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닥터 차정숙'이 되어준 엄정화[인터뷰]
입력 2023. 06.16. 16:28:13

엄정화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엄정화가 데뷔 30주년에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그가 아닌 차정숙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체불가한 연기 내공을 터트린 엄정화는 차정숙 선생님으로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시청자들의 성원 속에 막을 내린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극본 정여랑, 연출 김대진)은 20년 차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엄정화)의 찢어진 인생 봉합기를 그린 드라마.

엄정화는 극 중 의대 졸업 후 20년 넘게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가 된 차정숙으로 열연을 펼쳤다. 엄마이자 아내로 살면서 잊고 있었던 오랜 꿈을 되찾으며, 주체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는 정숙의 성장통은 대중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복잡다단한 일들을 겪어내는 정숙의 이야기가 공감을 이끌어낸 데에는 단연코 엄정화가 있었다. 엄정화는 현실에 부딪히며 느끼는 표정과 눈빛, 말투와 목소리에서 느끼는 사소한 떨림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담아내며 정숙의 희로애락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이에 ‘닥터 차정숙’은 언어와 국경, 문화를 넘는 공감대를 선사하며 국내외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엄정화 역시 ‘닥터 차정숙’을 통해 글로벌 인기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고.

“한 가정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국적이어서 외국분들이 좋아할까 싶었다. 넷플릭스에 올라가게 된 것도 좋았지만 해외 팬이 생길까 생각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고 많이들 좋아해주셨다. 외국 팬들한테 디엠(DM)도 오고 인스타그램 팔로우 수도 많이 늘었다. 다들 공감하면서 봐주셔서 너무 기쁘다.”

‘닥터 차정숙’은 엄정화의 의지였다. 일찍이 받은 대본을 여러 번 읽어보며 기다림을 달랬을 정도로 엄정화는 ‘닥터 차정숙’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제목도 좋았고 의학드라마를 해보고 싶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모두가 응원할 수 있는 캐릭터일 수도 있어서 연기하고 싶었고 제작이 될 때까지를 기다렸다. 오래 기다린 와중에도 놓기가 쉽지 않더라. 좋아하는 대본이었고 방송이 되면서 많은 응원을 받으니까 너무 행복해지더라.”

엄정화는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숙의 따뜻한 성품이 시청자들에게도 통하길 바랐다.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볼 수 있지만, 누구보다 사려 깊은 배려심과 이타심은 정숙의 정체성이었다. 이에 엄정화는 조금은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정숙의 타고난 상냥함이 돋보이도록 노력했다.

“처음에는 오로지 ‘이 여자의 진심이 전달 됐으면 좋겠다’였다. 차정숙이 의사로서 병원에 들어왔을 때 더더욱 이 여자의 진심, 아니면 베푸는 친절함, 따뜻한 마음이 공감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병원가기 전까지 (시청자들이) 따라갈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컸던 것 같다.”

‘닥터 차정숙’의 흥행은 예상 밖의 성과였다. 연기할 때 시청자들과 만들어갈 공감대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던 엄정화에게 신드롬급 인기는 안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가 생각한 흔한 흥행 공식 하나 없었지만 ‘닥터 차정숙’은 역대 JTBC 드라마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며 올해 상반기 히트작에도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늦깎이 레지던트이자 자녀들에겐 늘 미안한 엄마와 든든한 아내로서 연기 변신한 엄정화의 호연은 배우로서 재평가를 받았다.

“잘돼야한다는 부담 보다 어느 정도 반응이 올지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최소한 차정숙에게 공감하는 드라마가 되면 좋겠다 정도. 뭔가 드라마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크게 있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좋아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못했는데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기쁘더라. 역할을 하면서 연기에 대해 칭찬을 받게 될 거란 기대도 못했다. 워낙 잔잔하고 격정적인 신도 없다보니 연기적인 것도 기대 안 하고 차정숙에게 공감했으면 하는 생각만 했다. 드라마 시작하고 제 연기에 대한 기사도 보고 댓글도 많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얕‚œ은 남편 서인호 역의 김병철과는 현실적인 중년 부부호흡을 맞춰 몰입도를 더했다. 드라마 안에서 엄정화에게 김병철은 한없이 미워해도 모자람 없는 상대였지만 카메라 밖에서는 누구보다 편한 동료이자 동생이었다. 함께 더 연기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에 엄정화는 못내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말 아쉬웠던 건 정숙과 인호랑 붙는 장면이 많이 없었다. 둘이 만나면 너무 재밌었다. (김병철은)보통 때는 순한 얼굴로 있는데 카메라만 돌면 진짜 얄미워지더라. 뻔뻔해지고 그런 시너지가 연기할 때 즐거웠다. 상대 눈빛이 변하는 모습이나 상대가 준비하는 모습을 느끼면서 김병철 배우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됐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엄정화. 그동안 가수로서 수많은 히트곡을 내고, 배우로서도 꾸준히 다작을 해오며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오며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닥터 차정숙’을 통해 연기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해낸 엄정화에게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기에 엄정화는 이제 누구에게든 칭찬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많이 표현하려고 하는 편이다. 살면서 표현을 잘 못하는데 표현을 안 하면 안 되겠더라. 특히 응원해주는 소리는 물마시듯이 해주려고 한다. 사실 제가 어릴 때 활동할 때는 못 들어서 불안해했다. ‘내가 잘하고 있나’, ‘어떻게 가야되나’ 이런 쓸데없는 고민들로 힘들었다. 그래서 후배들을 만나면 배우건 가수건 간에 무조건 후배들 입장에서 너무 예쁘고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얼마 전에 김미경 선배님이랑 박준금 선배님이랑 연락했는데 ‘너가 잘해서 그런 거다’라고 칭찬해주시더라. 이 나이에 저도 응원을 들으니까 기뻤다.”


매 작품마다 다른 울림을 선사하는 엄정화. 그가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엄정화는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로 시청자들과 항상 같이 울고 웃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췄다. 엄정화가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친근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이유다.

“캐릭터가 제 마음에 들고 이야기가 재밌는지. 전체적인 이야기는 좋은데 캐릭터가 이해가 안 되고 머릿속에서 멈출 때가 있는데 그럼 선택을 못한다. 상황이 어떻든 캐릭터가 가진 힘이 있다면 선택하는 편이다. 오롯이 이야기를 보고 가는데 그래서 감독님이나 제작사는 2차로 보게 된다. 착하고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해 주신 게 저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도 정말 좋아해줄까’라는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반가워해주셔서 어떤 이야기든 공감이 되고 진정성만 있다면 시청자들에게 와 닿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최근 엄정화는 tvN ‘댄스가수 유랑단’에서 전국 투어를 돌며 무대 위 가수 엄정화로서 활약하고 있다. 배우로서도, 가수로서도 각각의 분야에서 커리어하이를 달성한 엄정화에게는 ‘원조 엔터테이너’, ‘N차 전성기’ 등의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기도. 이번 인터뷰에서는 배우 엄정화로 만났지만 가수 활동을 꺼낼 때 그의 눈빛은 드라마 이야기할 때와는 또 다르게 반짝였다. 각기 다른 기쁨을 준다는 엄정화는 앞으로도 연기와 음악을 오가며 변화무쌍한 행보를 이어간다.

“두 가지 다 완전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가수 활동하러 무대 준비할 땐 내가 배우라는 생각을 안 한다. 두 가지 분리가 가능한데 비교할 순 없다. 무대에서 오랜만에 기쁨을 느꼈다. 정말 감동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생각했다. 어딜 가도 저를 위해서 환호하는 관객이 있는 건 기대할 수 없었다. 예전 활동할 때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지만 팬덤이 큰 가수나 아이돌과 비교할 수 없었다. 가끔 저는 환호 소리가 들리는데 이번에 무대를 하면서 듣게 된 거다. 너무 감동이었고 너무 기뻤고. 즉각적으로 기쁨이 오는 건 가수로서만 있는 것이고 배우는 다른 류의 즐거움이다.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랄까. 배우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 생각하고 감정에 빠져야하고 괴로운 만큼 캐릭터와 만날 수 있으니까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만났을 때 카타르시스가 있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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