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제 감독, 새로운 도전의 집합체 '무빙' [인터뷰]
- 입력 2023. 09.14. 14:13:09
-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박인제 감독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그동안 해보지 않은 장르에 도전하고, 단 몇 시간으로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 영화보다 길고 방대한 20부작 드라마를 선보이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얻은 그다.
박인제 감독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액션 시리즈. 지난 달 9일 첫 공개 이후, ‘무빙’은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중 공개 첫 주 최다 시청 시리즈에 등극했다. 또 디즈니+ 유료가입자 증감에도 기여하며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풀릴 때마다 화제를 모으며 인기 순항 중이다.
박인제 감독은 “감독마다 다를 건데 작업이 끝나면 저는 제 것을 다시는 안 본다. 그래서 최대한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한다. 자기방어인 것 같다.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잘 된다 해도 제가 보는 건 부끄럽다. 아직 제가 부족하다 생각하고 배우는 감독이어서 결과를 잘 안 보려고 하는데. 그래도 잘 돼서 기분은 너무 좋다”라고 운을 뗐다.
동명의 웹툰 원작인 ‘무빙’은 원작자인 강풀 작가의 첫 시나리오작가 데뷔작으로도 화제를 모은 바. 처음 각본을 맡은 만큼 기존에 봐오던 시나리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고. 이에 박 감독은 강풀 작가와 서로 다른 의견차를 좁히는 과정을 숱하게 거치면서 한 장면 한 장면을 완성했다.
박 감독은 “감독과 작가가 있으면 항상 생각이 같을 수 없다. 저 스스로도 그렇지만 기본적인 생각은 모든 작품을 하면서 서로 다른 이슈를 가지고는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되는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서 서로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했다. 부딪혔다는 건 너무 당연하고. 저는 보통 드라마보다 영화 베이스로 해서 20부작 풀 콘티는 성경책 두께 정도 되는데 그린 과정에서 대사나 감정이 말이 안 되면 바로바로 상의를 해서 통일해갔다”라고 설명했다.
‘무빙’을 만나게 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그에게 새로운 가족이 찾아왔을 때였다. 감독이기 전에 아버지로서 공감하며 들여다보게 된 ‘무빙’은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를 본능적으로 끌어당겼다.
박인제 감독은 “대본을 받았을 때 저희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됐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고 비슷한데 새로운 걸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무빙’을 하면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을 할 수 있겠더라. 할리우드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지만 국내엔 별로 없으니까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다”라고 모험심을 드러냈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흥행 여부보다 그는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느끼는 짜릿함을 중요하게 여겼다. “두려움보다 새로움을 만들어 본다는 도전. 그 재미가 있었지 사실 작품이 망하고 성공하고는 제가 알 수 없는 영역이라 그저 새로운 것을 하는 걸 좋아한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인제 감독은 ‘무빙’을 통해 이제껏 해보지 않은 멜로신을 연출하기도 했다. 풋풋한 하이틴 로맨스부터 애틋한 멜로까지 사랑의 감정을 다양하게 그린 그는 이 가운데에 각 캐릭터가 지닌 초능력을 살리며 그만의 특별한 로맨스 감성을 창작해냈다.
박 감독은 “대본에 충실히 나와 있어서 그대로 잘 구현만 하면 전달이 되었다. 제가 구상한 영화에선 멜로 장르의 드라마는 포함돼있지 않았는데 이번에 시도하고 배워봤다”라며 “봉석(이정하)과 희수(고윤정)의 카테고리, 미현(한효주)과 두식(조인성) 안에서 사랑을 느꼈을 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부양이 어떨까를 생각했다. 시나리오에는 두식. 미현의 키스 장면은 유머러스하게 넘어가는 거였는데 거기에다 봉석이처럼 나는 것을 엮어서 표현하는 게 어떨까 했다”라고 전했다.
러브 스토리가 익숙하지 않지만 로맨스를 구현할 수 있던 것은 박 감독의 오랜 취향도 반영된 덕분이었다. 그는 “제가 멜로 영화를 잘 안 보는데 좋아하는 형태가 있다. 거지왕자나 온달과 평강 같은. 멜로를 안 보는데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 ‘노팅힐’은 보는 거다. 그래서 희수와 봉석의 관계에도 그런 게 투영되고 두식이랑 미현이 시덥지 않은 개그를 하는 모습도 그런게 투영되지 않았나”라고 웃어넘겼다.
‘무빙’을 통해 조금이나마 멜로 장르에 대한 낯섦의 장벽을 넘긴 박인제 감독. 앞으로도 그의 멜로 작품을 볼 수 있을까. 그는 “모르겠다. 이걸 해야겠다, 안하겠다는 작품의 이야기에 달려있지 않을까. ‘얘네는 꼭 사귀어야한다’면 할 수 있는 거다. 한번은 해봤으니까. 제가 부족한 감독이라 해봤으니까 할 수 있겠구나 정도의 출발 같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무빙’에서는 명랑한 청춘 캐릭터들을 곧잘 소화해낸 신인 배우들의 앙상블도 빛났다.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 2세 역을 맡은 배우 이정하, 고윤정, 김도훈의 캐스팅 과정에 “제가 젊은 배우들이랑 작업한 게 많지 않다. 대부분 거친 사내들이었고 시나리오 자체도 어린 배우로 쓰지 않다보니 20대 배우들을 잘 몰랐다. 예전에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면서 볼 수 있던 연기의 통로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세태들이 바뀌었다”라며 “캐스팅이 누군가는 연기 연출의 끝이라고 해서 신경을 쓰는데 캐스팅을 잘하고 그들이 연기를 잘하면 현장에서 할 일이 없다. 다행히 고윤정, 이정하, 김도훈 배우는 다 잘 해줬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박인제 감독은 이들의 무의식적인 모습들을 통해 캐릭터와 부합하는 지점을 찾아갔다고. 그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 있어서 최종적으로 몇 명이 올라오면 저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적인 질문을 하고 그런데서 봉석이와 희수의 어떤 부분이 맞을까를 찾아봐서 공통분모가 맞는 부분을 캐스팅 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각양각색의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만큼 이들의 액션신은 ‘무빙’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다. 어딘가 한번쯤은 히어로물에서 봤을 법한 익숙한 액션이면서도 ‘무빙’만의 감성이 두드러진 것은 박인제 감독은 철저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볼거리 있는 화려한 액션 보다는 각 캐릭터 마다의 감정이 묻어나는 액션신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다.
박인제 감독은 “액션에서 사실 저는 초보자 감독인데 제 나름의 좋은 액션이라는 건 이야기와 캐릭터의 감정이 묻어나는 액션이라 생각한다. 모든 출발은 작가님이 써놓은 캐릭터이다. 이들이 왜 이기고 져야하는지 감정, 발단, 시발점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그걸 표현한 장면 중 하나가 프랭크의 운전신”라고 말했다.
‘무빙’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촬영 기법도 소소한 화제를 모았다. 프랭크 역의 류승범이 장주원(류승룡)을 쫓으며 거칠게 운전하는 장면은 카메라를 직접 차 안에 넣고 촬영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프랭크의 시점에서 차를 모는 것 같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 역시도 프랭크의 감정신을 따라 탄생한 액션신이었다. 박 감독은 “그가 운전하는 건 그냥 가면 되는데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영상으로 그의 감정을 담고 싶었다. 지치지만 임무는 수행하고 싶은 프랭크의 절박함을 표현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했다”라고 귀띔했다.
‘무빙’은 5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었다. 예산이 많을수록 창작자로서는 표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만큼, 박 감독은 원 없이 다양한 시도를 꾀했다. 박 감독은 “감독은 날라리 대학생과 똑같다. 용돈은 많이 줄수록 좋다. 더 구현할 수 있는 것도 많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특히 그는 OTT 플랫폼 특성상 매 새로운 에피소드마다 띄워지는 인트로 영상도 과감히 없앴다. 대신에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색깔을 입힌 ‘무빙’의 타이틀과 소제목이 그려져 신선함을 더했다. 박 감독은 “노랑에서 주황, 깨졌다 붙이고 그런 모든 타이틀은 그 화의 내용과 연관돼있고 안 해본 것을 해 보고 싶었다”라며 “저희 드라마는 인트로 시퀀스가 없다. 보통은 특정 화면이 타이틀이 나오는데 다들 건너뛰기하고 보지 않나. 저는 그 돈을 가지고 차라리 타이틀에 의미를 두겠다고 해서 도전해본 거다. 소제목도 다 의미가 있게 하려고 해서 모든 신을 염두해뒀다”라고 강조했다.
‘무빙’으로 얻은 점이 많다는 박인제 감독은 “너무 많이 배웠다. 아주 작게는 이렇게 긴 호흡의 드라마를 한 적이 없었고 물리적으로 이렇게 많은 CG를 한 적이 없었다. 양으로 따진다면 와이어 작업을 제일 많이 해본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배우를 얻은 것. 항상 작품하면서 배우들의 여러 가지 삶을 만난다. 이번 작품에만 약 120명 정도 되는데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서 계속 이어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박 감독은 ‘무빙’을 아직 보지 않은 예비 시청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 역시 ‘무빙’의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그는 “모든 장르들이 있다. 가족 영화나 멜로 영화, 액션이나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다 여기 들어있어서 좋아할 것이고 특정 회 차만 봐도 재밌다. 20부가 부담될 수 있는데 몇 개만 골라 봐도 재밌을 거고 시간 순서대로 보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