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스크걸' 고현정에게 소중해진 것[인터뷰]
- 입력 2023. 09.02. 09:00:00
-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고현정이 연기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목말라 있던 연기 갈증을 ‘마스크걸’에서 거침없이 뿜어낸 고현정이다.
고현정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고현정은 극 중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에서 세상을 들끓게 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중년의 김모미로 분했다.
등장 이후 엔딩까지 박진감 있게 그려진 6, 7화에서 고현정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펼쳤다. 시청자들에게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놀라움을 안긴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한 것은 오로지 고현정의 의지였다. 연기에 대한 갈망이 깊어지던 찰나에 만난 ‘마스크걸’은 고현정에게 무조건적으로 잘해내고 싶은 작품이었다. 취재진들과 오랜 만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에도 고현정은 차분함 속에 설렘을 드러내며 솔직 담백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작품을 처음 제의 받았을 때 너무 기뻤어요. 드디어 나한테도 전형적인 작품이 아닌 장르물에 일원이 돼서 같이 한다는 그 확실한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어떤 분들이 저를 생각한 거라는 게 기분 좋더라고요. 또 한사람을 세 명이서 한다는 것도 좋았고 거기서 제가 마지막이라는 것도 좋았죠.”
연기 활동 이래 처음으로 3인 1역이라는 파격적인 캐스팅에 응한 것도 고현정의 간절한 바람이 있어서였다. 그는 현장에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에 목말라있었다고. 더불어 여성 서사를 비롯해 다양한 메시지가 담긴 ‘마스크걸’의 작품성은 고현정의 구미를 당기는데 충분했다.
“아까도 말했는데 저는 그런 게 고팠어요. 일원이 된다는 것. 저 혼자 이고지고 다 끌어가가지고 모 아니면 도, 잘되면 되고 안 되면 질타를 다 받는 이런 것만 하다가 ‘마스크걸’은 구조적으로 협력해야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의논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제가 맡은 역할 또한 저를 빼고 두 사람이 더 있었고 책임감도 조금 더 줄어들고 작품에 하나의 퍼즐로서 녹아들어야하는 것에 고파있어서 늦은 감 있지만 저에게 잘 들어와서 꼭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는 ‘이거 해야 한다’였고 처음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보다도 ‘이 작품이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런 기획 의도라던가 구성의 작품이 성공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꼭 참여하고 싶었죠.”
딸 미모를 낳은 뒤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모미에게 사실상 모성애는 존재하지 않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딸이 위험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탈옥을 감행, 김경자(염혜란)에 맞서며 엄마로서의 책임감 혹은 의무감을 보여준다. 그동안 미디어에서 비춰졌던 모성애와는 사뭇 달랐던 모미의 감정을 고현정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저는 이야기가 조금 깊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게 모성애를 어떻게 표현할까를 생각하진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마스크걸’에서만 볼 수 있는 모성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죠. 모성을 다루고 표현한 작품은 정말 많잖아요. 감독님과 말씀을 나눈 건 현실을 직시하자. 모성이라고 느껴질 만한 신에서 보면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이 모성이 앞선 상황이 거의 없어요. 모성이 밀리기 때문에 딸이랑 만나는 장면이라고 해도 모성을 표현하려고 할 필요가 없었고 보는 분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배우들이 그렇게 표현하면 신파가 되고 구태의연해지고 그저 봐왔던 모습이지 아닐까 했어요. 현실적으로 온전히 인식하면 (딸을) 구하는 게 급하고 지켜내는 게 급하니까 그게 더 먼저였던 거지 않을까. 모성은 보시는 분들 몫이고 느끼고 싶은 분들의 몫이라 생각했어요. 그래도 조금은 표현해야 되지 않나 싶어서 나중에 미모를 살짝 보고 제가 웃어요.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요.”
고현정의 김모미는 복수심으로 불타 수년간 그를 쫓던 김경자와 대적하고, 숨 막히는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모성을 지닌 김경자와 김모미의 관계를 고현정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는 두 사람이 단순히 엄마에만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대결구도였다고 전했다.
“김경자도 잘못된 모성이죠. 김경자의 모성이 엄청 괜찮은 모성이 아니라 굉장히 삐뚤어지고 잘못돼있는데 엄청 당당해요. 잘못됐는데 당당하고. 모미는 모성의 어떤 형태나 틀, 관념적이든 개념적이든 무엇으로든 아무것도 없어요. 모성이 뭔지 모르는 거죠. 그렇지만 모미를 관통하고 있는 단어 하나가 염치에요. 염치는 있는 애라서 나서진 않는 거죠. 과잉되고 잘못된 모성과 아무것도 뭔지 모르는 모성이 만나니 할 말이 없고 싸우는 것밖에 없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저는 두 여자가 모성으로서 싸우기보다 본인 성깔 때문에 싸우는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모성이랍시고 덤벼들고 막는 거지 모성보다. 그 외에는 더 없죠.”
고현정은 비주얼적인 변신도 감내해야 했다. 화장기 없는 민낯은 물론, 막 자른 듯한 숏컷 헤어스타일까지 십여 년간 교도소 생활을 한 모미의 모습을 꾸밈없이 소화해냈다. 특히 현재는 어깨에 닿는 중단발 길이지만, 촬영 당시에는 짧게 자른 머리를 유지했다고.
“진짜 잘라야하나 싶었는데 처음에는 지금보다 더 짧게 자르고 테스트를 했어요. 근데 큰 변화를 못 느꼈고 감독님도 아쉬워하신 것 같아서 별 말 안 드리고 집으로 와서 바짝 자르고 갔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저도 많이 변화하고 싶었는데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셔서 좋았어요. 이제 기르는 과정이 힘들더라고요.”
탈옥을 위해 교도소 벽을 타는가하면 미모가 있는 곳을 찾아 산 속을 뛰어다니는 등 고현정은 험난한 액션신도 마다하지 않았다. 몸을 사리지 않고 임했던 만큼, 고현정은 액션신이 어느 때보다 욕심나는 촬영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뛰고 달릴 때. 더 치열하게 달리고 싶은데 ‘마스크걸’이 제게 너무 늦게 왔어요.(웃음) 상체는 앞에 가고 있는데 다리는 안 떨어지고 대여섯 번 테이크 가는데 의욕은 앞에 가있는데 안 따라가서 중간에 있는 큰 나무를 붙잡고 서서 ‘안 된다. 못하겠다’라며 다시 돌아왔어요. 벽을 탈 때는 와이어를 한 상태로 했는데 그거 때문에도 힘들었지만 벽을 타고 올라가는 느낌이 나야하는데 와이어가 있으니까 벽에서 자꾸 떨어지더라고요. 벽에 붙어야하는데 이게 잘 안돼서 찍으려고만 하면 떨어지고. 힘 조절이 안돼서 그럴 때 조금 힘들었고 뛰고 달리는 신에서 괜찮다고는 했는데 개인적으로 더 찍고 싶었죠.”
늘 조심스럽게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는 고현정의 고민이 많아질수록 그의 작품을 기대하는 대중의 기다림도 덩달아 길어졌다. 그가 새 작품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이유에도 관심이 쏠린바. 이에 고현정은 솔직한 심경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졌다.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 미팅을 하면 제가 제 자신에게 취약점이 불안을 느낄 때가 있어요. 불안함을 느끼면 무서워서 화를 내는데 작품 활자를 보고 해볼까 해서 관계자 분들을 만났을 때 불안감이 들면 ‘또 잘못되는 건 아닐까’하고 포기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고 어떤 식으로든 마르고 닳도록 잘 숙련된 것처럼 쓰임이 많이 써져야 저에게도 좋고 건강하게 나이먹지 않을까 해서 극복하려고 해요.”
고현정은 ‘마스크걸’을 통해 함께한 이한별, 나나, 안재홍 등 후배 연기자들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비록 이번 작품에서는 호흡을 맞출 기회는 없었지만, 완성본을 통해 본 그들의 연기는 고현정에게 좋은 자극제가 돼주었다.
“애석하게도 이번에 후배들하고 현장에서 작업을 같이 하지 못했어요. 같이 했다면 더 많은걸 느끼고 배웠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고. 다 만들어진 작품으로 봤을 때는 연기하는 것 같지 않는 연기. ‘마스크걸’에 나온 후배들은 다 너무 잘했더라고요. 그 중심에 감독님에 계셨다고 봐요. 김용훈 감독님이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이든 고현정은 특유의 아우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키고 있는 바. 때로는 ‘고현정이 이런 연기를 할까?’와 같은 넘겨짚은 생각과 선입견들에 둘러싸여 출연 제의를 전달 받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고현정은 여느 배우들이 그렇듯, 크고 작든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와 작품을 기다리는 한 명의 배우일 뿐이었다.
“제가 했던 모든 작품들을 모두 보시면 단독 주연이 별로 없어요. 미실도 타이틀은 ‘선덕여왕’이라 제가 주인공도 아니었고 사실 제 단독 주연이 없어요. 해본 적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늘 원한 건 앙상블이었고 관객 입장에서 많은 배우들을 통해 다양한 연기를 보는 게 좋잖아요. 그걸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왜 그런 생각들을 하는지 널려있는 가십에 눈과 귀를 막고 계신 건 아니신지 되묻고 싶네요.(웃음)”
은퇴와 복귀, 논란 등 다사다난했던 연예계 생활을 거치면서도 고현정은 30여 년간 연기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연기란 무엇일까. 고현정은 언제나 배우로서 대중을 만나고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다시 컴백할 때 죽어도 못할 것 같았어요. 다시 연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는데 그 당시 제 느낌이 ‘그래 잘 왔다’였어요. 친가 같이 따뜻하게 받아주셨다는 느낌이었어요. 친정이라 생각하고 기분이 좋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한 것 같았는데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더라고요. 요새는 배우로 연기로 평가받고 싶고 일로 세상을 만나고 일을 하면서 세상을 겪고 싶어요. 그래서 소중해졌어요. 연기가.”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