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글로리' 동은母 박지아 "할 수 있는 건 다해, 후회 없어요"[인터뷰]
- 입력 2023. 04.06. 07:00:00
-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더 글로리' 정미희로 살았던 순간이요? 모든 순간이 다 재밌었어요. 할 수 있는 걸 다 한 후에 또 한 숟가락을 더 얹어 정말 최선을 다했죠.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그때만큼 할 순 없을 거 같아요. 그만큼 할 수 있는 건 다했어요. 그래서 후회도 없어요. 이 작품은 정말 저에겐 큰 의미로 남을 거예요."
박지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 문동은(송혜교)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박지아는 극 중 알코올 중독자인 문동은의 엄마 정미희로 분해 열연했다.
최근 셀럽미디어와 만난 박지아는 "아직도 정미희가 남아있다. 체감을 하지 못했었는데 '더 글로리' 파트 1이 오픈된 후에서야 알게 됐다. '내가 아직 정미희를 보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라고. 파트 2가 오픈된 후에도 마찬가지더라. 아직 100%로 이 친구를 보내진 못했다"라고 털어놨다.
박지아는 정미희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며 "출연이 확정된 후에 걱정이 많이 됐다. '더 글로리' 책(대본)을 읽는데 벌떡 벌떡 뛰는 느낌이 들더라.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육상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긴장감 속에 있다가 어느 순간에 출발선 라인에 함께 서 있게 됐다. '어떻게 뛰어야 함께 뛰는 사람들과 제시간에 잘 도착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다짐했었다"고 했다.
박지아가 연기한 정미희는 '더 글로리' 파트 2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임지연)의 '새 고데기'로 쓰이는 핵심 빌런이다. 그는 학교폭력 피해자 자신의 딸인 문동은(송혜교)의 첫 번째 가해자이며, 18년이 흐른 뒤에도 딸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인물이다.
박지아는 정미희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엄청 재밌었다. '이 여자는 왜 이러는 거야?' '다른 방법은 없었어?'를 엄청 고민하고 생각했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서 작업할 때 그런 재미가 있는데 정미희 같은 경우에는 비어 있는 구석이 많아서 더 상상할 게 많더라. 비어 있는 부분을 상상하면서 신나게 준비했었다. 모래밭에서 동전을 찾듯이 자잘한 것들까지 하나하나 찾아서 16부까지 살을 붙이고 연결해 왔다"라고 설명했다.
알코올중독자를 연기한 박지아는 연기의 주안점을 묻는 질문에 "보시는 분들에 따라 '알코올중독자라도 저런 사람이 어딨어?'라고 보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료를 찾아봤지만 '흉내내기'밖에 안될 것 같더라. 제일 중심을 가져갔던 건 '정희'라는 인물의 인생이다. 무엇보다 이 인물의 '정서'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 중심을 흩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이 인물을 표현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이어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서) 욕심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욕심을 내면 이 작품을 다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존재하는 것이 나의 쓰임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박지아는 역할을 위해 무려 7kg을 감량했다.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한 그는 "파트 1, 파트 2 사이에 18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알코올중독자라면 밥을 그렇게 챙겨 먹지 않을 것 같더라. 그래서 감독님에게 살을 확 빼서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을 했다. 인생에서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40kg 후반대까지 뺐다. 빼는 것보다는 촬영 기간 동안 그 몸무게를 유지하는 게 힘들더라. 그래도 재밌었다. 살이 빠질수록 '내가 정미희에 가까워지는구나' 신이 났다. 아쉽게도 화면상에서는 살을 뺀 티가 많이 안 났다. 그래도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더라. 그것만으로 살 뺀 보상을 다 받은 기분이었다. 굉장히 만족스러웠다"라고 말했다.
'더 글로리' 빌런 정미희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문동은의 의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 정미희의 결말에 대해 "물론 동은이가 미희에게 더 극한 복수를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장 적절한, 나이스한 동은이의 복수가 아닐까 싶다"라고 했다.
박지아는 김은숙 작가의 추천으로 '더 글로리'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김은숙 작가의 말 한마디가 정미희를 만들어나가는 데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첫 리딩 때 작가님을 뵀다. 작가님께 '이 인물이 전형적인 캐릭터가 될까 봐 조심스럽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힌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작가님이 '마음대로 해요'라고 딱 한마디를 하시더라. 그 말을 듣는데 '나를 믿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들은 후에는 인물을 대할 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면 안 되겠지?'라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재밌을 거 같다'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작품이 끝나고 난 후 김 작가의 피드백도 있었을까. 박지아는 "작가님이 다가오시더니 '딱 알코올 중독자 같았어요'라고 말하더라. 그 말이 맺어짐과 동시에 말과 행간 사이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릿속이 복잡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래도 이 좋은 작품에 폐가 되진 않았구나' 안심했었다"라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안길호 감독에 대한 감사도 표했다. 그는 "현장에서는 감독님에게 많이 기댔다. 감독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괴롭혔다. 아마 저 때문에 힘드셨을 거다(웃음). 감독님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다.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송혜교와 함께한 현장은 어땠을까. 박지아는 "현장에서 송혜교 씨를 만났는데 잔잔한 물 위에 뜨겁게 서 있는 느낌이 들더라. '그 뜨거움이 나에게 달려오려는 걸까?' 생각했다. 서로 긴장감을 갖고 제 것을 준비했다. 함께 호흡할 때는 송혜교 씨가 엄청난 뜨거움을 던져주셨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매너가 좋으신 배우였다. 기회가 된다면 더 진하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더 연기해보고 싶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박지아는 올해로 데뷔 21년 차 배우다. 2002년 장동건 주연 영화 '해안선'으로 데뷔한 박지아는 안방극장, 스크린, 그리고 무대를 누비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7년에는 영화 '기담' 속 엄마 귀신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이외에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석조저택 살인사건', '창궐', '클로젯'과 드라마 '신의 퀴즈 4', '굿와이프', '손 the guest', '붉은 단심', '클리닝업'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다.
'더 글로리' 출연 후 박지아의 전작들도 온라인상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상황. 그는 "저에게 전작들은 다 훈장이다. 정미희도 훈장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며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더 글로리' 이후 감독님들이 저를 어디에 놓아주실지 궁금하다.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재료들을 채워 넣고 충전하면서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죽기 전에 함께 하고 싶은 작가님, 감독님의 리스트를 적어놨다. 그 리스트에 있는 감독님 중 한 분과 최근에 미팅을 하기도 했다. 꿈꿔왔던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직 연기가 좋고 재밌다. 물론 지금까지 '내 길이 아닌 거 같다', '여기가 아닌가?'라면서 뒤돌아보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뭐 하고 싶은데?'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배우 하고 싶다'라고 답을 하게 되더라. 저의 시작점이자 마지막은 결국 연기더라. 그냥 재밌다. 스트레스 받아도 재밌고, 잘 안되더라도 재밌다. 그 재미를 놓을 이유가 없지 않나(웃음). 그래서 계속하게 된다."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김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