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먼저 알아본 ‘잠’, 현실 공포란 이런 것 [종합]
입력 2023. 08.18. 17:27:53

'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절제된 미장센 속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연출, 편집, 사운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까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집’과 ‘잠’이라는 일상성을 비틀어 현실적인 공포감을 전할 유재선 감독의 스마트한 데뷔작 ‘잠’이다.

18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는 영화 ‘잠’(감독 유재선) 언론배급시사회가 개최됐다. 이날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는 유재선 감독, 배우 정유미, 이선균 등이 참석했다.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잠’은 월드 프리미어 상영 후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유재선 감독은 “칸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잠’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고, 다들 좋게 봐주셨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셨다. 칸에 초청돼서 뛸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로 크게 느낀 감정은 두려움과 긴장이었다. 영화를 만들고, 칸에 초청됐지만 막상 관객들이 보면 반응이 어떨까 두려움이 많았다. 영화제 프리미어 하기 전 한달 간 지속된 두려움이었다. 다행히 영화가 끝난 후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엄청난 안도감을 느껴서 인상 깊었고, 기뻤던 기억으로 남는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잠과 몽유병을 소재로 한 이유에 대해 유재선 감독은 “처음에는 몽유병에 대해 피상적인 관심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터넷이나 괴담식으로 몽유병 환자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지 않나. 증상이 심해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거나 수면 중에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헤친다던지”라며 “이건 자극적인 소재가 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곱씹다 보니 몽유병 환자의 일상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몽유병 환자 옆을 지키는 배우자는 어떤 모습일까 거기서부터 시작하게 됐다. 제가 생각하는 몽유병 소재의 흥미로운 점은 장르 영화의 경우, 주인공이 공포의 대상이나 위압의 대상으로부터 도망가거나 멀어지는 게 주된 이야기다. 저희 영화는 공포나 위압의 대상이 본인이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대상이기에 멀어질 수 없고 자의적으로 같이 있고, 정면으로 돌파한다. 그게 만들고 싶은 이유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잠’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을 하며 후반작업 하는 내내 제1의 철칙은 ‘재밌는 장르 영화를 만들자’였다. 시나리오 썼을 당시, 오래된 여자친구와 결혼이 임박했던 시기였다. 그때 제가 가진 결혼에 대한 화두가 시나리오에 녹아진 것 같다. 의식과 상관없이 알게 모르게 두 주인공도 결혼한 부부로 설정했고, 이야기도 둘의 결혼생활을 보여줬다. 올바른 결혼생활은 무엇인가, 부부가 문제에 닥쳤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며 “제 결혼관에 동의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화두에 대한 대답을 얻어내고자 무의식적으로 쓴 시나리오가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영화는 제1장으로 포문을 열어 총 3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마다 공간, 인물의 심리 상태 등이 변화하며 몰입을 이끈다. 유재선 감독은 “수진과 현수의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는 시기를 컴팩트하게 다루면 재밌겠다 싶더라. 장 부분에 대해 구분을 할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3장으로 세팅이 됐다”라고 밝혔다.

또 “그렇게 해서 좋은 효과가 더 많더라. 지나가는 시간마다 큼직한 일들도 많이 발생했던 것 같지만 영화는 드러내지 않는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추측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또 연출자인 저에게 강점이 됐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이라 시각적으로 일관될 수 있는데 각 장에 맞게, 인물 심리에 맞게 다채로운 비주얼을 제공하지 않았나”라고 이야기했다.

누구나 공감 가능한 소재로 ‘잠’은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담아냄과 동시에 예측불가한 전개로 팽팽한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잠’의 시나리오 단계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왔다는 봉준호 감독은 영화 관람 뒤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이자 스마트한 데뷔 영화”라고 전하기도.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극찬에 대해 “저에게 직접 전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막상 들으니 기쁘고, 영광이다. 감독님은 제가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이고, 영화인으로도 닮고 싶은 롤모델이다. 감독님이 제 영화를 보시기만 하셔도 가슴 뛸 듯 기쁜데 호평까지 남겨주셔서 정말 기쁘다”라며 “봉준호 감독님께서도 엔딩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대해 누설하지 말라고 팁을 주셨다. 이것도 관객이 이어나갈 수 있는 재미이기에 그 재미를 박탈하지 말라는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라고 전했다.

영화는 모두가 자는 ‘잠’이라는 일상성을 비튼 데서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섬뜩한 실감을 전한다. ‘만약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불길한 상상을 하게 만들며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을 보여준다.

유재선 감독은 “엔딩의 경우, 영화가 끝나면 이야기가 지속된다는 전제하에 수진과 현수도 이 사건을 돌아볼 것 같더라. 관객도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 극장 문을 나설 때 서로가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누가 맞는지에 대한 대화가 활발히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바랐다.

‘잠’은 오는 9월 6일 극장 개봉된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티브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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