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닥터 차정숙' 김병철, 지금에 집중하는 것[인터뷰]
- 입력 2023. 06.14. 18:02:30
-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김병철이 어디다 붙여도 곧잘 소화해내는 찰진 연기력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김병철
‘닥터 차정숙’은 20년 차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엄정화)의 찢어진 인생 봉합기를 그린 드라마. 김병철은 극 중 차정숙의 남편이자 첫사랑인 최승희(명세빈)와 두 집 살림하는 대장항문외과 과장 서인호를 연기했다.
“기본적으로 모두가 시너지를 내서 작품이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해서 이 작품이 잘 된 것은 이야기 균형이 전반적으로 맞았던 것이다. 성장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감동만 있는 것도 아니고 코믹함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균형이 잘 맞아서 호응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드라마 캐릭터 중에서 선과 악을 구분해야한다면, 서인호는 유일한 빌런이었다. 아내 정숙 몰래 승희와 관계를 유지하고 그도 모자라 혼외자를 낳아 키우며 대담한 이중 생활을 벌이는 등 가정을 뒤흔든 주범이었다. 동시에 승희에게도 확신을 주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남자였다.
의외로 현실과 맞닿아있는 악역 캐릭터였기에 비판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김병철은 시청자들의 반응 보다는 자칫 전작 캐릭터와 비슷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을 경계했다.
“대본을 많이 보고 읽으면서 이런저런 궁리하고 준비하는 편이다. 현장에 가면 그대로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고착화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현실적이라 공감할 수 있고 와 닿아서 더 비난받을 수 있는데 그런 조건 자체가 부담되지 않았다. 연기이고 어떤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라서 그런 반응이 오히려 좋은 평가일 수 있어서 부담되지 않았다. 권위적이고 부인 무시하는 게 ‘스카이 캐슬’ 차민혁이랑 비슷한 면이 있어서 초반에 부담되긴 했는데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고 외도하는 건 확실히 다르고 코믹한 부분이 훨씬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했다.”
매 회 웃음 코드도 있었던 ‘닥터 차정숙’에서 김병철은 나름 코믹 연기를 담당했다. 정숙의 생일 케이크에 얼굴이 박히는가 하면 옷에 된장을 쏟아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 등 망가짐도 서슴지 않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폭소를 유발했다. 이러한 장면들은 인호를 나쁘지만 마냥 나쁘게만 볼 수 없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워낙 인물이 부정적이라서 시청자들이 보기 싫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작가님이 그런 인호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코미디 활용을 많이 하셨고 이런 부분이 잘 살아야 인호를 보기 싫어하는 마음이 줄겠다고 생각했다. 주요 인물을 보기 싫으면 곤란하지 않나. 그게 우려가 됐고 그런 점을 완화시키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고. 인물의 다양한 면을 드러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운 정이 더 무섭다고. 분명히 얄밉고 지탄받을 대상인데 인호는 의외로 시청자들의 애정을 받았다. 특히 인호는 정숙을 막대하다가도 그에게 저항 없이 당하는 등 허당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뜻밖에 귀엽다는 반응을 얻었다.
“예상치 못했지만 코믹한 장면이 귀여워 보인 지점들이지 않았을까. 그런 노력은 하지 않았고 이 사람은 웃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압박을 당하지 않나. 들키지 않아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못 끊는 상황에 몰리다 보니 벗어나고 싶고 그래서 실수도 하게 되고 그런 모습들을 귀엽게 안쓰럽게 보신 것 같다.”
기존의 드라마들에서 바람을 피는 남편은 시청자들의 비난을 사는 캐릭터였다. 물론 ‘닥터 차정숙’에서 인호의 행동을 미화하진 않지만, 인호를 둘러싼 복잡한 사정은 일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는 일반적인 바람둥이 캐릭터들과 인호의 명확한 차이였다.
“바람둥이라는 말에 있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승희가 아니라 다른 여자였다면. 잘 모르는 여자였다면 인호가 과연 외도를 했을까 싶었다. 가능성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승희는 첫사랑이었기 때문에 그런 영향을 받았던 것이고 바람을 핀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바람둥이와는 다른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정숙이나 승희가 왜 인호를 좋아하는가를 생각해봐도 각각 상황에서는 그 관계에 충실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김병철은 엄정화와 엉겁결에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어느덧 성인이 다 된 자녀들을 둔 중년 부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실제로는 엄정화가 연상이었지만 두 사람은 터놓고 편하게 지내며 서로를 의지했다.
“오랫동안 함께 산 사이를 연기해야 돼서 그런 것들이 어색해보이면 안되겠단 생각을 했다. 엄정화 씨에게 누나라 부르고 일부러 말도 반말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 관계를 위해 상의하면서 연기 작업을 해나가는 게 좋았고 호흡이 잘 맞았다. 실제로 보시기에도 둘 장면을 재미있게 보셔서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
최승희 역의 명세빈과는 겉으로 드러나선 안 되는 아슬아슬한 내연 사이로 열연을 펼쳤다. 부부는 아니지만 오래 알고지내며 인연을 이어온 만큼 김병철은 명세빈과도 소통하며 관계를 구축해갔다.
“승희 캐릭터가 이 드라마에서 연기하기 가장 어려운 캐릭터라 생각했다. 캐릭터가 잘 구현돼야지 인호랑 승희가 나오는 걸 보기 싫지 않을 것 같더라. 함께 리딩하면서 그런 고민을 했고 어렵게 생각한 지점들을 호흡하며 맞춰나갔다. 그런 게 좋은 결과를 내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끊임없이 변주해온 김병철은 캐릭터 소화력이 출중한 배우임이 틀림없다. 선과 악을 넘나들며 연기를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캐릭터를 바라보는 김병철의 유연한 자세 덕분이다.
“인물에 다양한 면모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그런 여러 맥락들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어떤 인물은 계속 악행만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다른 지점이 있다는 걸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은연 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까 좀 더 살아있는 사람 같고 가능하다면 다양한 면모를 직접 반영하려고 한다. 단순해서 좋은 캐릭터도 있지만 단순하면 재미가 없어지고 사람같지 않을 수도 있어서 그런 생각이 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김병철은 ‘닥터 차정숙’을 계기로 로맨스 코미디 도전 가능성을 꼽았다.
“연기자 김병철로서 로코라는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겠다. 경험을 했다. 너무 부정적이라 바로 로코로 연결짓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로코 불모지 캐릭터에서 귀여움을 느끼게 한 시청자들이 있었던 건 그런 가능성이 발견됐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 않나. 넓히는 일이라 볼 수도 있겠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지켜봐주는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 측면을 긍정적으로 본다.”
2003년 영화 ‘황산벌’로 데뷔한 김병철은 20년차를 훌쩍 넘긴 배우가 됐다. 크고 작은 역할들을 연기해오며 쉼 없이 달려왔지만 김병철은 여전히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크다. 꾸준히 작품 속에서 대중들을 만나기 위해 또 다음을 향해 내딛는 그의 발걸음이 기대를 모은다.
“예전을 돌아보면서 ‘이때는 이랬지’라고 생각을 하는 편은 아니다. 그때 작업에 집중하는 편이라 이번 게 끝나면 또 다음 작업을 하는 편이고. 그래도 돌아봐야 한다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봐도 될 것 같다. 지금은 작품을 통해서 시청자분들과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는 편이다. 관심이 저에게는 감동적이고 다음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인 것 같다. 그래서 그 힘을 받아서 또 다른 흥미로운 작업들로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에일리언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