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 그 자체가 정체성이 돼버린 '디피2'[인터뷰]
입력 2023. 08.18. 08:00:00

정해인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정해인이 오로지 꼿꼿하게 제 몫을 해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준호 그 자체로 분한 정해인의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은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D.P.’(디피) 시즌2는 군무 이탈 체포조(D.P.) 준호와 호열이 여전히 변한 게 없는 현실과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딪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 정해인은 극중 군대 내 부조리에 맞서서 직접 몸을 부딪치는 안준호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어온 안준호는 구부러지기보다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꿋꿋해졌다. 그럼에도 상처가 쉽게 아물어지지 않듯이 시작과 동시에 비춰진 안준호의 얼굴은 몹시 고단해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변함없는 내무반의 실태와, 그를 바라보는 비아냥거리는 시선들 속에 안준호의 지친 감정들이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 녹아있었다.

“첫 촬영 날이 기억에 남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과 기억들이 있는데 안준호가 처음으로 죄책감을 갖게 되는 일, 더 나아가 많은 탈영병 잡으면서 느낀 감정들, 조석봉 일병이 그렇게 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목도해서 어린 나이에 맞닥뜨리는 가장 큰 충격. 그런 서사로 안준호에게 누적된 스트레스를 생각하면서 시즌2 첫 촬영을 했다. 준호는 지친 상태로 디피라는 일을 하고 있었고 한호열(구교환)은 정신적 충격과 트라우마 경험을 하게 됐고, 이 어린 친구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

시즌1에서 보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안준호의 감정선에 따라 정해인은 외적인 모습에도 분명한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극 중 모친이 챙겨준 김밥을 마지못해 먹는 안준호처럼 정해인 역시 먹는 양을 줄이며 마르고 점점 생기가 없어지는 모습을 그려냈다. 그런 그에게 힘이 돼준 존재들은 ‘디피’ 팀이었다.

“밥을 잘 안 먹었다. 점점 야위어가는 준호를 표현했어야 했고 시즌1과 비교해도 다르다. 얼굴이 좀 더 초췌한데 밥을 잘 안 먹으니까 체력 소모가 빠르긴 했다. 그럴 때일수록 제가 의지한 건 사람이었다. 감독님, 교환, 석구, 상균 형 다 너무 저를 응원해주시니까 너무 감사했다. 기차 액션 찍을 때도 다들 오셔서 저한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고 눈으로 파이팅을 보내줬던 게 의지가 됐다.”

군대의 무력 진압에도 안준호는 진실을 밝히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안준호는 그를 쫓던 오민우(정석용)를 비롯해 디피과 격렬한 격투를 벌이며 고난도의 맨몸 액션을 선보였다. 다만 일부 시청자들은 일대 다수를 상대한 안준호의 수준급 싸움실력이 비현실적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정해인은 이같은 액션신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숨겨진 의미도 언급했다.

“마지막에 액션신이 말도 안 되는 판타지처럼 보일 수 있으나 준호라는 인물은 원래 밖에서 복싱한 사람이다. 시즌1에 정현민(이준영) 잡으러갈 때 거기서도 화려한 액션을 한다. 저는 오히려 마지막 기차 액션이 작품 전체를 보면 준호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달리는 기차 안이고 도망칠 곳도 없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으면 부딪쳐야 해서 처절하게 찍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부분이 액션인데 감정연기. 감정신인 거다. 이 신 자체는 어떤 몸의 형태와 화려함보다는 이 남자, 안준호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까지 할까 준호의 감정이 화면에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디렉션을 주셔서 거기에 집중해서 액션 합을 맞춘 것 같다.”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준호열(안준호+한호열)의 케미스트리는 말하나 마나 할 정도로 당연한 관전 포인트였다. 정해인은 또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된 구교환에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촬영장 안팎에서 늘 내재돼있는 구교환 특유의 유머감각에 존경심을 표했다.

“교환 형이 ‘우린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이 공기, 분위기를 금방 읽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게 교환이 형에게 배울 점이고 큰 무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는 무기는 유머. 유머가 제가 느끼기에 가장 큰 힘이다. 연기력이나 태도도 다 좋지만 현장에서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기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건 정말 재능같고 본받고 싶은 부분이다.”

다만 시즌2에서는 안준호가 독자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사실상, 시즌1에 비해 두 사람의 투샷은 많지 않았다. 일부 시청자들은 준호열의 콤비 분량 축소에 대한 아쉬움을 쏟아내기도. 정해인은 극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캐릭터 관계의 가변성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한호열의 콤비가 그립다면 정해인은 시즌1 재시청을 조심스럽게 권했다.

“그만큼 준호와 호열의 콤비가 아쉽다는 건 좋아했다는 건데 계속 그렇게 버디 무비처럼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 있었다. 총기난사도 있고 상황이 안 맞는 거다. 거기에 따른 인물들의 충격과 실의가 있었지 않나. 한호열의 케미가 그리우신 분들이라면 시즌1의 1화부터 다시 보시길 바란다. 그럼 아쉬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웃음)”

후폭풍이 지나간 후, 안준호는 먼저 전역하는 한호열과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제야 옅은 미소를 짓는 안준호의 표정에는 순간 많은 감정들이 그려진 바. 하지만 두 사람의 마지막 장면은 어떤 감동적인 분위기로 풀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담백하고 절제됐다.

“한호열 병장한테 형이라 부르는 장면이고 ‘잘가’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반말이다. 그 장면이 저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데 군대에서 잘 챙겨준 선임이 전역을 하는 경험을 군필자라면 한번쯤 있을 텐데 그때 느낌이 이상하다. 보내줘야 하는데 보내주고 싶지 않은 양가감정이 있다. ‘이 사람이 가버리면 나는 어떡하지. 누구한테 의지하나.’ 그게 단적으로 나와서 감정이 복받쳤는데 최대한 덤덤하게 느끼하지 않게 해달라는 디렉션이 있어서 캐주얼하게 갔다.”


‘디피’ 시즌2는 군대 내 부조리와 더불어 사건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군사회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시즌1과는 또 다른 울림을 전했다. ‘디피’ 시즌2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역시 이를 관통하고 있다. 다만 정해인은 ‘디피’시즌2를 통해 군대뿐만 아니라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사회전체에 던진 메시지다. 군대 조직에 대한 한정적인 이야기보다. 그렇다고 거창한 건 아니고 어떤 조직이 있으면 조직 안에 계급이 있고 직위가 있을 것이고 남용하는 분들이 있지 않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군대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상사가 일 외적인 걸 시킬 때도 있고 그런 것들이 전반적인 사회에 모두 있다고 본다.”

‘디피’ 시리즈 1, 2를 거치면서 정해인은 인간적으로도 분명히 성장했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방향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운 정해인이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 잘못된 쪽으로 가고 있고 불합리한 쪽에 놓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말을 할 수 있고 모두가 아닌데 암묵적으로 예스할 때 저는 거기서 잘못된 것 같다. 그걸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하는 걸 호열이 형 덕분에 배웠다. 아니라는 건 날카로울 수 있으니까 호열의 위트를 섞어서 요즘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상 정해인은 2019년 ‘봄밤’과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이후 멜로 작품을 쉬고 있다. 이에 그의 로맨스를 기다리는 팬들도 적지 않은 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면서 정해인 역시 로맨스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드러냈다.

“로맨스를 하고 싶은 게 연애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걸 원하시니까. 저도 배우고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인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골고루 다양한 걸 하고 싶다. 내년까지 안 하면 5년의 공백이 생기더라. 이제는 할 때가 된 거 같아서. 로맨틱 코미디를 해본적은 없다. 코미디가 제일 어렵다는 걸 알고 있지만 도전해보고 싶고 극 안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안 웃은 지 연기를 하면서 오래됐더라.”

최근 정해인은 ‘디피’ 외에도 ‘설강화’, ‘커넥트’ 등 장르물 위주의 작품을 선보였다. 다소 어두운 캐릭터들을 연기해내는 만큼 심적으로 힘들진 않았을까. 정해인은 연기를 할 때와 안 할 때의 균형을 분명히 해두려고 한다.

“작품 색깔이 짙고 깊은 작품이다 보니까 감정적으로 쉽지는 않았다. 저는 연기와 제 삶을 최대한 분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제 스스로 과몰입하고 그러면 연기를 건강하게 오래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건강한 연기 생활을 하려면 정해인이란 사람과 배우 정해인은 따로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쨌든 데뷔한 이래 한 달 이상 쉬어본 적 없는데 팬미팅 해외 투어가 있다. 제 스스로를 채우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정해인에게 ‘디피’란?이라는 질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답변을 이어갔다. ‘디피’는 단연코 정해인의 재발견이었다. 그간 로맨스 연기로 각인돼있던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줌과 동시에 연기적 스펙트럼도 한층 넓혀준 것. 정해인도 그런 ‘디피’를 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작품이라 제 인생이랑 같이 한 거다. 1년 넘게 작품을 했기 때문에 요즘 군대가 제가 알기로 1년 6개월인데 거기에 근접한 시간을 했다. 그만큼 애정이 남다르다. 팬 미팅에서 ‘디피’가 가장 제가 느끼기에 가장 애정하는 작품이라고 답하니까 반응이 너무 안 좋았다. 멜로가 아니니까. 팬들은 멜로를 원하시는데 ‘디피’ 덕분에 남자 팬들도 생겼다. ‘디피’라는 작품은 저한테 자신감과 ‘제가 이런 연기도 되는 구나’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에 제 스스로에 힘을 준 작품임과 동시에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작품이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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