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스완은 K-팝의 또 다른 터닝 포인트
- 입력 2023. 05.11. 13:20:23
- [유진모 칼럼] 4인조 K-팝 걸 그룹 블랙스완의 멤버는 파투(벨기에), 스리야(인도), 가비(독일‧브라질), 앤비(미국) 등 전원 외국인이다. 그럼에도 소속사 디알뮤직은 'K-팝'이라는 수식어를 자신 있게 붙인다. 블랙스완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이런 구성은 어떤 의미를 던질까?
블랙스완
K-팝을 구성하는 가수들은 솔로도 있지만 대부분 보이 그룹과 걸 그룹이다. 제작사, 특히 SM, JYP, YG 등 가장 오래된 대형 연예 기획사는 전통적으로 그룹 내에 외국인 멤버를 포진시켜 왔다. 그 국적은 대부분 중국과 일본이 주류를 이뤘고 시간이 지날수록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확장되고 있다.
물론 방탄소년단이나 레드벨벳처럼 전원 한국 국적의 그룹도 많다. 그럼에도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각 기획사들은 외국인 멤버 영입이라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이유는 당연히 모든 프로젝트가 전 세계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한국 팬들에게는 다소 신비적으로 어필하는 한편 외국 멤버의 고국의 팬덤을 노린다.
더불어 다국적 멤버 구성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의 흥행 성공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전 멤버를 외국인으로, 그것도 유럽, 미국, 아시아 등 아프리카만 제외한 국적 구성은 블랙스완이 처음이다. 전원 외국인도, 국적과 인종의 구성 자체도 처음이다.
블랙스완의 정체성을 논하기에 앞서 봉준호 감독을 슬쩍 곁눈질해 본다. 그는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옥자'를 연출했다. 제작자(사)도, 배우도 다국적이다. 과연 이 영화는 K-무비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넷플릭스 영화인가, 할리우드 영화인가?
결론부터 내리자면 첫째, 이 영화는 분명히 '봉준호의 영화'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전액 투자사 넷플릭스의 영화라고는 할 수 있지만 한국 배급사 NEW의 영화라고는 절대 주장할 수 없다. 둘째, 이제 '어디 소속'이라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글로벌 시대'이다.
MLB에서 박찬호를 영입할 때만 하더라도 한국 야구 팬들의 LA 다저스에 대한 사랑은 어마어마했다. LA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할 뿐만 아니라 다저스에서 박찬호가 에이스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그런데 그가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를 시작으로 메이저 리그 내 여러 팀을 옮겨다닐 때마다 한국 팬들이 그 팀들을 예전처럼 열렬히 응원한 것은 아니었다. 박찬호의 성적이 전성기 같지 않기도 했지만 시대가 변해 스포츠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에서 국적은 더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MLB만 하더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 중남미 선수들이 대거 진출한 데다 90년대를 기점으로 아시아 선수들까지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런 큰 판에서 국적은 큰 의미가 없었다. 팀 색깔이나 선수 개개인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건 프리미어 리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맥락에서 블랙스완은 분명히 'K-팝'의 범주에 드는 게 맞다. 제작사가 한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SM 등 많은 K-팝 제작사에서 이전부터 외국인 크리에이터를 기용해 왔다. 그들이 작곡했음에도 K-팝이라고 하는 이유는 총괄 프로듀싱이 한국 기업의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 야구에 외국인 선수들이 넘실댄다고 외국 프로 야구는 아니다. 아마 조금 더 세월이 흐른다면 월드컵, 올림픽, WBC 같은 국가 대항 A매치에 굳이 국적 변경을 하지 않았더라도 외국에서 활동 중인 용병들이 그 나라 대표 선수로 출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K-콘텐츠는 어차피 아이디어 싸움이다.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가 순수 한국인으로 H.O.T, S.E.S, 신화 등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외국인 멤버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초중반 국내에 댄스 그룹 열풍이 몰아칠 때 한국계 외국인 멤버들의 창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블랙스완은 K-팝의 외연의 확장과 내면의 다양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K-팝이 지구 내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웅변한다. 향후 K-팝의 전면에 나설 아티스트의 국적과 구성 등에 큰 변화를 주는 하나의 터닝 포인트, 혹은 리트머스 시험지임에 확실하다.
[유진모 칼럼 / 사진=디알 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