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장영남 ‘거미집’, 2023년을 관통하는 1970년대 ‘중꺾마’ [종합]
입력 2023. 09.14. 17:44:23

'거미집'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마치 영화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배우 송강호를 비롯해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 등 배우들의 앙상블이 유쾌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세트장 안으로 이끈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만들기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이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는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 언론배급시사회가 개최됐다. 이날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는 김지운 감독, 배우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 등이 참석했다.

‘거미집’은 재촬영을 하려는 김열 감독의 영화 현장과 그가 찍는 영화 속 영화 ‘거미집’으로 스토리가 이중 전개된다.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는 영화 촬영장은 컬러로, 치정‧멜로‧호러‧재난물‧괴기물까지 오가는 영화 속 영화는 흑백의 화면으로 구성됐다.

영화 속 영화에서 김감독 역으로 이중 연기를 펼친 송강호는 “김감독의 개인적인 야망, 욕심, 욕망으로 배우들을 다시 불러 결말을 바꾸려고 촬영에 들어간다. 영화 속 바꾸고 싶은 결말 자체도 상당히 김감독 입장에서 도발적이고, 도전의 장면이 아닐까”라며 “김감독의 욕망 때문에 다 모이게 되고, 좌충우돌을 겪고,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결말을 완성해간다. 영화 속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도 각자 작은 욕망들이 엮인다. 이 모든 것들이 욕망의 카르텔 속에서 허우적 되는 모든 사람들, 지독한 우화 같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 속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도, 제일 마지막 표정도 정답이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 흡족한 표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쉬움과 미진한, 앞으로 도전에 김감독의 내면의 표정일 수 있다”면서 “영화를 볼 때마다 달랐던 것 같다. 이 자리에서 두 번 봐달라는 말을 드릴 수 없지만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었다. 메타포가 가득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느낌도 각자 다르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이민자 역의 임수정은 “결말이 바뀌기 전, 이민자 캐릭터는 자신의 상황에 순종적으로 맞춰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결말이 바뀐 후 작품 속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욕망에 충실한 역할이다. 이민자로 ‘또 바뀌었어’라고 투덜거렸지만 이민자는 연기할 때 더 만족스러웠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바뀐 결말이 더 좋다”라고 덧붙였다.

오정세는 강호세로 분한다. 그는 “강호세 인물은 전과 후 작품성에 큰 관심이 없다. 시키는 대로 하는 인물이다. 그 과정 속에서 호세라는 인물이 사랑에 눈 가려진 한 인물로 생각이 들었다. 욕망 때문에 걸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라며 “그 과정에서 작은 성장, 참회가 있었으면 했다. 마지막 걸작을 보면서 유림이와의 사랑이란 감정이 사랑이 아닌, 옆에 있는 아내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리는 영화다.



메가폰을 잡은 김지운 감독은 “김감독이 이미 만들어 놓은 ‘거미집’은 가부장적인, 집안 내에서 헌신적이고 현모양처의 순애보를 다루고 있다. 영화를 다시 편집하며 적극적이고, 투쟁적이고, 여성의 욕망을 강렬하게 바꾸면서 ‘거미집’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영화가 치정 멜로에서 스릴러, 호러 느낌으로 변해간다. 구태연하고, 뻔한 것들을 뒤집고, 새로운 인물상, 영화의 비전과 세계는 결국 다시 말해 뒤집어 보고, 새로운 걸 꺼내려는 김감독의 욕망이 아닌가. 그래서 ‘거미집’이라는 영화 속 영화가 만들어졌다”라며 “‘거미집’이 혹시 잘 된다면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을 장편으로 만들어볼까 생각도 들었다.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다고 생각이 든다”라고 전했다.

‘거미집’은 1970년대 한국 영화 현장을 배경으로 ‘영화’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다이내믹한 앙상블을 그린다. 걸작의 강박에 사로잡힌 영화 감독을 주인공으로 시대의 아이러니가 자아내는 블랙 코미디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안간힘, 각자 충돌하는 개성과 욕망이 자아내는 드라마틱한 앙상블은 ‘영화’를 통해 인생의 한 대목을 돌아보게 한다.

김지운 감독은 “평론가는 예술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길 했는데 미국의 유명한 여성 평론가가 한 이야기다. 그런 제목의 도서도 있다. 저도 그 책을 재밌게 읽었다. 그 비유가 영화 속에서 김감독이 이야기를 하면 재밌을 것 같고, 김감독의 상태를 절박한 상황을 재치 있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가져왔다”라며 “김감독이 한 이야기들 중 제가 한 이야기가 있고, 실제로 느낀 감정을 김감독의 입을 통해 한 것이다. 오정세 씨가 극중에서 이야기하지만 ‘시나리오가 가혹하다’고 하는데 ‘놈놈놈’ 당시 배우들이 가혹하다고 할 정도로 제가 고생시킨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저는 힘들고, 어렵게 찍은 것들의 에너지들이 온전히 화면 앞에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칙왕’ ‘장화홍련’ 등 작품을 리마인드를 하면서 ‘집요했구나, 혹독하게 영화를 찍었구나’ 스스로 느꼈다. 오랜만에 본 영화를 통해 그때 느낀 감정들, 영화 안에 쏟은 에너지가 생각나 김감독을 통해 이야기했다”라며 또 다른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 때 폭발신에서 과한 폭발이 일어났다. 불씨가 남으면 안 되니까 스태프들은 뛰어가서 불을 끄는데 저만 촬영감독에게 가 ‘잘 찍혔지?’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이건 광기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안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치열하고, 집요하게 열정적으로 미친 듯이 누군가 보면 광기라고 느껴질 정도로 치열하게 영화를 찍었다. 그 결과, 에너지들은 영화 안에 서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제가 알게 되는 거니까. 영화적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영화는 50년 전 검열이 창작을 방해하던 시대 속 걸작을 만들었던 1970년대로 눈을 돌렸다. ‘거미집’은 그 시대 현장에 대한 상상력으로 역동적인 드라마를 보여준다. 김지운 감독은 “개인적으로 60년대 70년대 한국의 지식인, 예술가, 영화감독의 룩을 굉장히 좋아한다. 버버리 코트에 뿔테 안경, 담배를 물고, 고뇌하는 예술가의 초상을 좋아해 ‘거미집’의 김감독을 통해 만들려고 했다”면서 “팬데믹 이후 영화가 멈췄을 때 한국 영화의 위축과 위기가 왔을 때 저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인들이 다시 한 번 재정립하고 의미를 묻는 기간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진지하게 물어보고, 재정립하는 기회가 됐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거미집’이 그때 느꼈던 의미들, 어떻게 하면 한국 영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새로운 영화는 무엇일까 이런 것들을 고민했다. ‘거미집’을 통해 그런 의문, 질문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더라”라며 “70년대 한국 영화가 약간의 침체기를 겪었다. 그 당시 감독님들,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감독님들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시대를 어떻게 돌파해가고, 2000년대 영화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것일까 고민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70년대 문화적 패션, 무드를 영화에 많이 끌어오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인생의 축약판 같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일들을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과 함께 각자 다른 목적과 욕망, 개성을 가진 이들 사이 벌어지는 역동적인 이야기를 담아낸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스토리를 짜고, 중심 주제를 만들면서 몇 번이나 ‘이런 영화구나, 이런 영화였나?’라고 바뀔 때가 있었다.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또렷하게 남는 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얘기하는 영화였다. 영화 안에서 김감독이 처한 상황은 끊임없이 인생의 모순, 불합리한 세계에서 수없이 난관과 역경에 부딪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돌파해나가는지, 꿈을 실현해 가는지 이야기하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주제 면에서는 ‘중꺾마’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시대에 대한 생각을 가진 분들에겐 영화를 만드는 집단을 통해 시대의 풍속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또 저는 앙상블 영화를 하고 싶었다. 할리우드 배우들, 연기 장인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기를 보며 ‘어떻게 저렇게 할까?’ 싶더라. 그런 것을 ‘거미집’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다. 앙상블 코미디가 어떤 재미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것은 하나의 티켓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게 프리미엄이 있지 않나”라고 언급했다.

‘거미집’은 추석 연휴, ‘1947 보스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과 맞붙는다. 송강호는 “한국 영화의 다양성으로 봤을 때 ‘거미집’이 새로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추석 때 좋은 작품 함께 개봉하기에 관객들이 행복한 고민을 하실 텐데 그동안 봐온 영화적 문법, 형태를 떠나 ‘거미집’이 가진 스타일이 영화적 멋, 묘미가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라며 “‘거미집’에서 얘기하는 것이 보시고 나서 결말을 통해 의견이 분분할 텐데 한국 영화의 다양성에 반가운 영화일 것이다. 새롭게 시도하고, 문법으로 다양한 볼거리와 묘미가 있는 점에서 반가운 영화”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제76회 칸 영화제 공식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전 세계 관객들을 먼저 만난 ‘거미집’은 오는 27일 극장 개봉된다.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등이 출연했으며 ‘조용한 가족’ ‘장화, 홍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인랑’ 등의 작품을 선보인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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