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버스 걸그룹 메이브의 의의
- 입력 2023. 01.26. 14:10:36
- [유진모 칼럼] 리들리 스캇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1993)의 주인공 데커드는 복제 인간을 제거하는 경찰이다. 반란을 일으킨 복제 인간 로이 일당을 소탕하던 중 만난, 자신이 복제 인간임을 모르는 레이첼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도주한다.
메이브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역시 복제 인간이었다. 이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복제 인간이 임신과 출산까지 한다. 이전의 복제 인간에게 가짜 기억을 주입했다면 이제는 진짜 기억을 보유하게 된 것.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블레이드 러너 K는 가상의 연인과 관계를 맺는다. '가상섹스'는 이미 표준국어대사전에 어엿하게 등재된 단어이다. 이젠 K-팝이다. 과연 대중음악 세계에서 메타버스 세계는 어떻게 펼쳐지고, 가상의 가수들은 어떤 활약을 펼칠 것이며, 대중은 '그들'과 그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시우, 제나, 타이라, 마티로 구성된 4인조 버추얼 걸 그룹 메이브가 25일 첫 번째 싱글 음반 'PANDORA'S BOX(판도라스 박스)'를 발표한 후 28일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타이틀 곡 'PANDORA(판도라)'를 부르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이들은 실존이 아닌 가상의 인물들이다. 넷마블에프앤씨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협업해 설립한 종합 미디어 콘텐츠 제작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가 '음악을 통해 현실과 가상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겠다.'라는 야침찬 포부로 제작한 결과이다.
요즘 아이돌 그룹에 있어서 음악과 춤만큼이나 중요한 게 세계관이다. 마치 할리우드의 마블 코믹스를 연상케 한다. 메이브 멤버들은 인간의 감정이 삭제된 미래 세계 이디피아(IDYPIA)에서 감정의 자유를 찾아 지구 곳곳에 불시착했다. 시우는 3월 2일 대한민국 제주에, 제나는 12월 25일 프랑스 파리에, 타이라는 7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에, 마티는 11월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각각 떨어졌다.
멤버들의 무의식에 각인된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일깨운다.'라는 목적 의식을 실행하는 게 이들의 미션이다. 'PANDORA'는 세븐틴, 레드벨벳, 몬스타엑스 등의 히트 곡을 만든 맥스쏭(Maxx Song), 카일러 니코(Kyler Niko)가 작업했다. 아이브, 아이즈원 등을 도운 프리마인드(FREEMIND)가 퍼포먼스를, 아이유, 에스파, 엑소 카이 등과 작업한 플립이블(FLIPEVIL)이 뮤직비디오를 각각 연출했다.
그야말로 메이브를 탄생시킨 스태프는 쟁쟁하다. 이제 남은 숙제는 메이브를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만 남았다. 만약 성공한다면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의 포부대로 최소한 100년은 지속되는 아이돌 그룹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술이야 전문 기술자들의 몫이니 소비자에게는 감수성이 중요하다. 물론 시간과 공간의 확장성도 성공 여부에 깊게 개입할 것이다. 메이브는 메타버스 세계의 인물이니 확장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들을 탄생시켰고, 앞으로 그들의 캐릭터와 활동 영역을 만들어 줄 기술자들의 기술과 정서 문제일 따름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게 이들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감수성이다. 일단, 요즘 사운드 관련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됐으므로 감수성 어필에서는 무리가 없을 듯하다. 소비자들의 감정을 파고들 음색과 가창력은 웬만한 인간 가수보다 나을 테니까.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편곡 등 역시 훌륭한 스태프만 동원한다면 BTS는 아니더라도 블랙핑크, 트와이스, 뉴진스, 르세라핌 등과의 경쟁을 한 번 해볼 만하다. 진짜 사람이 움직이는 게 아니므로 기술과 시간만 허락한다면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다양한 배경을 바탕으로 생산해 냄으로써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가장 큰 핸디캡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성이 없지만 그런 만큼 대중과 직접 만날 수 없다는 약점이 공존한다. 요즘 미디어는 일방향이었던 구미디어와 달리 쌍방향 소통이다. 만약 현재의 미디어 문화가 연예인이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날리면 대중이 그걸 냅죽 받아 소비하는 형태라면 메이브의 단점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팬들은 팬 미팅이나 콘서트에 수십만 원을 아끼지 않고 쓸 만큼 직접적 양방향 소통을 선호한다. 심지어 온라인을 통해 '이러쿵 저러쿵, 미주알 고주알' 참견도 서슴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제는 팬들이 연예인을 돌봐 주고 관리해 주는 시대이다.
그런 결정적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메이브는 향후 '제2의', '제3의' 메이브를 양산하는 촉진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그 배경은 첫 번째 코로나19가 바꾼 문화 향유 형태이다. OTT의 대활성화에서 보듯 이제 대중은 자신의 방에서 '방콕'하며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두 번째, 버추얼 연예인은 연예 기획사 입장에서 아주 편한 '인물'이다. 전속 계약 기간, 전속금, 수익 배분 등으로 다툴 소지가 전혀 없다. 그냥 노예 이상으로 마구 부려 먹어도 불평 한 마디 안 하고, 소송도 안 한다. 만약 그들이 '터미네이터', 'A.I.', '엑스 마키나'처럼 인공 지능이라면 실제 지능처럼 진화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냥 가상 공간 안에 창조해 놓은 가상의 존재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의 취향에 따라 외모와 성격을 자유자재로 창조하고, 변형할 수 있다. '가상섹스'처럼 그냥 그때의 상황에 맞춰 대중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면 된다. 물론 정서적으로 인간미가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정서의 깊이는 반비례하므로 차차 그런 걱정이 희미해질 확률이 높다.
이제 영화, 드라마, 예능 등의 판도가 어떻게 될지가 관건이다. 즉 메이브가 아이돌 그룹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고, 향후 다른 대중문화 콘텐츠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 예의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진모 칼럼 / 사진=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