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준희 감독, '디피2'를 대하는 진중함[인터뷰]
- 입력 2023. 08.16. 16:04:32
-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한준희 감독이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질문들로 가득 채워진 ‘D.P.’에 조금의 희망을 남기며 매듭지었다.
한준희 감독
한준희 감독이 2021년 군대의 현실을 보다 리얼하게 그려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낸 ‘D.P.’의 두 번째 이야기를 2년 만에 선보였다. 시즌1에서는 탈영병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D.P.) 준호와 호열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쫓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했다면, 시즌2에서는 여전히 변한 게 없는 현실과 군대 내의 부조리에 부딪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으며 또 한 번 묵직함 울림을 전했다.
특히 시즌2는 시즌1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조석봉(조현철) 사건 이후의 시점으로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 시작됐다. 변함없이 군부대에 속해있는 준호와 호열을 비롯해 조석봉을 둘러싼 모든 캐릭터들은 피폐해진 정서와 공허한 마음을 안은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에 시청자들은 다시 만난 이들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디피2의 암울함 속에 젖어들었다. 한준희 감독 역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시즌2는 보다 조심스럽게 고민하고 접근했다.
“인물들이 어떻게 됐을 것인가. 그리고 이 이야기를 우리가 왜 해야 되지. 조석봉 사건을 눈앞에서 목도한 20대 초중반이라면 온전하게 지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온전하지 못해도 군대에서 기간은 남아있으니까. 영화 속 캐릭터지만 사람이 살면서 그런 일을 겪고 누군가와의 사건이 있다며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안고 치유하고 돌파해서 나아 가야되는지가 이야기의 줄기가 돼서 작가님이랑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시즌2를 제작하면서 한 감독이 갖게 된 책임감은 더 커졌다. 군대 내 여러 가지 부조리한 문제들을 조명하면서, 그가 찾고 싶었던 건 군대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론이었다. 이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으로 그려진 군대에 한 감독은 끊임없이 반문하며, ‘디피’ 시즌2가 시사하는 바를 상기시켰다.
“이 이야기의 소재 자체가 거창하지 않지만 책임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소재라 생각한다. 실제로 연상되는 사건도 있고 군대에 계셨거나 군대 밖에서 보셨거나 직간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그 책임에 대해서도 제작진들도 자문했다. 시즌2에서 무엇을 거창하게 할지. 하지만 다시 이야기를 만든다면 소재에 대해서 미약하지만 책임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하는 어떤 질문들, 어떻게 돌파하려고 노력하고 몸부림치는지 그런 사람들이 보기 드물기 때문에 드라마틱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래야만 군대든 사회에서든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극의 전반을 이끌어간 정해인은 쉽지 않은 감정선을 곧잘 소화해냈다. 시즌1에서 준호가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응징의 주먹을 휘두르듯이, 시즌2에서도 그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지나칠 정도로 고군분투한다. 이는 ‘디피’ 시리즈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한 감독의 메시지가 준호에 투영돼 있었다.
“시즌1부터 보신다면 그 감정선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안준호는 융통성 없고 모두를 번거롭게 하는 사람이고. 다 괜찮은데 너는 왜 NO를 하는 사람인가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주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쟤는 왜 저렇게 하지?’하는 사람들 덕분에 저도 조금 더 좋아진 무언가 느낄 수 있고 좋아진 시스템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고 정해인 배우는 이미 그 인물로서 일체화돼있어서 충분히 잘 해주셨다.”
구교환이 연기한 한호열은 상당한 변주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했다. 시즌1에서는 극의 무게를 잠시 환기시켜주며 가벼움을 담당했다면, 시즌2에서는 트라우마도 나오고 한동안 말을 잃기도 하고, 다시 기발한 아이디어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등 다변화된 모습으로 성장사를 그려냈다.
“20대 초중반의 청년인 한호열은 군 생활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죽음 혹은 죽지 않았지만 큰 사건을 목도하고 겪었다. 한호열이 굉장히 위트와 재치도 넘치고 섬세하고 유약한 것도 있고 센척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 인물이 그런 시간을 관통했을 때 멀쩡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방식이 다를 수 있지만 그렇게 어떤 상황을 겪었을 때 호열의 외로움, 힘듦을 이겨내는 방식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군부대에 환멸을 느끼고 각성한 임지섭(손석구)의 활약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진급에만 목적을 둔 흔한 간부였던 시즌1과 달리 시즌2에서는 사건을 은폐하려는 군 사회에 대항하는 등 의미있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다만 이러한 임지섭의 변화와 확대된 분량에 일각에서는 손석구의 인기 때문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같은 말을 했을 때, 계급과 권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듯이 한 감독은 준호, 호열보다 좀 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지섭의 영향력을 끌어내고자 했다.
“시즌1 마지막에 조석봉 사건을 거치고 시즌2에서 등장했을 때도 여전히 뭔가 회의적이었는데 그 이후로 김루리 사건을 관통해나가면서 본인의 전 부인이 등장해서 상황이 생긴다. 시즌1때 는 센척하기도 하고 악한 척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 본질 자체가 그런 인물은 아니라 생각했다. 본인이 앞에서 해 나가야되는 것들이 뭐가 됐건 너무 중요하지만 넘지 않아야 될 선이 있는 데가 있어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내가 믿었던 것들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또한 혼란스럽고 어떤 책임을 느끼게 되지 않나. (손석구의) 분량을 늘리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시즌2에서 결국 과거 폭력을 의인화 한 캐릭터로 묘사했을 때 이 이야기가 계속 누군가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국가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되는데 안준호는 그런 것에 대해 똑똑한 인물은 아니다. 그 과정을 달려가기 위해서는 준호, 호열 보다 장교 간부인 임지섭 대위를 통해 닿을 수 있었고 그게 최초의 발화점이라 쓰고 싶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발걸음이 된 ‘디피’ 시리즈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군 사회를 고발함과 동시에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기억됐다. 시즌 1, 2를 거쳐 온 현 시점에서, 한 감독이 가지고 있는 책임감은 무엇일까. 그는 그저 작은 불씨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뿐이라고 단언했다.
“저는 정치가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니고 시리즈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이 이야기의 소재를 가져와서 쓴다고 했을 때 적어도 거기에 대해 나아가는 방향으로 애쓸 필요가 있지 않나. 여러 가지 함유돼 있을 수도 있고 보시는 분들 몫이지만 애썼던, 이루지 못했던 시즌1에서의 결말들을 시즌2 엔딩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범주 안에서 작은 것이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나아가서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인물들처럼 계란이 바위 쳐서 흔적이라도 남기면 좋겠다.”
승패가 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국가의 책임도 내비친 ‘디피’시즌2의 결말을 두고,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라는 지적도 있었다. 한 감독의 의도는 한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인물들의 시선과 조직, 상황 등을 다각도로 비추면서도 그 안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다.
“국가를 향한 손해배상소송은 실제로 있었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도 보게 됐다. 다만 이건 극이니까 12개의 이야기를 관통하고 지났을 때 조금은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제작진과 배우들끼리 생각하면서 했던 것 같고. 시즌1의 결말을 이해하지 못한 분들은 시즌2를 한다면 완벽하게 극적이게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애써서 내부 고발하는 사람도 존재하고 무언가 동의가 되지만 의의제기를 하고 그런 게 캐릭터 말이다.”
안준호는 다시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우연히 황장수를 목격한다. 군대에서는 악마와 다름없어 보이던 그의 너무나 평범한 모습은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했다. 두 인물의 조우 장면을 통해 한 감독은 누구든 와 닿을 수 있는 현실감을 불어넣고자 했다.
“징병제로 군대에 간 사병으로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모두 다 가해자이거나 피해자로서 어디로서만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황장수(신승호)도 굉장히 악인이고 그렇지만 그 또한 사회에서는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이 화가 날 수 있고 어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게 현실적일 수도 있고. 그 상처를 안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돼서 지난 일들에 대해 지내는 모습들이 희망적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시즌1의 엔딩보다 한 발짝 나아가는 결말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준희 감독에게도 ‘디피’ 시리즈는 도전의 산물이었다. 처음 시도한 시즌제 드라마이자 사회적 메시지를 깊게 담은 작품인 만큼 어려웠지만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한 감독은 ‘디피’의 진면목을 느끼고 싶다면 시즌1, 2의 정주행을 강조했다.
“저희가 제작진, 배우들 다 이 12개의 이야기를 시즌1, 2로 구분 짓는 것이 애매하다고 느낀 이유가 거의 같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3년 가까이 동고동락하면서 찍어왔다. 이야기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애써서 한발 짝 나아가려고 했다. 보시는 분들의 몫이지만 모두가 진심을 가지고 애쓰려고 했으니까 처음부터 한 호흡으로 봐주시면 가장 좋은 감상이 되지 않을까.”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