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마담·팹시, 그리고 조춘자…‘밀수’ 김혜수의 변신 [인터뷰]
- 입력 2023. 07.23. 07: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타짜’ 정마담, ‘도둑들’ 팹시에 이어 이번에도 강렬한 변신이다. 해녀 조춘자로 또 다른 연기 도전에 나선 배우 김혜수. 그가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로 돌아왔다.
'밀수' 김혜수 인터뷰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이다. 김혜수는 극중 열네 살에 식모살이부터 시작해 돈이 되고,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조춘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춘자가 밀수를 하게 된 건 한탕을 하기위해서가 아닌, 살기위해서예요. 시대적 배경이라는 게 특별한 것들을 받아쓰는 고위층도 있었지만 생필품을 가장 많이 밀수하던 때죠. 준비를 오래 했어요. 해녀로 나오는 모든 배우들이 3개월 정도 열심히 준비했죠. 저는 사실 그렇게 못했어요. ‘소년심판’ 때라 훈련을 못했죠. 저는 물 공포증은 없고, 물을 되게 좋아해요. 공황상태만 안 오면 됐죠. ‘도둑들’ 때 특수한 상황 때문에 공황상태를 겪었거든요. 처음엔 공황이 뭔지도 몰랐어요. ‘나 왜 이러지?’ 처음 겪는 건데 죽을 것 같더라고요. 숨이 안 쉬어지고, 눈물이 나고, 몸이 마비가 되고. 기분이 이상하니 첫날 촬영 후에는 못했어요. 상담을 받으니 전형적인 공황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영화는 물이라는 압도적인 비중이 있잖아요. 제 상태가 어떨지 모르고, 준비도 제대로 못하니 걱정이 됐어요. 물을 보면서 ‘아 큰일났다’ 싶었죠. 스스로 물에서 테스트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잘하게 됐어요. 적응하면서 촬영에 들어갔죠. 이번에 하면서 치유가 된 건 모르겠지만 정말 다행히 팀들을 보면서 걱정했던 것들을 해낼 수 있었어요. 초반 지나서는 예전처럼 물이 편하고,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죠.”
공황상태를 극복할 만큼 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로웠어요. 항상 작품에 들어갈 때 팀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생각하죠. 이번에는 협업, 팀원으로서 저의 정체성을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시작부터 끝까지 저를 이끌었던 팀이었죠. 캐스팅도 제가 한 게 아니고, 대본도 제가 쓴 게 아니잖아요. 제 역할은 긴밀하게 준비하고, 해내는 것이에요. 그것이야 말로 운인 것 같죠. 정말 좋은 멤버들이 모였고, 좋은 멤버들이 모였다고 하더라도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일체감을 느꼈고, 유지가 됐어요. 연기, 영화와 별개로 그게 너무 좋았죠.”
‘밀수’는 70년대 어촌에서 소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군천을 배경으로 한다. 그 당시 음악, 비주얼 등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듯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조춘자의 패션, 헤어스타일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춘자는 가족이 없는 고아 출신 떠돌이에요. 아웃룩 같은 경우, 70년대 나름 트렌디한 걸 보여주려 했죠.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도 많았어요. 처음 밀수 후 목돈을 받아 정장 한 벌 씩 사 입는데 진숙이와 짝꿍이니 같은 디자인의 재킷, 팬츠를 바꿔 입자 제안했죠. 70년대 자료들이 저에게 있어 영화에 많이 녹여냈어요.”
1970년대로 안내하는 듯한 김혜수의 인물과 일체된 연기가 몰입을 높인다. 특히 군천, 서울에서 변화된 조춘자의 모습을 보는 것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춘자는 태생적으로 외로운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에너제틱하고, 밝은 에너지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내면은 굉장히 불안정하고, 위태롭죠. 춘자와 진숙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진숙은 나름 어촌에서 금수저라고 생각했어요. 선장인 아버지를 두고, 해녀들의 대장으로서 좋은 리더의 품성을 지닌 사람이죠. 책임감, 의리가 있어 맏언니 자질이 있는 진숙이에요. 떠돌이 춘자를 가족처럼 거두어 주는 진숙이 아버지와 진숙이죠. 그래서 춘자에게 진숙이는 단짝 친구 이상의 가족, 전부였을 거예요. 생존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발버둥 치며 살았다면 유일하게 춘자에게 안락함과 따뜻함을 내밀어준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싶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인 불안정함, 외로움 같은 것들을 오히려 티내지 않기 위해 활발하고, 에너제틱하게, 얹혀살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하죠. 춘자와 장도리랑은 같은 입장이에요. 춘자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마’라고 하는데 마치 그렇지 않은 것 같은 삶을 사는 거죠. 서울로 와서 춘자의 톤이 바뀌기보다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위장해요. 아웃룩 경우에도 그 시대를 표현하는데 가장 많이 보이는 인물이 춘자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적인 재미 요소로 잘 활용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했죠.”
‘밀수’는 캐스팅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바. 김혜수에 이어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는 개성 있는 캐릭터로 만들어내 다양한 매력을 발산한다. 김혜수 역시 ‘밀수’의 매력에 대해 캐릭터 관계성과 앙상블을 꼽았다.
“저는 대본을 보고, 캐릭터의 앙상블이 관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의 시너지가 기대됐고, 그게 빛을 발해야 이 작품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더라고요. 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 투톱 영화로 한정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들의 조화로운 관계성이 좋았죠.”
어느덧 데뷔 37년차다. 다양한 캐릭터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내공을 쌓아온 김혜수. 그러나 그는 여전히 촬영 현장에서 연기에 대한 한계를 느낀다고.
“많은 대본을 보고, 시뮬레이션을 해요. 예전에는 몰라서 준비가 안 되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기를 쓰고 해야 하죠. 준비한 것대로 할 수 없어요. 상대도 제가 시뮬레이션 한 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요.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거죠. 모니터를 보면서 ‘왜 이렇게 가짜 같지?’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 한계는 매번, 매 순간 느끼죠. 현장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건 누가 괴롭혀서가 아닌, 분단위로 체크해야 하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아무리 현장이 즐겁고, 좋아하는 배우가 있어도 제가 저의 민낯을 보는 건 힘들거든요. 끝까지 안 되면 눈물도 나지만 해내야 해요.”
그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든 건 ‘밀수’ 팀원들 덕분이라고 밝혔다.
“저는 아직도 현장이 좋아요. 행복했던 현장은 이번이 처음이죠. 어느 순간부터 나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싶었어요. 각자 장단점이 있으니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하지만 극복이 안 되는 단점도 있어요. 이번에는 그걸 압도하는 일체감, 팀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었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