안중근 중심으로 되기에 주변 인물들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이 별로 없었죠. 설희는 첩보원이 아니었어요. 공연에서는 특별한 미션이 없으니까 ‘왜 설희는 하얼빈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토를 처단하기 좋은 위치인데 못할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 개연성을 살리기 위해 영화에서는 이토가 하얼빈에서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 이야기하며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아내는 미션을 줬어요. 둘째, 안중근의 과거를 추가했죠. 공연에서는 간단하게 대사로 처리돼요. 과거 군인이었단 사실이었죠. 안중근 의사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반 이상이 모르더라고요. 대한의병군 참모중장이었어요. 김좌진처럼 큰 장군은 아니었지만 훌륭한 군인이었어요.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잘 모르더라고요. 공연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을 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해야하는 이유가 나오지 않아요. 그 터닝 포인트가 회령전투였죠. 진공작전이 두 번 나오는데 관객들에게 스펙터클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게 아닌, 왜 단지동맹을 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해야하는지 보여줘요. 제네바 협정에 의한 만국공법에 따르면 전쟁이 났을 때 포로는 죽여선 안 돼요. 대위법에 따라 일본군 포로, 민간인을 풀어줬는데 그 포로가 일본에 밀고를 해서 쳐들어오는 장면을 추가했죠. 그래서 안중근 부대가 전멸하고, 자신의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부하를 다 잃어요. 리더 입장에선 어떤 생각이 들겠어요. 가족이 불행해질 텐데 ‘가족 생각은 안 했나, 거사를 치르는 건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게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죠. 그런데 나 때문에 수많은 동지들이 죽었어요. 그 사람들도 다 가족이 있을 건데 말이죠. 안중근은 3년 안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지 않으면 자결하겠다고 다짐해요. 저희 영화 초반, 안중근 의사가 아내와 싸울 때 대사를 들어보면 귀에 들어올 거예요. 안중근 의사는 부잣집 아들이었거든요. 아내가 ‘독립자금 대다가 쌀집 망하고, 계몽운동 하다가 학교 망하고’라고 해요. 그 후 군인이 된 거죠. 그의 과거가 영화에 나와요.”



원작과 변주를 준 설정도 있다. 공연에서는 ‘링링’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한 역할을 소화했던 캐릭터가 영화 속에는 마진주로 변경된 것. 러브라인 대상도 달라졌다. 안중근을 짝사랑 하는 캐릭터지만 영화에서는 유동하와 연결된다. 고향에 처자식이 있는 안중근을 애정 한다고 지적받은 부분을 유동하와 짝을 지으며 드라마를 한층 강화시킨다.

“조우진, 박진주 남매는 원작에선 중국 남매로 나와요. 독립군을 도와주는 중국인이죠. 그걸 한국 남매로 바꿨어요. 뮤지컬 공연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 캐릭터가 한국말로 대사하고, 노래를 해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가 나오면 번잡스러워서 한국 남매로 바꾼 거죠. 박진주의 역할은 공연에서 안중근을 짝사랑 하는데 영화에서는 유동하를 짝사랑해요. 귀엽고, 아름다운 청춘들의 첫사랑, 설렘을 표현한 거죠. 관객들도 보면서 해피엔딩을 빌었을 거예요.”

일반적인 뮤지컬에는 캐릭터마다 대표곡, 넘버가 하나씩 주어진다. 이번 ‘영웅’에서도 정성화, 김고은, 박진주, 이현우, 나문희, 조우진에게 고루 주어졌다. 울림을 전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지만 고개를 갸웃 거리게 하는 넘버도 존재한다. 호불호 나뉘는 평을 받고 있는 일명 ‘만두송’이다.

“왜 그걸 넣었냐고 물어보신다면 호불호가 나뉠 거란 건 충분히 알고 있었어요. 수없이 모니터링을 했죠. 그럼에도 넣은 이유는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였어요. 모든 의사판단의 기준이 ‘흥행’이면 호불호 장면을 없애면 돼요. 제가 전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장면을 만들겠다고 했잖아요. 코믹하게 시작되긴 하지만 안중근을 만나는 시퀀스였어요. 뜬금없이 만나면 관객들은 더 의아해 할 거예요. 만두 노래는 우리 영화에서 유일하게 밝고, 경쾌한 넘버예요. 그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좋아하시죠. 귀엽고, 인물들도 만화같이 나오잖아요. 갑자기 밝은 노래가 나와서 어색하다는 분도 계세요. 그러나 결론은 완성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넣은 거죠.”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는 윤제균 감독. 그는 ‘영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뮤지컬을 보고 오열했어요. 제가 느낀 감정을 영화화해서 많은 관객들이 느끼셨으면 했죠. 그 느낀 감정을 오롯이 전하고 싶은 목표였어요. 뮤지컬을 본 사람으로서 그걸 제가 해야 했죠. 이 영화를 만들 때 목표가 두 가지였어요. 첫째, 뮤지컬 ‘영웅’을 본 관객들을 절대 실망시켜선 안 되겠다. 원작을 좋게 본 사람들은 영화에 대한 판단, 평가 기준이 엄격할 것인데 그건 모든 감독들이 지녀야할 숙제거든요. 원작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어요. 둘째,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잖아요. ‘헤어질 결심’이 칸을 휩쓸고,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휩쓸고,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휩쓴 현재, K콘텐츠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찾아볼 텐데 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1번도, 2번도, 3번도 실력이었죠. 네임벨류, 티켓파워, 인지도, 선호도, 영화 주인공이 가져야할 덕목이 있잖아요. 200억 가까이 되는 돈(제작비)인데 흥행을 목표로 한다고 하면 감안해야할 일이었어요. 그런데 ‘이 역할을 과연 우리나라에서 더 잘할 배우가 있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끝까지 정성화를 캐스팅했어요. 영화를 공개하기 전, 수많은 의심을 받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정성화까지. 영화가 공개되는 지금, 저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정성화 배우가 증명해줬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정성화가 저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했는데 저는 반대죠. 증명해줘서 고마워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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