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시간 속으로' 김진원 감독, 선택이 이룬 결실[인터뷰]
- 입력 2023. 09.15. 09:00:00
-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김진원 감독이 원작 ‘상견니’의 매력을 살리되, 리메이크작의 묘미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새로운 설렘과 감동을 선사했다.
김진원 감독
넷플릭스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이하 ‘너시속’)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던 준희가 운명처럼 1998년으로 타임슬립해 남자친구와 똑같이 생긴 시헌과 친구 인규를 만나고 겪게 되는 미스터리 로맨스. 대만의 히트 드라마로 손꼽히는 ‘상견니’가 최초 리메이크 된 작품이다.
“원래 SNS를 잘 안 해서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주변에서 반응을 빨리 받았다. 넷플릭스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대만에서도 3위라고 들었다. 원작이 있던 곳이라 반응이 궁금했는데 다행이라 생각하고 원작 배우들도 응원해주셨다. 좋은 장면들이 많은데 그런 부분을 조심스럽게 잘하고 싶었는데 원작 팬들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마음이 놓인다.”
당초 ‘상견니’를 즐겨본 시청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김진원 감독은 ‘너시속’을 통해 생애 첫 리메이크작 연출을 도맡게 됐다. 리메이크 작품과 원작 사이에서 익숙함과 동시에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대만 작품 자체가 초반에는 반짝하고 간질간질한 로맨스 같은 학원물의 강점이 있는데 뒤로 갈수록 사건과 반전이 일어나니까 그런 부분을 재미있게 봤다. 리메이크된다는 이야기도 기사로 먼저 접했다. 리메이크를 하고 나선 두 번 다신 해보지 않으려고 한다. 소설이나 만화도 그렇고 원작 자체를 처음 해봤는데 영상이 있는 작품이다 보니까 처음 마음먹었을 때보다 촬영 중, 촬영을 마치고도 고민되는 부분이 많더라. 원작하고 같으면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고 다르면 다르게 좋아해주실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고 그런데서 균형을 잡는 게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가 ‘너시속’을 연출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작의 남자 주인공인 ‘리쯔웨이’(허광한)와 남시헌(안효섭)의 차이가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변화된 모습이 김 감독에게 호기심을 자아냈다.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도 대본을 보는데 여전히 뒷부분이 궁금했다. 우리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캐릭터가 달랐다. 캐릭터의 다름이 원작 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달라져있는 캐릭터의 감정이나 톤이 저한테는 좋았던 것 같다. 시헌의 경우, 좀 더 어른스럽고 성숙하게 변화가 돼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남자주인공 톤이 바뀌는 게 작품 전체 톤을 바꾸는 것이라 생각했고 멜로적인 측면에서 더 집중해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이에 김진원 감독은 리메이크작은 원작에 못 미친다는 편견을 엎고 K-드라마만의 감성으로 ‘상견니’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한국적 정서를 입히면서도, 원작의 매력은 그대로 살린 점 역시 김 감독이 연출하는데 중점을 둔 부분이었다.
“원작 팬이라서 애정이 가는 신들, 원작 팬이라면 보고 싶어 하시는 신들을 예쁘게 선물처럼 만들고 싶다는 게 있었고. 시그니처 신들을 고민했다. 중요한 건 원작이 그만큼 임팩트가 있었던 건 내용과 이야기가 궁금증을 만들어내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무언가 있어서 많은 게 바뀌더라도 그것 만큼은 유지하고 싶었다.”
다만 12부작에다 회 차당 줄어든 러닝타임에 맞추다보니 원작에서 가져오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이로 인해 타임슬립 과정은 한층 단순해지고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이해도를 높였으나, 김 감독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었다.
“압축하는데 마음이 아팠고 작가님도 힘들어하셨다. 민주, 시헌, 인규 삼총사의 고등학교 에피소드. 민주의 가족이야기. 연준이 본체의 가족이야기도 있고. 그 마다 중요한 메시지들이 있는데 원작 대비 회 차랑 시간을 줄여야 됐다. 중심 사건에 빨리 다가가야 하다 보니 주변 인물들에서 파생되는 에피소드를 걷어내는 과정이 힘들었던 것 같다.”
‘상견니’ 특유의 청량한 영상미가 ‘너시속’에서는 사계절의 풍경을 모두 담아내며 한국적인 감성을 담아냈다. 이를 위해 김 감독은 주요 장소지 섭외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물론 캐릭터들의 정서와 어울리는 계절을 선택하며 1여 년간 전국 곳곳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로케이션은 촬영 초반부터 준비해서 겨울부터 촬영 중간까지 6개월 이상 찾았다. 촬영 진행 순서가 원래는 대학 시절부터 시작됐다. 준희 입장에서는 시헌이를 처음 보는 감정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시헌을 만나서였고 벚꽃신이 걸릴 때는 고등학교에서 봄을 찍고 다시 대학을 찍고 여름부터 고등학교 장면을 했다. 준희 생일 감정톤에 맞게 현재일 때는 가을에 했고 인규의 출소부터 죽음까지는 겨울로 해서 촬영 순서에 맞춰서 장소를 찾았다.”
원작 ‘상견니’의 촬영은 대부분 대만의 ‘타이난’이라는 지역에서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상견니 투어’라는 말까지 생기며 현재는 ‘상견니’ 팬들에게 또 다른 여행지이자 추억의 장소가 됐다. ‘너시속’에서는 주 배경이 되는 곳으로 특정 지명이 아닌 가상의 공간으로 그려졌다.
“배경이 98년도이다 보니 서울이어선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완벽한 지방이어도 안 될 것 같았다. 저희가 생각한건 이제 막 개발을 진행 중인 경기도의 어느 지역인데 어느 지역인지 특정 지으면 그 지역 자체에 갖게 되는 상상의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해서 가상의 공간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녹산은 들을 때부터 푸르른 동네라는 의미라 삼총사 같은 청춘들이 있었을 것 같은 공간으로 설정하게 됐다.”
‘너시속’의 히로인 전여빈은 민주와 준희를 오가는 1인 2역을 완벽 소화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 바. 김 감독은 감정선을 토해내며 먹먹함을 자아낸 전여빈의 독백 연기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민주가 옥상에서 준희랑 기억의 방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눌 때. 그때 전여빈 배우 연기가 좋았다. 편집할 때 이건 끊지 말고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길어서 끊었다. 그게 어떻게 보면 보시는 분들은 민주의 감정이 이해 안 될 수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민주가 호감이지 않은 캐릭터로 보일 수 있는데 그 순간 옥상에서 자신의 어떤 아픔과 소외된 존재를 이야기하는 전여빈 배우의 쓸쓸함이나 좋았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느껴져서 그 컷을 찍으면서 저도 스스로 감정이 올라왔다.”
안효섭이 연기한 시헌과 연준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오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시헌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깊이 공감하고 안쓰러움을 느꼈다는 김 감독은 그래서 타임 슬립한 상징적인 장면들은 더욱 세심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시헌이는 40대인데 마음이 아픈 게 20년의 시간을 홀로 고단하게 견뎌오고 절실하게 친구의 죽음을 막고 싶지만 막지 못해서 자신의 청춘을 만나서 그 선택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중년이 되어가는 저의 입장에서 과거에 어떤 선택을 뒤집지 못하고 후회하는 그 마음이 공감됐다. 나중에 시헌이가 준희를 만나고 같이 살던 집에 들어가는데 문지방을 넘기 힘들어했다. 40대의 시현이는 다시 과거로 거슬러 와서 20년을 기다려 자기 집을 들어가는 거지 않나. 그래서 내가 과거에 살던 곳을 현재인 곳에서 어떻게 들어갈지 하는 시현이의 모습이 안타까웠고 제가 가장 애정하는 건 대학 시절 연준이. 편의점 신에서 준희를 만나고 마주친 다음에 그림을 보는데 뒷모습을 보고 신분증을 보면서 ‘내가 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하지 않나.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한 번 더 해서 사랑하려는 그 선택이나 과정들이 풋풋하고 한편으로 아픔도 있었다.”
열린 결말의 원작과는 다른 엔딩도 소소한 화제가 됐다. 김진원 감독은 리메이크작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새로움을 전하면서도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입장에서 우리만의 결과, 끝맺음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 엔딩이 무언가 우리 인물들에 나름대로 좋은 운명, 결과 시간을 준 게 아닐까 생각을 했고. 다른 건 수정이 많았는데 엔딩은 다 같이 동의를 했다. 민주가 버스를 놓치고 시현과 인규를 만나듯 중간에 준희가 버스를 놓치려다 잡아타게 되고 거기서 시현을 만나는 게 구조적으로 우리 작품만의 어떤 완결성을 가진다고 생각해서 좋았다. 촬영도 대본 리딩할 때부터 눈 내리는 겨울에 찍고 싶다고 했다.”
완전히 닫힌 결말이라 볼 순 없지만 시간이 흘러서 다시 재회한 시헌과 준희의 모습은 어쨌든 결국엔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로도 해석됐다.
“저도 그렇고 작가님도 우리 인물들이 행복했으면 했다. 시헌이가 준희에게 약속하지 않나. 어떤 시간이나 장소에 있던 상관없다고. 버스에서 마주쳤을 때 음악이 들리는 순간 시헌과 준희에게도 어떤 트리거가 형성되고 시헌이는 긴가민가하고 준희도 알 듯 말듯 표정을 짓는 감정이 좋았고. 마주쳤을 때 수많은 시간을 돌아왔지만 너희들은 너희를 찾아냈구나 같은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고 저에게는 엔딩으로 좋았다.”
‘너시속’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시헌이 준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연준의 삶을 선택하고, 인규가 민주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선택을 하고, 민주가 세상으로부터 등지는 선택을 하는 등 매 순간 선택에 놓인 이들은 결국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버린 것 같지만, 결국에는 또 다른 세계를 연 이들의 선택을 조심스럽게 그려낸 김진원 감독이다.
“작가님이 말하고 싶은 건 작은 선택의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이 모여서 삶을 이루게 된다였다. 타임 슬립하는 구조에서도 말이 되는 건지 아닌지 고민을 했는데. 차용해온 건 과학자 분들이 만들어오셨지만 가능성의 시간이 있다더라. 어떤 선택했을 때 그 선택으로 새로운 우주가 갈라지고 선택만큼 우주가 파생된다고. 우리도 그런 궤도 안에 있는 게 아닐까. 작은 선택과 선택이 이들의 삶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는 것.”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