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박정민 “장도리, 70%는 시나리오가 29%는 감독님이 만들었죠” [인터뷰]
입력 2023. 07.31. 07:00:00

'밀수' 박정민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에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배우 박정민이 아닐까. 매 작품 속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그가 이번에도 ‘역대급 연기’로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이다. 최초 시사회 이후 장도리 캐릭터를 향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2년 동안 많이 기다렸어요.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궁금했죠.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보서 제대로 못 봤어요.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중후반에 가면서 관객들이 좋아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어느 순간 영화를 재밌게 보고 있고, 앞으로 쭉쭉 가는 느낌이 들었죠. 너무 오래 기다렸던 영화이고, 기대했던 영화였어요. 그래서 보기 전부터 ‘밀수’라는 영화를 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영화관에 갔죠.”

박정민이 분한 장도리는 카리스마 있는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 사이에서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던 순박한 막내에서 밀수판에 공백이 생기자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야망을 갖게 되는 인물이다. 역할을 위해 체중도 증량했다고 한다.

“감독님이 피팅할 때 살크업된 저의 모습을 보고 ‘이대로 나오는 건 어때?’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하하. 살을 찌워 근육을 만들어야 하니까 10kg 정도 찌웠죠. 거기서 컷팅을 해야 하는데 다이어트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이 와서 감사했어요.”

박정민은 캐릭터 특유의 순박한 표정과 말투는 물론, 점차 야망을 가지게 되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장도리 역할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더했을까.



“감독님께서 ‘밀수’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장도리라고 하셨어요. 실제 본인의 고향에 있던 아저씨가 모티브라고 하셨죠. 그래서 본인이 디렉션을 많이 주는 거니 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해하지 말고 잘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장도리는 누앞에 이익만 쫓고 사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주변에 훈육이나 조언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에 자라버린 어른이라고 생각했죠. 그때그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쫓아가던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요. 연기할 때도 상황에 맞춰 장도리가 했을 법한 선택들이 무엇이고, 그 선택을 했을 때 어떻게 말할지 생각했죠.”

박정민은 2014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신촌좀비만화’의 단편 ‘유령’에 출연한 바. 일찍부터 류승완 감독의 팬이었다고 밝혀온 박정민은 류 감독의 ‘밀수’ 제안을 받고, 단번에 출연을 결정했다.

“감독님께서 저에게 중요하고, 좋은 역할을 주셨다는 것부터 특별했어요. 제가 감독님의 팬이거든요. 현장에 덜덜 떨면서 갔어요. 너무 잘하고 싶으면 떨리고, 긴장되잖아요. 막상 현장에 갔는데 너무 즐거웠어요. 감독님 덕분이기도 하지만 혜수 선배, 정아 선배님의 덕이 컸던 것 같아요. 현장을 되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셨거든요. 그래서 애정이 많이 가는 영화에요. 류 감독님과는 ‘유령’을 함께한 적 있어요. 이후 감독님에게 연락하고, 찾아뵙기도 했어요. 외유내강의 작품에 여러 번 출연하며 자연스럽게 인연이 만들어졌죠.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감독님의 더 팬이 됐어요. 감독님께서 저에게 어떤 시선이나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감독님의 애정이 느껴져 팬을 넘어 인생에서 의지가 되는 분으로 제 안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그리고 감독님의 강점은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본인 발로 뛰시거든요. 계속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생각하시는 게 보여요. 그게 감독님 영화에 나오는 에너지이자 원천이지 않을까요.”



‘밀수’ 팀 인터뷰를 진행하며 입을 모아 칭찬한 것은 바로 ‘현장 분위기’다. 하나 같이 ‘따뜻하고, 행복했던 현장’이라고 말한 것. 박정민은 그 중심에 김혜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혜수 선배님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데뷔하셨더라고요. 대선배님이시고,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분인데 그 선배님께서 저와 눈만 마주치면 ‘너무 좋아 정민아’라고 하셨어요. 너무 좋고, 감사했죠. 제가 표현을 잘하는 성격이 못 되는데 감사한 마음을 온전히 표현 못할 정도로 칭찬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로 끝낼 말이 아닌데, 더 해야 하는데 수줍어서 우물쭈물한 게 죄송스러웠죠. 저를 후배가 아닌, 동료로서, 한 프레임 안에 연기하는 배우로 상대해주셔서 힘이 됐어요. 저는 주눅이 잘 드는 사람이라 무섭거나 이러면 바로 티가 나거든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마치 하나의 동료처럼 대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연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죠.”

장도리는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캐릭터다. 이익을 얻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장도리는 시나리오가 70%, 감독님이 29% 만들어주셨어요. 잘 찾아보면 제가 만든 것은 1% 정도? 예를 들면 권 상사(조인성)가 장도리에게 ‘손 빼고 얘기해’라고 하는 신이 있잖아요. 그 말에 장도리가 ‘손 안 넣었는데?’라고 해요. 그렇게 하니까 감독님이 ‘손은 안 넣었었는데?’라고 해라 하셨죠. 지질함과 지능이 달라 보이잖아요. 그런 디테일함을 잡아주셨죠. 머리도 나빠 보이고, 바보 같은 아이가 사리사욕에 심취해 나쁜 선택을 계속 하다 보니 보는 사람들은 열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권 상사와 장도리의 액션신에서 배에 나무판자를 대고 있던 것도 대본에 있던 것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 신 안에서 반전인데 권 상사를 어떻게 쳐다봐야 열이 받을까, 어떻게 해야 더 효과적일까 생각했죠. 감독님이 혀를 날름거리라고 하셨어요. 옷 벗고 포즈 취하는 것도 없던 건데 해보라 해서 한 거죠. 저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아니면 거부감 같은 게 있었는데 이런 거로 인해 깨지는 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되게 만화적인 연기잖아요. 자연스러운 것만이 좋은 게 아닌, 상황에 맞게 하는 연기도 좋은 연기라는 걸 깨달았죠.”



데뷔작 ‘파수꾼’을 시작으로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작품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발산한 박정민. 자신만의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하며 스크린을 사로잡은 그는 ‘독립영화계 송강호’라는 찬사를 듣기도.

“가끔 생각해요. 제가 어떤 영화를 잘 찍었는지 검색해 보기도 하죠. 모든 역할과 영화들이 저를 괴롭혔더라고요. 여러 모로 마음고생 시킨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다 소중한 작품들이에요. 남들이 바라보는 저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느낌과 제가 바라보는 필모의 느낌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누군가는 저를 평가하겠지만 내 자신은 필모를 아껴주고, 저를 짓누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욕을 들었던 작품이더라도 저에게는 소중해요.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있죠. 저를 학대하고, 자학하는 본성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훈련이라고 해야 할까요. 현장에서도 유연해지는 것 같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 자체도 유연해지는 것 같아요. 삶이 조금 더 여유로워지는 느낌이죠. 결국 제가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일이니까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샘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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