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 외피 두른 현실 풍자극, ‘콘크리트 유토피아’ [씨네리뷰]
- 입력 2023. 08.03. 07: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극한의 상황에서 보편적 인간성을 시험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는 모든 것이 무너진 이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고 없이 닥친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 아파트만 그대로다.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은 황궁 아파트로 몰려든다.
입주민과 외부 생존자들의 갈등이 쌓여갈 때 1층의 한 집에 불이 나는 일이 발생한다. 화염에 휩싸인 집에 들어가 단숨에 불길을 진압한 인물은 바로 902호 주민 영탁(이병헌). 그는 투철한 희생정신을 인정받아 새로운 주민 대표로 선출된다.
영탁을 중심으로 민성(박서준), 금애(박선영) 등은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황궁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따르거나, 떠나거나. 하루하루 생존의 위기가 벌어지는 가운데 그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갈등이 발생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각색됐다. 원작은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렸다면 영화는 철저히 내부자의 관점으로 재난 이후 삶을 그린다.
‘재난’을 다루고 있기에 한 편의 블록버스터 장르물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 있겠다. 재난이 어떻게 발생했냐가 아닌, 재난 이후 살아가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 재난의 외피를 둘렀을 뿐, 생존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이야기를 신랄하게 그려낸 블랙 코미디다.
영화는 한국에서 ‘아파트’가 갖는 의미와 문제점도 짙게 은유한다. 대지진이 벌어지기 전, 황궁 아파트 입주민들은 발도 못 딛게 한 드림팰리스 사람들, 은행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자가’와 ‘전세’를 따지는 사람, 전세 사기를 겪게 된 인물의 고통까지 우리의 현실을 풍자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와 질문을 던지기에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올 여름 개봉 영화 중 가장 무겁고, 어둡다. ‘가족’과 ‘재난’이라는 익숙한 소재로 ‘인간 존재’에 대한 묵직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도 쾌감 대신 불편한 상상과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배우들은 제 각기 황궁 아파트의 입주민으로 완벽하게 분한다. 이병헌은 ‘주민대표’라는 완장을 차고, 권력을 얻게 되자 광기에 사로잡혀가는 인물을 탁월하게 표현해낸다. 블랙 코미디에서 스릴러, 서스펜스, 공포로 변주하는 그의 연기는 또 한 번의 인생 캐릭터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이병헌과 함께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김도윤, 박지후 또한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잉투기’와 ‘가려진 시간’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의 7년 만의 신작이다. 오는 9일 개봉. 러닝타임은 130분. 15세이상관람가.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