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이, 한류 열풍의 앞문-뒷문 역할
- 입력 2023. 06.21. 11:12:31
- [유진모 칼럼] 싸이(46, 본명 박재상)가 부산에 엑스포를 유치하고 하는 프리젠테이션(PT)에 큰 도움을 줬다. 싸이는 20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30 엑스포 유치 신청국 4차 경쟁 PT에서 한국의 첫 번째 연사로 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싸이
그는 검정 수트에 상아색 넥타이를 매고 연단에 올랐다. PT에서 사용된 언어는 영어. 당연히 싸이 역시 영어로 진행하며 농담까지 던졌다. 그는 "제 이름은 박재상입니다. 하지만 저를 싸이로 알고 계신 분이 더 많겠죠?"라고 운을 떼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속 자신의 모습을 재현한 것. 장내에선 또다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마지막까지 부산 유치를 호소하며 '강남스타일'의 말춤으로 마무리했다. K-팝의 진정한 선구자로서 뒷마무리까지 잘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대한민국의 가요는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내내 표절 논란에 시달렸다. 그만큼 우리 대중음악이 세계 내에서의 위상이 미미했다는 뜻이다. 영미권의 팝과 유럽의 팝, 그리고 일본 대중음악까지 잊을 만하면 표절의 의혹을 샀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싱어 송 라이터와 작곡가들이 표절을 하거나 최소한 모방을 했다.
그러던 우리 가요가 어느 순간부터 전 세계 시장, 특히 팝의 본고장인 미국과 영국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누가 뭐래도 SM과 JYP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가시적인 가장 큰 성과를 낸 첫 장본인은 2012년 '강남스타일'의 싸이였다.
K-팝은 '강남스타일'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남스타일' 이후 전 세계의 한국의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영국이 미국의 록을 수입해 역수출하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면 한국은 이 시점에서 록을 기반으로 한 K-팝으로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획득했다. 그 효시가 싸이이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 보스턴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이내 중퇴하고 버클리 음악 대학에 진학한다. 1학년만 5번 다닌 그는 결국 중퇴한다. 그때 만난 사람이 조PD. 역시 미국 유학파인 조PD는 이미 한국에서 가수로서 성공했고, 싸이는 그를 모델 삼아 가요계에 데뷔한다.
싸이에게 조PD와 유건형('강남스타일' 공동 작곡자. 전 언타이틀 멤버)은 훌륭한 음악적 동료이자 막역한 친구였다. 싸이에 관한 훈훈한 에피소드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그는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이 가장 열광하는 가수 중의 한 명이다. 대부분 축제에 동원된 가수는 2~3곡만 부르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기 마련이지만 싸이는 웬만해서는 마이크를 안 놓으려는 가수로 유명하다.
스스로 흥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공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진정으로 학생들을 아낀다. 공연 전 안전 사고 예방부터 강조하고 실제 체크하기로 유명하다. '강남스타일'의 성공 1년 후 울랄라세션 멤버 임윤택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싸이는 유족을 만나 모든 장례 비용을 제가 감당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4년에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5억 원을 기부했다.
싸이는 가수 지망생들에게 매우 훌륭한 모델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그는 미남은 아니다.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약간 통통한 편이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음악을 잘 만들고, 그것을 잘 즐길 줄 알며, 자신만의 당당한 개성을 갖춘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를 보여 줬다. 성공 정도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위상을 바꾸었다.
그의 조건도, 음악도 사실 기존의 메인 스트림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그는 폼을 잡지도 않고, 고고한 척하지도 않는다. 멋있는 척하려 하지 않고 매우 솔직하다. '안전하게 즐기자.'라고 굳이 떠들지 않아도 그런 그의 모토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에서는 키치적 실존주의가 현저하게 두드러진다. '챔피언'과 '강남스타일'의 음악은 물론 가사가 매우 그렇다. 또한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싸이 흠뻑쇼'가 그렇다. 서태지 같은 신비주의도 없고, 차은우 같은 비주얼도 없으며, 4대 연예 기획사 같은 든든한 백그라운드 없이 스스로 중소기업 피네이션을 차려 움직이지만 그의 값어치는 바로 키치적 실존주의에서 돋보인다.
실존주의의 대명사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했다. 개개인의 존재가 모든 본질에 앞선다는, 진정한 삶의 본질이 그의 가사와 멜로디와 퍼포먼스에서 물씬 흘러나온다.
당연히 이번 PT에 도움을 보탠 싸이, 에스파 카리나, 조수미 등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다. 그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싸이가 한류 열풍의 선두를 이끌고 끝까지 그와 연관된 일에 선배로서 팔을 걷어붙여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일이다.
[유진모 칼럼 / 사진=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