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수사본부' 배정훈 PD, 무거워지는 책임감[인터뷰]
- 입력 2023. 03.28. 12:43:04
-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정훈 PD가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이야기를 마침내 풀었다. 항상 사건의 뒤에 숨어있어 보이지 않던 경찰들의 갖은 노고를 좆아 같이 울고 웃고 때로는 분노하고 위로하며 이들의 삶을 보다 가까이 조명했다.
배정훈 PD
지난 3일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국가수사본부’는 대한민국의 낮과 밤, 사건 발생부터 검거까지 ‘끝을 보는’ 강력계 형사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100% 리얼 수사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 배정훈 PD의 첫 연출작이다.
“꼬박 1년이 걸렸다. 콘텐츠를 기획한 배경은 ‘궁금한 이야기Y’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을 15년 정도 제작하면서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보면 경찰이 실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많이 목격하는 건 고생하고 수사를 잘 해결하는 경찰이 더 많았다. 그런 값진 이야기는 왜 이야기 소재로 사용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이 항상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경찰이 얼마나 고생하고 수사를 열심히 하고 피해자에 공감하는지, 잘 보여주지 못한 결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마음에서 기획하게 됐다.”
배정훈 PD는 확신에 찬 자신감을 드러냈다. ‘국가수사본부’는 형사들과 함께 동행하며 범행 현장부터 범인 검거, 조사 등 사건 수사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실감나게 담았다. 이미 지난 행적을 뒤쫓는 것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현장을 따라가는 작업은 배정훈 PD에게도 새로운 배움이었다. 이에 배 PD는 ‘국가수사본부’가 시청자들에 전하는 시각적 경험도 귀띔했다.
“그간 촬영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생생한 현장에서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제작할 때는 몇 년 전의 사건을 후년에 탐사하다 보니 만나거나 사건 현장을 갈 수 없다. 공식적으로 종료된 사건이라 자료도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현장을 화인하고 이해하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실제 현장부터 경찰감식반이 그 순간 어떤 고민을 하는지 생생하게 촬영할 수 있었고 충분한 작업기간이 있었다. 후반 작업을 하면서 제작진들이 바빠서 할 수 없는 고민이나 토론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노고가 많이 녹아있고 SBS가 갖고 있지 않은 장비들을 구비했다. 영화 장비를 사용해서 4K로 제작했다. 휴대폰으로 보신 분들은 못 느끼시겠지만 TV로 보신 분들은 영화 질감을 느낄 수 있고 내용은 사실적인데 화면은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실 수 있다. 휴대폰으로 보신 분들은 TV로도 경험해보면 좋겠다.”
다만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들의 경우, 화면에 담아내기까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 최대한의 자극은 줄이되, 범행 현장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진들은 깊이 고민하며 심도있게 접근했다.
“상당히 참혹한 곳들이 있었다. 그 상황의 참혹함이 존재하는데 그런 것을 생생하게 촬영할 때 사체 화면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에 관습대로 한다면 블러 처리를 진하게 하겠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다르게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1회 차에 나오는 부산 양정동 모녀 살인사건을 보면 현장을 보여주는 영상에 빨간색이 없다. 빨간색이 주는 잔혹함을 경험해드리고 싶지 않아서 채도를 뺐지만 그림은 생생하다. 사실 사진만 보면 무슨 장면인지 알 수 없는데 상황 맥락으로 보면 이게 아마도 잔상으로 상황을 이해하게끔 된다. 급박하게 제작됐다면 이런 고민을 못했을 거다. 사실적인 현장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과 화면 처리 방식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으로 나온 결과값이다.”
그럼에도 강력 범죄를 소재로 다루는 만큼 ‘국가수사본부’ 역시 범행 재현이나 사건 현장 묘사 등 모방범죄 우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배 PD는 콘텐츠에 쏟아지는 다양한 시각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많은 논의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랐다.
“범행 수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시선이 있을 수 있고 범행수법을 정확히 알아서 그 피해를 당하지 않아야한다는 시선도 있을 거다. ‘국가수사본부’는 범행을 상세히 보여주는데 방점이 아니라 그 수사를 해결하는 경찰들의 노고를 담은 콘텐츠다. 하나의 콘텐츠에 다양한 시선이나 이해를 갖는 건 제작자 입장에서 반가운 입장인데 기본적으로 이런 다큐멘터리에 방법론이나 어떤 취재 윤리가 우리 사회에서 많이 없어서 그런 논의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지상파에서 OTT 플랫폼으로 넘어오면서 제작 자율성이 확보되는 시점에 왔고 그렇다면 논의가 필요한 거다.”
‘국가수사본부’는 살인사건을 비롯해 마약상 검거, 공갈 협박, 강도 사건 등 다양한 강력 범죄들을 기록했다. 제작진은 사건을 단순히 선정하기보다 가리지 않고 촬영한 이후,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는 사건들을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어떤 사건을 하자는 목적은 없었고 사실 어떤 사건이 나올지 예상할 수도 없었다. 강력팀이라면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몰라서. 다만 ‘국가수사본부’는 공익 목적에서 알았으면 하는 사건이 있었으면 하는 비공식적 바람은 있었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너무 많은데 신종 수법들이 담긴 회 차가 공식적으로 필요하겠다 싶어서 후반부에 나간다. 마약 사건은 일상적으로 주변에 있는데 그 위험성을 알았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그런 취지로 선별 됐다. 대부분 강력팀에 일어나는 사건은 예상할 수 없어서 미리 판결하지 않았고 오히려 발생하는 사건을 모두 촬영하고 그 후에 과정에서 선별하거나 기획 취지가 담긴 촬영 분량을 살리고자 했다.”
각 회 차의 배치 방식에도 제작진은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전국 팔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시청자 입장에서 ‘국가수사본부’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볼 수 있도록 조율했다.
“웨이브와 긴밀한 협의 하에 배치했다. 처음에 우리가 기획한대로 팔도의 다양한 유형이 담겼다면 각 회 차마다 톤이 다르다. 사람이 다르고 지역도 다르니까. 그 사건을 사람들이 다양하게 경험하는 패턴으로 왔으면 했다. 후반부에도 무거운 사건이 있고 경찰관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것도 있다. 국가수사본부가 진지하고 무겁고 잔혹한 게 아니라 실제로 다양한 일들을 하는 경찰관들의 다양한 결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경찰관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담당하면서 느끼는 그들의 솔직하고 다양한 감정들도 가감없이 드러났다. 범행 현장을 수색하거나 범인을 검거했을 때, 수사를 하면서 마주하는 경찰관들의 순간, 심경들도 그대로 담아낸 이유가 있었다.
“이야기를 보태거나 빼지 말자. 상황이 그렇게 되면 가급적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였다. 문제가 되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과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드렸다. 경찰관도 사람이니까 수사하다보면 감정이 나오지 않겠나. 사건을 미제로 남기지 않고 풀어야하는 경찰관이라 면 어떤 사건의 실마리가 풀렸을 때 기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일을 할 때 그렇듯이 그 사건의 중심에서 그분들을 이해하면 그들의 순간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요리조리 피해서 도망가는 피의자를 잡으면 경찰관도 사람인데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공무원이라고 점잖게 이야기하면 그게 더 부자연스럽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다보니 다는 전달이 안 됐을 수도 있지만 몇 날 며칠 쫓아다녀보니 그 분들의 감정이 이해가더라. 그런 취지와 맥락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SBS 소속으로서 배 PD는 웨이브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OTT의 강점을 더해 완성도 높은 수사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다. 색다른 제작 방식의 가능성을 경험한 배 PD는 사내에서도 처음 시도한 도전인 만큼 더 막중한 책임감과 무게감을 갖게 됐다. 이에 그는 좋은 콘텐츠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다양한 곳에서 만나고 싶다고. “관심있으신 OTT 관계자분들 연락주세요”라고 이메일 주소를 언급하며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
“SBS 시사교양본부에서 OTT와 협업은 처음 하는 경우인데. 많이 응원해주셨다. 선례가 돼서 앞으로 후배들이 협업해나가는데 일종의 매뉴얼. 가이드가 될 수도 있어서 하나하나 결정할 때 조심스럽게 상의했다. 방송 심의에 적용받는 콘텐츠가 아니라 자율성이 확보되지만 양날의 검이었다. 그래서 다 해도 되느냐 그럼에도 지상파에 갖춰야할 격이라고 해야 되나. 스스로 기준을 마련해야하는 논의를 했다. 지상파가 아니어도 오랫동안 방송국 플랫폼에 훈련된 피디, 작가들의 노하우가 모여서 이런 제작을 할 수 있었다. ‘국가수사본부’는 우리 주변에서 대단히 과장되지 않은 일들이고 그들의 입과 눈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우리 이야기다. 이야기 구성이나 사진 한 장으로 어떤 시선에서 어느 정도 거리로 이야기를 전달하느냐는 관찰자 입장에서의 고민은 이제 시작됐다. 이런 장르는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고 논의가 계속됐으면 좋겠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웨이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