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백 혹은 밋밋한 ‘1947 보스톤’ [씨네리뷰]
- 입력 2023. 09.13. 17:08:08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공개 전 우려를 받았던 일명 ‘국뽕’(과도한 국수주의‧민족주의를 비꼬는 신조어), ‘K신파’를 덜어내 담백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덜어내도 너무 덜어낸 것일까. 오히려 밋밋해져버린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이다.
'1947 보스톤'
영화는 실제 역사에 근거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제 강점기에 개최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하정우). 일본 이름 ‘손 키테이’로 시상대에 오른 그는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유로 더 이상 마라톤을 할 수 없게 된다.
달리기를 제대로 배운 적 없지만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마라톤 유망주’ 서윤복(임시완)은 깡과 악으로 각종 대회를 휩쓴다. 그러나 그가 처한 현실에서는 돈도 안 되는 달리기는 사치일 뿐. 그러던 어느 날, 손기정으로부터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 출전을 제안 받는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인 남승룡(배성우)은 손기정과 함께 마라손보급회를 운영하며 마라톤 후계자 양성에 힘을 쏟는다. 그는 보스톤 마라톤 대회를 노리고, 코치이자 선수로 참가해 감독 손기정과 선수 서윤복 지지에 나선다.
‘1947 보스톤’은 1947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던 강제규 감독이 ‘장수상회’(2015)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영화는 스포츠 영화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갈등과 화해, 위기와 극복이 분명하기에 스토리,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쉽게 읽힌다. 공개 전, 우려스러웠던 지점인 국뽕과 신파 코드도 최소화돼 억지 눈물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다.
그러나 국뽕, 신파 코드를 자제하기 위해 너무 신경 쓴 탓일까. 국뽕, 신파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편집 단계에서 지나치게 의식한 느낌이 든다. 감동이 극대화될 때 힘을 쫙 뺀 연출로 고조되는 감정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역사적 사실, 실화가 가진 힘을 조금 더 믿고 나아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감정이 식는 구간에 힘을 불어넣는 건 임시완의 열연이다. 마라톤 선수들의 자세, 표정, 숨소리 등 기초적인 부분부터 달리는 동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세 변화까지 체화한 그는 서윤복 그 자체로 분한다. 실제로 마라톤이나 러닝을 배운 이들이라면 그의 연기 디테일에 눈길이 갈 것이다.
하정우, 배성우는 무난한 연기를 펼친다. 다른 말로 풀이하면 똑같은 얼굴이다. 익숙한 티키타카에 강력한 한 방이 없어 아쉽게 다가올 수 있겠다.
‘1947 보스톤’은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과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과 맞붙는다. 추석 개봉작 중 가장 많은 제작비(210억)를 들인 이 영화는 다양한 연령대의 가족이 볼 만한 영화로 꼽히지만 손익분기점(약 450만)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는 27일 개봉. 러닝타임은 108분. 12세이상관람가.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