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외비’ 이성민, 그의 고민 [인터뷰]
- 입력 2023. 03.06. 15:46:48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요? 책을 받으면 먼저 작가와 감독을 봐요. 그리고 이야기가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첫 번째죠. 내가 해야 될 캐릭터가 잘 할 수 있을까, 캐릭터는 내가 할 수 있는, 남들과 다르게 할 수 있는 캐릭터일까 고민해요. 그런 캐릭터에 끌리는 것 같아요.”
'대외비' 이성민 인터뷰
‘대외비’는 1992년 부산,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과 정치판의 숨은 실세 순태, 행동파 조폭 필도가 대한민국을 뒤흔들 비밀 문서를 손에 쥐고 판을 뒤집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쟁탈전을 그린 범죄드라마다. 이성민은 극중 정치판을 뒤흔드는 숨겨진 권력 실세 순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런 캐릭터와 외모를 많이 해봐야지 싶었어요. 마침 순태가 비슷해서 그렇게 만들어가고 싶었죠. 물론 시나리오, 같이하는 배우들이 매력적이어서 선택하긴 했지만요.”
이성민은 짧은 삭발 머리와 수염, 지팡이를 짚은 채 절룩거리는 걸음걸이 등 디테일을 줘 순태를 완성해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악인의 모습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짧은 머리에 클래식한 수염이 있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제안했죠. 다리를 절룩이는 설정은 시나리오에 있었어요. 이것과 관련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고, 어떤 사연이 담겨있겠다는 것만 있었죠. 후반부, 국밥집에서 해웅과 이야기할 때 ‘악마랑 거래할 땐 한 쪽 다리를 내놔야 한다’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케 해요. 이 대사는 감독님에게 제안을 했어요. 다리에 관해서 한 번 설명해야지 않겠나 싶더라고요.”
순태는 1992년 부산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인물. 눈엣가시 같은 국회의원 후보 해웅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그의 정치 인생을 짓밟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순태의 ‘전사(前史)’에 대해 보여주지 않는다. 설명 또한 없어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기도.
“순태가 뭐하는 사람이고, 직업이 무엇인지 몰라요. 하지만 그 지역에서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사람 중 한 명이죠. ‘브로커’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중앙권력과 결탁되어 있고, 그들의 입맛에 원하는 정치적 인물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부여 받기도 하죠. 세상에 어쩌면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뒤에 있는 권력 중 권력으로 상상 속 인물이라 생각하고 연기했죠.”
이성민은 매 작품 선 굵은 연기력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 바. ‘공작’에서 북한 고위 간부 리명운으로 분해 뛰어난 연변 사투리와 절제된 리액션으로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을 완성했고,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박통 역으로 실존 인물과 완벽한 싱크로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올해 인기 속 종영된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 역으로 캐릭터와 일체된 연기력으로 대체불가 배우임을 증명시켰다.
“‘남산의 부장들’ 이후로 절대 권력을 가진 역할을 맡는 것 같아요.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하면 비슷한 이미지로 투자자나 감독들이 부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비슷한 결에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 비결은 없고,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를 주로 맡다보면 그 이미지가 고착화 될 수 있다는 부담도 따를 터. 이에 대해 이성민 역시 “좀 쉴 수 있는, 편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공감했다.
“늘 하는 고민이긴 해요. 근래 했던 작품들을 보면 ‘리멤버’가 오래 전에 찍었고, 그 다음에 ‘대외비’, ‘재벌집’ 순이었는데 순서대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더라고요. 나이든 역할을 할 때 완성도가 점점 나아졌는데 순서가 뒤섞여 나와 아쉬움이 있었어요.”
스스로를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을까.
“나를 넘어서야할 문제는 저뿐만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배우들의 고민일 거예요. 그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넘어선다는 게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캐릭터이고, 작품인데 캐릭터가 빛나기 위해선 작품이 잘 되어야 하는 건 변치 않는 원칙이죠. ‘재벌집’의 진회장 연기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았거든요. ‘대외비’의 순태도 사랑받아서 대중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했으면 해요.”
‘대외비’는 겉으로 드러나 있는 권력 이면이 얼마나 추하고 비열한지, 권력의 속성과 민낯에 대해 여실히 보여준다. 이성민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을까.
“우리가 아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게 순수함이 아니라는 것. 그런 숨겨진 이야기들이 ‘대외비’라는 상징적인 제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1992년이 시대물에 들어가더라고요. 제가 그때 25살이었어요. 오래된 과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시대물이라고 하죠. 저희 영화를 보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시대 묘사를 잘 한 영화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