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귀' 감독·작가 "귀신보다 사람이 보이는 드라마 원했다" [인터뷰]
- 입력 2023. 08.11. 14:10:0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한국형 오컬트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호불호를 극복하고 방영 내내 10%대 시청률을 유지했던 '악귀'. 김은희 작가는 이번에도 '장르물 대가'라는 수식어를 제대로 입증해냈다.
김은희 작가
김은희 작가와 이정림 감독은 최근 SBS 금토드라마 '악귀'(극본 김은희, 연출 이정림·김재홍) 종영을 기념해 셀럽미디어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악귀'의 성공 요인에는 완벽한 '작감배' 조합을 빼놓을 수 없다. 드라마 '싸인', '유령', '시그널', '킹덤' 등 집필하는 장르물 작품마다 흥행했던 김은희 작가를 시작으로, 오컬트적인 영상미를 더해준 이정림 감독, 그리고 김태리, 오정세, 홍경 등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졌다. '악귀'가 오컬트 장르에 대한 편견을 깨고 웰메이드 장르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김은희 작가는 "기획부터 시작해서 이런 아이템이 괜찮을지, 공중파에서 오컬트라는 장르를 시청자분들이 잘 받아들여 주실지 등 고민이 많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부족한 부분들도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밝혔다.
이정림 감독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작가님, 배우들 그리고 훌륭한 스태프를 믿고 촬영에 임했다. 시청자들이 추리하는 내용들도 흥미롭게 봤고, 지인들로부터 연락도 많이 받았다. ‘진짜 비밀로 할 테니 나한테만 몰래 말해줘’라는 문자만 여러 개 받았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며 많은 관심과 사랑에 고마움을 표했다.
'한국형 오컬트 스릴러', 이름만 들어도 신선함이 느껴지는 장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김은희 작가에게 새로운 시도는 작은 고민이 됐다. 김 작가는 "기획부터 시작해서 이런 아이템이 괜찮을지, 공중파에서 오컬트라는 장르를 시청자분들이 잘 받아들여 주실지 등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김 작가는 '악귀'를 집필할 때 어떤 점에 더욱 중점을 뒀을까. 김 작가는 "귀신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귀신도 한때는 사람이었던 존재니까 그 귀신들에게도 나름의 이야기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의 의도처럼 '악귀'는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오컬트 장르지만, 그 속의 서사를 쫓아가보면 여러 청춘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1958년부터 현재까지의 긴 시간 사이의 청춘들의 이야기와 이들을 좀먹는 그릇된 욕망과 사회악을 다루고 있다.
김 작가는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란 말이 있지 않나. 특히나 끔찍한 범죄를 보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며 "'악귀'는 그런 생각에서 비롯됐다.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에게서 희망을 뺏어간 범죄자들을 귀신에 빗대어 그려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지금껏 시도한 적 없었던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만큼 이를 드라마로 옮기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이 감독은 "모든 드라마가 그렇겠지만 악귀도 주인공 구산영(김태리), 염해상(오정세)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끝까지 쫓아갈 수 없는 작품이었다. 촬영 전부터 작가님과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시청자가 둘을 응원하게 하려고 노력했다"며 "인물들의 첫 등장이나 공간 구현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또 악귀를 비롯한 귀신들, 상황을 묘사할 때 지나치게 화려한 VFX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익숙하면서도 무섭고 기묘한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악귀'는 15세 이상 관람가다. 사실 오컬트는 장르 특성상 징그럽고 잔인한 장면이 필수적이다 보니 19세 이상 관람가로 판정되는 경우도 적잖다.
김 작가는 "제가 생각한 '악귀'는 잔인하다기보다 스산하고 슬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면에서 15세 이상 관람가가 많이 아쉽진 않았는데, 피 묻은 칼이나 유리조각이 나올 수가 없어서 그런 면을 고민하긴 했었다"고 털어놨다.
드라마를 연출하는 이 감독은 "조금 더 무서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며 "그러나 긴장감의 문제는 연령 제한과는 상관없는 저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표현 수위가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다면 잔인한 장면들은 더 들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15세 내에서도 충분히 담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악귀'의 스토리를 쫓아가보면 자주 등장하는 장소나 물건이 있다. 한강 다리 위, 시골 마을, 그리고 문, 붉은 댕기 등은 작품 속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김 작가는 각 캐릭터들에 가장 맞는 장소, 물건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김 작가는 "한강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인 산영이가 힘들 때 찾아가는 곳이었고, 장진리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 있을만한 과거의 마을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붉은 댕기는 당시에 가난했던 어촌에서 가지기 힘든 비싼 물건, 어린 여자아이를 홀릴 수 있을만한 물건을 고민했다"며 "문은 여러 나라의 민간신앙에서 중요시되는 매개체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가 느꼈던 경험도 녹여져 있다. 공사 중이었던 건물에 갔던 적이 있는데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문이 없었다. 그때 받았던 낯선 기억이 대본을 쓸 때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해당 소재들이 드라마에서 더욱 돋보인 것에는 연출의 영향도 컸다. 이 감독은 자주 등장했던 문에 대해서 "주로 긴 복도 끝에 문을 배치해 인물과 문 사이의 거리감에서 오는 긴장감을 잘 활용하고자 했다. 태영의 집에서 해상이가 갇힌 복도, 고시원의 복도, 화원재의 복도, 한강의 긴 다리 위 모두 인물들이 서 있는 공간이다"라며 "어둡고 끝이 없지만 결국 문을 열고 나가 잘 살 것이란 암시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악귀'는 김태리, 홍경, 오정세라는 배우 라인업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 김 작가는 "이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듣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었다"며 "오컬트라는 새로움에 도전해주시고 멋진 연기를 보여주신 명품 배우님들, 사랑하고 존경한다. 전 귀신보다 배우분들의 연기가 더 소름이 끼쳤던 것 같다"고 배우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김태리, 오정세, 홍경 세 배우와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눴다며 "셋 다 질문이 엄청났다. 촬영 막바지쯤 배우들에게 고백했는데 주연들이 내 꿈에서까지 나타나 질문을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거기서 또 다른 생각들이 파생되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막막했던 순간들이 해결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각 배우들의 장점과 함께 그들의 열정에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김태리를 열정적으로 현장을 이끈 배우라며 "김태리는 디테일한 부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네" 한마디도 수십 번 뱉어 보며 좀 더 좋은 것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배우고 그 결과물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숲 전체를 보고 있는 배우라 함께 작업하며 많이 의지하고 배웠다"고 얘기했다.
이어 오정세를 고요하지만 단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오정세는 고독, 외로움, 외골수 등 염해상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다 소화하고 표현해줬다"며 "홍경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하고 진중하며, 태도만으로도 본받을 점이 많다. 극 중 서문춘 형사가 죽은 뒤 시청자들이 더 슬퍼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 홍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 배우 뿐만 아니라 김원해, 김해숙, 진선규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열연도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 감독은 "김원해 배우는 현장에서 등불 같은 존재로 후배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 김해숙 배우는 화면 속에선 정말 무서워 보이지만 컷, 하면 호호 하고 웃는 소녀 같은 배우로 스태프들이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배우였다"며 "진선규 배우는 좀 과장해서 첫 만남에 이미 알고 있던 옆집 형님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부드럽고 우아한 말투로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사람이다. 제 나이보다 12살이나 많은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엄마처럼 늘 보듬어 주시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해해 주신 박지영 선배님께도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산영은 아버지 구강모(진선규)처럼 점점 시력을 잃어가게 되고, 악귀를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산영은 시력을 잃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으로 결국 악귀를 없앤다.
엔딩에서 산영은 해상와 함께 '선유줄불놀이' 광경을 보던 중, 흑암시 증상이 찾아온다. "그래도 살아보자"는 말과 함께 드라마는 끝을 맺는다.
김 작가는 흑암시 엔딩에 대해 "산영이다운 선택을 내린" 엔딩이라고 말했다.
"산영이는 스물 다섯, 아직은 인생의 시작점에 있는 청춘이다. 극 중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겠지만, 아무리 옳은 선택을 했다고 해도 희망만이 가득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현실을 흑암시로 표현하고 싶었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SBS, 스튜디오S, BA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