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버스' 제작진 "대본 없어…매 순간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인터뷰]
- 입력 2023. 08.17. 07:00:0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드라마, 영화가 아닌 예능에 좀비가 등장한다. 심지어 허상인 좀비에 '리얼리티'가 더해졌다. 시청자 사이에서는 출연자들의 행동이 대본인지, 리얼인지 수많은 갑론을박이 오갔다. 호평과 혹평을 넘나들며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좀비버스'다.
박진경 CP, 문상돈 PD
박진경 CP, 문상돈 PD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좀비버스'와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8일 '좀비버스'는 공개 후 바로 넷플릭스 국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박진경 CP는 "생각보다 입소문이 빨리 나서 놀랐다. 보통 넷플릭스 이용자분들이 드라마, 영화를 많이 찾아봐서 예능은 어떨지 걱정이 조금 많았다"며 "1년 동안 고생하면서 준비했던 예능인데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서 신기하다. '플릭스 패트롤'에서도 전체 글로벌 순위 TOP 10에 들어갔더라. 외국에서도 꽤나 많은 분들이 봐주신 것 같아 기분이 얼떨떨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좀비'와 '예능'의 조합은 낯설다. 드라마, 영화가 아닌 예능에서 좀비라는 소재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는 것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박 CP는 "'좀비'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단어만으로 어떤 배경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 대부분 세계관은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도입부의 몇 분을 투자해서 내용을 설명한다. 하지만 저희는 갑자기 다른 사람을 물고서 고개를 드는 순간 바로 좀비가 설명된다. 또 이 좀비들이 물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감염시킬 거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면서 전체적인 배경 설명이 바로 된다"고 전했다.
또한 '좀비'와 'B급 코미디'를 떼어놓을 수 없는 키워드로 생각했다. 박 CP는 "사실 좀비 자체가 가상의 문제라서 이것을 리얼리티와 접목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차라리 코미디로 풀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시청자들도 결국 좀비 연기자들이 일반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덱스가 줄을 타고 올라갈 때 놀라서 쳐다보는 좀비, 바이킹을 타면서 욕을 하는 좀비, 범퍼카에서 연기를 하면서도 핸들을 돌리는 좀비 등을 모두 의도적으로 삽입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가져와서 코미디 쇼를 펼쳤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좀비버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신선하고 새롭다는 호평도 있었지만, 반면에 몇몇 시청자들은 '리얼리티 쇼'에는 맞지 않는 출연진들의 어색한 리액션들에 실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평이 정말 극과 극이다. '재미있다'부터 '이런 쓰레기가 다 있냐'까지 평이 나뉘더라. 싱가포르, 필리핀 등 한국 예능이 익숙한 아시아권에는 어필이 됐다. 그런데 리얼리티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겐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창작자로서는 피드백이 없는 게 더 슬프다. 생각보다 피드백이 정말 격렬하고, 인터넷 상에선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그 와중에 성적이 뒷받침되고 있어서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박진경 CP)
시청자들은 '대본설'을 두고 계속해서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다. 몇몇 출연진들의 리액션 등은 마치 캐릭터를 설정한 듯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박 CP는 공개 전 제작발표회에서도 이를 걱정했는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리얼리티 시리즈는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공개됐던 '피의 게임'과 같은 리얼리티 시리즈와는 정말 다르다. 사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진행됐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들 모두 기본이 되는 구성안들이 있었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황만 던져드렸다. 2화의 첫 시작에서 차 사고가 난 상황이 그려진다. 출연진들에게는 '너희들은 지금 차 사고가 났다. 여기에 엎드려 있다가 깨어나면 된다' 정도만 말을 해준다. 그 이후에 나오는 모든 행동과 대사들은 정말 애드리브였다."(박진경 CP)
"제작자는 예능의 기본 틀인 판을 깔아놓는다. 우리는 그 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깔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비교적 출연자들에게 불친절했다. 저희끼리만 이미 세팅을 다 해놓고 그들에겐 말해주지 않았다. 댓글들을 보면 '죽을 사람이 결정돼 있었다', '주요 출연자는 물려도 바로 안 죽는다' 등 다양한 의견이 있더라. 그런데 정말 대본이 있고, 특정한 출연진을 살리고 싶었다면 물렸어도 어떻게든 살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문상돈 PD)
그렇다면 제작진은 대본 없이 출연진들을 어떻게 움직였을까. 박 CP는 "나름대로의 명분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마트 보완실에 갇혔을 때에도 출연진들이 무서워서 가만히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전염병 사태가 돌고 있으니 필요한 식량을 챙기라는 긴급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그 문자를 보고 출연진들은 마트에서 무슨 행동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NPC로 등장한 연기자들에게는 대본이 존재했다. 박 CP는 "10명의 출연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제작진 편이다. 2화에서도 먼저 대학생 역할의 연기자들이 물건을 가지러 나가고, 실수로 큰 소리를 내서 좀비가 몰려드는 장면이 있다. 연기자들에게 이런 내용은 지시했던 거고, 그것을 통해서 10명의 출연자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출연진들의 리얼한 반응이 오히려 제작진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문 PD는 "모든 순간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당황을 많이 했다. 갑자기 예상 밖의 행동이 나와서 저희끼리 많이 상의했던 기억이 있다"고 털어놨다.
몇몇 시청자들은 전방 십자인대 수술 후 '좀비버스'를 촬영한 박나래, 영하 13도의 바다에 들어간 덱스 등 출연진들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제작진들은 이와 관련해 숨겨진 비밀을 공개했다.
"부상으로 걷기 힘든 사람을 촬영에 쓰진 않는다. 위기 상황에 빠진 설정인 만큼 계속해서 박나래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계단 정도는 올라갈 수 있다,' '넘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등 계속해서 얘기를 나눴다."(박진경 CP)
"사실 덱스가 바다에 들어갈 땐 멀리서 지켜보던 우리들도 놀랐다. 아무렇지 않게 물에 들어가길래 '덱스가 UDT 출신은 맞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이시영, 파트리샤, 덱스 세 명이 바다 한 가운데에 남겨져서 30분 정도 있다가 구해줘야겠다 생각했는데, 찰나의 순간에 덱스가 들어갔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바다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라서 온수 욕조도 준비했고, 안전요원 분들도 대기를 하고 있었다. CG로 안전요원 분들을 다 지웠다."(문상돈 PD)
'좀비버스'는 극명하게 반응이 나뉘었지만 그만큼 뜨거운 반응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제작진은 다양한 피드백을 수용하면서도 시청자들이 '좀비버스'를 가볍게 즐겨줬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조금 격하게 말해서 '뇌를 빼고 보라'고 하고 싶다. 정말 괜찮은 킬링타임용 콘텐츠다. 개연성을 따지는 순간 어려워질 수 있다. 차라리 술 한 잔 하면서 가볍게 시도하면 훨씬 더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것 같다."(문상돈 PD)
"저희 프로그램은 그냥 웃으면서 보라고 만든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자막 등의 연출에서도 피식 웃을 수 있는 요소들을 계속 넣었다. 때마침 여름철이라서 좀비가 오싹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동안 보던 좀비물들과는 조금 달라서 그 부분을 몇몇 분들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 기존의 좀비를 기대하고 보면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냥 좀비의 배경을 쓴 코미디 예능 쇼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켜봐주셨으면 한다."(박진경 CP)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