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감독 “‘킬링 로맨스’는 모험…잘 돼서 극열지옥 보여드리고 싶어요” [인터뷰]
입력 2023. 04.21. 17:09:01

'킬링 로맨스' 이원석 감독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대중적인 영화였다고 생각해요. 제 기준에서는.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쉬운 영화라고 생각했죠.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제발!”

한국에서 태어나 5수를 한 웨스 앤더슨이 수능 전날 꾼 꿈을 영화로 만든 것 같다는 ‘킬링 로맨스’가 역주행 중이다. 개봉 당일 에그지수 61%로 깨져버린 계란이 70%대로 회복한 것. 지나치게 독특한 유머 코드로 ‘이제껏 보지 못한 코미디’를 만든 이원석 감독을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나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떨리는 건 지나갔어요. 겸허히 무슨 일이 있을지 받아들일 일만 남았죠. 저는 인터넷을 안 해요. 시사회를 한 후 안 보거든요. 한 달 후나 6개월 뒤 반응을 봐요.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감독의 목을 쳐라’라는 반응도 봤거든요. 하하.”

‘킬링 로맨스’는 섬나라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운명적 사랑에 빠져 돌연 은퇴를 선언한 톱스타 여래(이하늬)가 팬클럽 3기 출신 사수생 범우(공명)를 만나 기상천외한 컴백 작전을 모의하게 되는 이야기다. 드라마 ‘파스타’ 이후 13년 만에 재회한 이하늬, 이선균은 필모그래피 사상 최초, 최고 변신을 선보인다.

“이선균 씨가 정말 웃겨요. 필모를 보면 사람들이 모르는 게 몇 개 있거든요. 단막극도 있는데 왜 캐스팅 된지 아실 거예요. 어떤 역이든 엄청 열심히, 최선을 다하세요.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한 사람이 조나단을 했으면 했죠. 악당이지만 주변에 악당이 많잖아요. 악인 사람은 자기가 악인지 몰라요. 조나단은 영화 속에 나오는 악당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는 악당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알고리즘도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에게 어떤 취향, 거기서 제시하는 행복, 파는 물건 등을 만들어주잖아요. 조종당한다는 느낌의 악을 조나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주위에 있지만 자기는 모르는, 그런 사람을 누가 할 수 있을까, 그건 ‘나의 아저씨’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찔러봤어요. 그런데 출연하겠다고 해서 너무너무 고마웠고, 좋았죠. 이하늬 씨는 대본이 나오자마자 작가님에게 ‘이건 이하늬 씨밖에 못하는 거예요’라고 했어요. 뻔뻔한 감정을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이하늬 씨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다른 옵션이 없었어요. 되기만을 바랐죠. 그런데 이선균 씨와 이하늬 씨가 미국에서 우연히 만났던 거죠. 다 희한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하지마’라는 소리만 들었잖아요. 제작자, 배우, 서로 다 ‘해보자, 갈 때까지 가보자’고 얘기했어요. 농담 삼아 ‘우리 이민 가야할 수도 있어, 욕먹을 수도 있어’라고 했지만 ‘해보자, 이 모험을 하자’고 말했어요.”



그럼에도 ‘위험할 수 있는 모험’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병헌 감독님의 ‘바람바람바람’은 코미디로 할 수 없는 소재에요. 그러나 그 영화가 코미디를 하는 사람들의 교본이라고 생각해요. 그 소재의 불편함을 최선을 다해 뛰어넘으려 하거든요. 병맛, 어색함, 말맛, 시츄에이션, 개그 등이 다 나와요. 그걸 뛰어넘기 위해 저희도 큰 챌린지였어요. 폭력을 저지르는 이 사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동화로 가보자고 선택했어요. 저는 ‘만약’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만약이란 말이 마법 같은 게 ‘왜’라는 말이 없어져요. 상상력이 넓어지잖아요. 그걸 잘 하는 게 디즈니였어요. 그걸 끌어들인 거죠. 그러면서 비틀기 시작했고요. 블랙코미디의 전형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도 땀복을 입고 나와요. 이것 자체도 디즈니를 비꼰 거예요. 저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반전도 있어야하지만 저희 영화와 색깔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죠. 우리만의 방식대로 해보자 싶었어요. 이걸 사람들에게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들자고 해서 음악도 들어간 것이고요. 엄청나게 큰 모험을 시작한 거죠.”

영화는 동화책을 읽어주듯 시작된다. 그러나 이 설정은 영화를 만들면서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엔 현실적인 대본이었어요. 작가님께서 ‘감독님 하고 싶은 것 하세요’라고 하셨죠.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이런 적은 저도 처음이었어요. 너무 고마웠죠. 복 받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감독으로서 ‘이렇게까지?’라고 할 정도로 사랑 받았거든요. 이 영화가 잘돼서 공명이 제대할 때까지 무대 인사를 하는 게 소원이에요. 잘 된다면 2시간 5분짜리 극열지옥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영화에는 그간 한국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다수의 대중음악이 등장한다. H.O.T의 ‘행복’, 비의 ‘레이니즘’, 들국화의 ‘제발’ 등 음악들이 캐릭터의 희로애락에 맞게 흘러나온다. 이 음악들은 이원석 감독이 직접 선정한 것으로 영화가 끝나면 해당 곡들이 머릿속에서 자동재생 되기도 한다.

“저에게는 ‘행복’이 인생 노래예요. 그 노래를 들으면 행복해져요. 이선균 씨와 어떤 노래를 반복적으로 들으면 마치 악마가 놓는 마법의 스펠 같은 느낌이 날까 고민하면서 냉면을 먹으러 갔어요. H.O.T 노래를 얘기하다가 ‘행복’이 어떠냐고 했는데 진짜 옆에서 장우혁 씨가 냉면을 먹고 있더라고요. 또 이선균 씨와 아는 사이였어요. 나와서 이선균 씨와 ‘이건 신의 뜻인 것 같아’라고 해서 넣게 됐죠. ‘레이니즘’은 제가 엄청 좋아해요. ‘깡’이 유명해져서 유행 따라 넣은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1일1깡’했던 사람이에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노래가 없어요. ‘레이니즘’ 같은 자뻑의 노래. 그 노래를 들으면 어딜 가다가도 세상이 다 내 것인 것 같더라고요. 그게 여래가 느꼈던 행복함,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원했던 순간을 상징적으로 썼죠.”

예측 불허 스토리인 ‘킬링 로맨스’에는 급기야 타조까지 등장한다. 외부적으로는 환경운동가이자 동물애호가를 자처한 조나단은 콸라섬에서 타조 농장을 밀어버리고 사업을 진행하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숨은 뜻이 있다고.

“타조는 원래 원주민들이었어요.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죠. 후배가 타조 농장을 하는데 놀러 오라고 해서 갔어요. 되게 뜬금없더라고요. ‘타조를 왜 키우지? 타조는 왜 못날지? 뭐하는 친구일까’ 시작해서 궁금한 게 많았던 찰나에 이 영화를 하게 됐어요. 이야기에 동화 같은 느낌을 주자고 해서 원주민 대신 타조를 넣었어요. 타조는 원주민들을 상징한 것이죠.”



매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박한 영화를 연출하는 이원석 감독.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와 조선시대 왕실의 옷을 만들던 ‘상의원’을 소재로 그려낸 로맨스 사극 ‘상의원’ 등으로 ‘이원석 유니버스’를 구축해가고 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꼴통’ 소리를 듣고 살았어요. 그렇지만 남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 살았죠. 비주류를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영화를 늦게 배웠고, 60~70년대 미국영화에 빠지게 됐거든요. 그 시대 영화들은 계급을 무너뜨린 느낌이 들었어요. 고상하고, 완벽한 걸 무너뜨리는 재미? 그게 B급이라고 생각해요. 대충 만든 영화들이 많은데 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제가 다닌 학교에 전 세계 모든 영화들이 다 있었어요. 거기서 영화를 배우기 시작한 거죠. 저는 B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무언가를 비트는 게 재밌고, 그걸 보면서 사람들도 희열을 느낀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영화도 기존에 있던 영화를 비튼 거예요. 남편을 죽이던가, 조나단이 다 알고 있어서 속으면서 가든가 해야 하는데 뜬금없이 타조가 나오잖아요. 조나단을 물에 빠트려 죽이는 게 원래 대본이었는데 우리 영화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더 다크하게 갔어야 하는데 저는 텐션이 중요했죠. 이 해결은 가장 큰 피해자가 복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타조가 나오게 된 거예요. 그런 식으로 범우의 용기도 보여주고 싶었고요. 변할 수 없던 사람, 정체된 사람이 누군가에 의해 변화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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