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 찾은 수중 액션”…‘밀수’ 류승완 감독의 ‘무모한 도전’ [인터뷰]
입력 2023. 08.04. 08:00:00

'밀수' 류승완 감독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여름 영화 베테랑’이 돌아왔다.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등 평단과 흥행을 모두 사로잡은 류승완 감독. 그가 ‘모가디슈’ 이후 2년 만에 여름 텐트폴 시장에 컴백했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이다. 제작 총괄을 맡은 조성민 프로듀서가 로케이션 헌팅을 위해 방문한 소도시 박물관에서 70년대 성행한 해양 밀수에 관한 자료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조성민 부사장이 ‘시동’ 촬영 중 군산에 갔다가 지역 박물관에서 70년대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는 박물관 사료를 발견했어요. 공교롭게 그보다 이전에 장르 잡지에서 박재식 작가가 썼던 부산 지역에서 벌어진 70년대 여성 밀수단 이야기가 흥미로웠죠. 두 가지가 섞인 거예요. 처음엔 연출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초기 각본이 나온 것을 보고, ‘이건 못 봤던 거다’ 싶었죠. 해상 밀수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어요. 해녀라는 직업군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몇 없거든요. 유럽에 비슷한 직업을 가진 곳도 있지만 거긴 남자들이 들어가서 하지 여자들이 하진 않아요. 여성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해서 활극을 펼친다는 것이 어디서도 잘 못 봤던 것이죠. 한 번 해보면 새로운 시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영화는 춘자(김혜수)와 준숙(염정아)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들 주변에는 여성 해녀들이 있고, 다방 마담인 옥분(고민시)도 힘을 보탠다.

“장르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것을 하는 것 같지만 재탕하는 걸 두려워해요. 영화를 만들 때 항상 새로운 걸해요. 이번 영화를 하면서 그냥 ‘여배우’가 아니고, 김혜수, 염정아잖아요. 부담감보다는 항상 흥분이 됐죠. 김혜수, 염정아 아우라가 세지만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 등도 큰 산맥에 코어를 지탱하고 있어요. 신구의 조합, 남녀의 조합인 거죠. 여성 서사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인물 자체도 그런 성격을 가진, 사건에 휘말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했죠.”



영화 속 등장하는 군천은 가상의 도시다. 군천의 모습은 70년대 레트로 무드를 통해 느껴지는 향수와 급성장하는 해안 도시의 거친 매력까지 곳곳에 담아냈다.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주요 배경을 가상의 도시로 설정한 건 ‘짝패’ 이후 처음이에요. 이것은 장르의 세계라는 거죠. 장르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익스트림하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린 시절 매혹된 영화의 요소들, 그 시절 대중문화에 대한 기억이 이 영화에선 음악과 패션이에요. 오히려 무엇을 하려고 하기보다 대중영화를 할 때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는 것부터 자유로워졌죠. 이 영화는 마음이 편했어요. 재밌었고요.”

‘밀수’의 가장 강렬한 포인트는 바로 화려한 캐스팅이 아닐까. 김혜수, 염정아를 중심으로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에 이르는 배우들의 조합은 노련하면서도 신선함이 느껴진다.

“제가 이 영화를 왜 재밌게 찍었나 생각해보면 현장에서 기 싸움이 1도 없었어요. 경쟁구도가 단 1도 없었죠. 현장에서 물론, 최소한의 긴장감은 있어요. 장르의 목표, 방향이 있으니 거기로 향해가는 긴장들은 유지되는데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배우들 입장에서의 경쟁구도가 있거든요. 심지어 카메라와 경쟁구도도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호흡이 잘 맞는다 정도를 떠나, 배우들의 인품이 좋았어요. 거기에는 김혜수, 염정아 두 코어가 잘 이끌어줬죠. 감독 입장에서는 그런 현장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가 너무 편했어요. ‘이렇게 해볼까요? 저렇게 해볼까요?’라며 편하게 했죠. 배우들은 제 디렉션을 따라 했다지만 그만큼 겸손한 사람들이었어요. 지시대로 했다면 현장에서 깜짝 놀랄 일은 없었을 거예요. 우리 배우들은 창조적인 예술가였죠.”



‘밀수’만의 압도적이고, 새로운 비주얼을 보여주는 요소는 수중 촬영이다. 김혜수, 염정아 등 배우들은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전문가 지도하에 3개월간 수중 훈련을 진행하며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움직임을 체득했다.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수중 액션신은 리얼하게 완성될 수 있었다.

“처음에 테스트를 하는데 배우들이 물속에서 너무너무 아름답게 움직이더라고요. 테스트 하는 수조는 유리로 되어 있어 카메라를 밖에 두고 찍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배우들 반 이상은 수영을 못하더라고요. 저는 정아 씨가 수영을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박경혜, 주보비는 제가 연락하니 눈치가 빨라 ‘저야 물개죠’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수영을 못하더라고요. 하하. 훈련 이후 물개처럼 수영을 했어요. 감격스러웠죠. 수영을 편하게 하는 사람은 김재화 밖에 없었어요. 촬영을 하려면 카메라도 물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카메라를 세팅해 배우들이 들어오기 전 앵글을 잡고, 동선을 맞추면 배우가 입수하는 동안 물이 움직여요. 배우가 입수해서 호흡기를 뗐다, 붙였다 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움직이죠. 그때 마다 정말 ‘왜 시작했을까, 이걸 한다고 했을까’ 후회의 연속이었어요. 그러나 ‘오케이’가 되면 ‘이게 된다고?’ 싶더라고요. 그 감동들이 있었어요.”

이 모든 수중 촬영을 위해 ‘밀수’ 제작진은 아티스틱 스위밍 팀은 물론, 미술팀과 무술팀, 그리고 시각효과 팀과 함께 철저한 사전 준비를 진행했다. 바다 속 풍광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6M 수심의 수조 세트를 만들기도. 수중 액션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남들이 안 해본 거라 시도하고 싶었어요. 제가 찾고 싶었던 건 중력의 작용이 지상에서 보다 덜 할 때 움직임이라면 카메라와 동선이 자유로울 수 있겠다 싶었죠. 두 번째는 중력의 작용은 덜 받지만 물의 작용을 받기에 남녀가 대결을 한다 해도 물속 상황이 달라지기에 형식적이면서 동시에 판타지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김희진 코치를 중심으로 한 싱크로나이즈 팀들의 공이 컸죠. 대표적으로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두 사람이 싸우는 장면은 많이 봐왔잖아요. 그런데 물속에서 근접한 어떤 카메라 움직임과 사람들의 몸이 엉켜 움직이는 동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테스트를 해본 거죠. 예를 들어 진숙, 춘자가 손을 맞잡은 건 처음엔 하이파이브였어요. 그런데 테스트에서 동작이 너무 멋져 대본 자체를 바꿨죠. 처음 하는 시도들이었기 때문에 무모한 것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들을 계속 찾을 수 있었어요. 게을리 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영화는 진숙과 춘자의 감정이 축을 이룬다.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유격이 생기고, 갈등은 싹을 틔운다. 이후 두 사람이 다시 밀수판에 함께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애초에 외관상 김혜수, 염정아 두 배우가 있기에 ‘여성 투톱 영화’라고 읽혀질 수 있어요. 저희가 만든 최초 포스터도 그렇고요. 그러나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굳이 따지자면 투톱도 아니고, 진숙이를 중심으로 주변인물의 변하는 이야기죠. 그럼에도 여성 투톱이라고 한 이유는 영화 개봉 후에 잘 보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영화를 만들 때 이 흐름이 자연스러운가를 보거든요. 배우들이 빈도에 비해 밀도를 높게 표현해줘서 균형이 잘 맞춰진 것 같아요. 춘자, 진숙의 서사가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에 대해 저는 오히려 상상의 여지를 두는 것이 영화를 생각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었죠. 영화 막판에 모든 것을 알게 된 춘자, 진숙 대화 장면은 핵심적인 장면이었어요. 배우들과 같이 만든 장면인데 처음엔 대본에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어요. 그러나 친구 사이에는 주절주절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그 장면이 가진 진심에는 많은 말들이 필요 없었던 거예요. 그 여백들을 관객들이 채워주신다고 생각했죠. 각자 자신의 취향과 삶의 궤적을 따라 끼워 맞추는 게 재미가 아닌가 싶어요.”



‘밀수’의 주연 배우들을 인터뷰하면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건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였다. 류승완 감독, 그리고 제작사 외유내강만이 가지는 현장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특이한 건 이 영화 촬영 전날, ‘안 끝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 적은 처음이었죠. 저는 항상 현장이 힘든 사람이었어요. 숙소에 돌아오면 ‘왜 이렇게 밖에 못했을까?’ 생각에 수면 장애에 시달리기도 했죠. 이 영화는 모든 게 현장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내가 관객들보다 즐거우면 안 되는데’ 싶을 정도였죠. 오랜 세월 같이 한 동료 스태프들과 팀워크를 잘 이끌어준 배우들의 공이 커요. 현장에서 노력하는 건 항사 실수 할 수 있다, 내가 틀린 선택일 수 있기에 준비를 가급적으로 잘 하자 싶었어요. 제가 가지는 연출의 기본적인 태도죠. 제 현장이 강도 자체가 세요. 그렇기에 그 자리에서 보상 받을 수 있게 하자 싶었어요. 가급적이면 즐거운 장면에선 크게 웃으려 노력하고, 힘든 장면에선 걸맞은 반응을 하려고 했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NEW, 외유내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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