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태화 감독 “블라인드 시사만 2번”…디테일로 완성된 ‘콘유’ [인터뷰]
- 입력 2023. 08.20. 07: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본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 인터뷰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후회는 없죠. 끌어낼 수 있는 건 다 끌어냈어요.”
엄태화 감독이 7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디테일 하나 하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탄생시킨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계속 편집을 바꿨어요. 블라인드 시사를 2번 하면서 관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늘어지는 부분을 줄이고, 뒤가 예측되면 잘라내기도 했죠. 가장 중점을 둔 건 음악과 CG였어요. 리얼한 톤으로 끌고 가는데 CG가 나올 때 현실감이 떨어지거나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들면 톤이 무너질 것 같은 판단이 들었죠. CG를 최대한 리얼하게 보일 수 있도록 CG팀과 애를 썼어요. 2년 내내 이렇게 만들어보고, 계속 바꾸면서 톤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하려고 했죠. ‘아파트’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86년도에 지어진 아파트로 설정했죠. 그때가 한국의 버블시대잖아요. 영광의 시대를 나타내는 것 같은 시기에 신디사이저를 쓰는 악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선사시대로 돌아간 것이기에 뼈가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의 타악기도 쓰자고 했죠. 2002년 유토피아적인 기시감을 끌고 오자 해서 여러 시도를 했어요.”
극 초반 등장하는 아파트 정비 사업 몽타주는 마치 아파트 광고 영상처럼 보인다. 엄태화 감독이 해당 장면을 광고 영상처럼 연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초중반까지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했어요. 전체적으로 리얼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조수미 선생님의 노래를 썼듯 코믹적으로 보여주면 풍자가 될 거라 생각했죠. 유토피아로 착각하고, 유토피아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파트 홍보 영상에서 보면 유토피아로 묘사하잖아요. 그렇게 하면 관객들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느낌이 들면서, 이들이 할 것 같은 말들로 하는 재미를 주고자했죠.”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김숭늉 작가의 ‘유쾌한 왕따’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각색됐다.
“원작은 학교가 무너져 아이들이 집으로 살아 돌아가는 내용이에요. 사람들이 이상해져있고, 황폐화 되어 있죠. 저는 디스토피아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파트’라는 게 재밌었어요. 한국을 배경으로 만들 때 어디가 가장 효과적일까 생각했을 때 아파트가 떠올랐죠. 한국사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거지잖아요. 그러면서도 슬프기도 한 정서가 있고. 애환들이 있는 장소니까 이런 장르를 재밌게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목도 아파트를 더 알아야겠다고 공부를 하다가 ‘콘크리트 유토피아’ 책을 보게 됐어요. 이 제목이 너무 좋아서 가제로도 썼다가 더 좋은 제목이 없어 하게 됐죠. 재밌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어 부담은 없었어요. 다행히 김숭늉 작가님도 저희 영화를 보고 너무 재밌어 하셨고요. 웹툰을 만들 때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라고 하셨죠.”
영화는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을 중심으로 외부인을 막아선 채 자신들만의 생존 규칙을 만들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이병헌은 아파트 안에서 점점 영향력을 넓혀가는 영탁의 변화를 디테일하고, 치밀한 감정선으로 표현해내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엄태화 감독은 이병헌이 캐스팅 됐을 때부터 ‘확신’이 들었다고.
“캐스팅 된 순간부터 확신이 있었어요. 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회상 장면에서 바둑알 신은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모니터링을 하는데 이병헌 배우도 와서 ‘이건 내 얼굴이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다’라고 말씀하셨죠. 선배님과 작업을 많이 한 분장 감독님도 ‘처음 보는 이병헌 얼굴’이라고 하시더라고요. 30년 간 수많은 작품을 하신 분인데도 새로운 얼굴이 나올 수 있구나, 그만큼 계속 시도 하고, 노력하는 배우구나를 느꼈어요. 영탁이 이름을 쓸 때 ‘ㅁ’부터 쓰는 장면도 시나리오상에는 ‘이름을 쓴다’고만 되어있었는데 이병헌 배우가 ‘ㅁ’부터 쓰면 어떻냐고 해서 탄생된 거예요. 천재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죠.”
영탁은 생존을 위해 외부인들을 배척하는 인물이라면 명화(박보영)는 모두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는 캐릭터다. 엄태화 감독은 생존이 걸린 극한의 상황 속 여러 인간 군상을 치밀한 묘사로 그려냈다.
“디스토피아물에서 옳은 말을 하는 인물이 나왔을 때 평면적이기 때문에 답답하고, 고구마라고 생각해요. 이 인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야 이런 말을 해도 공감할 수 있고, 따라갈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죠. 배우와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럼에도 답답하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질문을 던지지만 답이 없잖아요. 전체 의견도 그렇게 흘러가고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순응해서 흘러가다 보니 남편이 점점 이상해져요.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를 지키겠다지만, 멈추게 하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게 되죠. 그러다 광기의 모습도 보여주고, 마지막에 만난 사람들에게 황궁 아파트의 가치로 물어봐요. ‘여기서 살아도 되는 거예요?’라고. 그 사람들은 황궁 아파트가 아닌, 다른 가치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라 ‘살아지면 사는 거죠’라고 해요. 그 가치가 깨지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이 엔딩을 봤을 때 사람들이 나쁜 악인이었다는 생각보다 연민이 생기는 것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에 앞서 152개국 선판매를 기록한 데 이어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제56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제43회 하와이 국제영화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 연달아 초청받은 바. 24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을 할 땐 ‘무조건 재밌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재밌어야 관객들이 주제나 의미를 찾고, 영화에 숨겨진 디테일을 찾거든요. 재미가 없으면 거기까지 못 가는 느낌이에요. 재미가 뭘까 생각했을 때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이 있고, 인물이 내린 선택들을 같이 참여해서 보고, 그런 선택들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 벌어진다면 그게 몰입이라고 생각했죠. 최대한 놓치지 않는 방법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의미심장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로 보셔도 좋지만 그런 생각 없이 장르영화로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