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규 감독 “‘1947 보스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울림 되길” [인터뷰]
- 입력 2023. 09.15. 12:39:02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나게 돼 설레네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런 감정들이요. 예전에는 무덤덤했는데 지금은 조금 더 긴장되고, 설렘도 있어요.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요.”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탄탄한 각본과 시대를 앞선 연출로 한국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강제규 감독. 그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최초 국가대표 마라토너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돌아왔다. 2015년 개봉한 ‘장수상회’ 이후 약 8년 만에 관객들과 만나게 된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은 그동안의 시간동안 달라진 환경을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1947 보스톤’은 팬데믹과 더불어 남승룡 역의 주연 배성우가 2020년 11월 음주운전 적발로 면허가 취소되면서 개봉 시기가 연기되기도. 올해 추석 개봉을 확정한 이 영화는 3년의 긴 시간 동안 후반작업 과정을 거치게 됐다.
“영화의 목적은 관객과의 교감이잖아요. 관객들을 위해 만들어지는 창작물인데 그전에는 어떻게 보면 그런 소통이 상대적으로 원활하지 않았어요. 만드는 자들이 ‘이렇게 만들었으니 관객들이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일방형 구조였죠. (시간이) 갈수록 변화하는 과정들이 쌍방향으로 바뀌고 있어요. 바람직한 형태인 거죠. 블라인드 시사를 하면서 예비 관객들이 이 영화를 미완성단계에서 어떻게 보고, 문제점을 지적하는지 예전에는 못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후반작업을 하면서 최대한 생각이나 느낌, 정서들을 반영하려고 노력했어요.”
역사적 사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개봉 전, ‘국뽕’ ‘신파’ 우려를 받은 바.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본 ‘1947 보스톤’은 이러한 코드를 최소화해 억지 눈물에 대한 거부감을 줄였다.
“감정의 과잉, 수위조절을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시나리오 때부터 많이 했어요. 특히 최근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시선 중 감정 과잉에서 오는 신파 알러지가 굉장히 많은 것 같더라고요. 강요된 슬픔, 눈물 부분들이 적절한가에 대한 부분들에 자기검열을 하며 시나리오를 작업했어요. 결과물을 놓고 충분히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계시기에 개인적인 편차는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나 감정을 불필요하게 확대하거나 과장하지 말고, 담백하게 어느 정도 절제하면서 그 당시, 상황, 선수들의 감정을 담대하게 따라가려 했죠.”
1947년 최초의 태극마크를 달고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손기정 감독과 서윤복 선수의 실화를 소재로 한 ‘1947 보스톤’은 시대의 허들을 넘어 꿈과 목표를 향해 달린 마라토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학 다닐 때 ‘불의 전차’를 봤는데 그 후로 스포츠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영화가 가진 힘, 어떤 뜨거움 같은 열정, 그리고 스포츠가 가진 낭만이 있더라고요. 특히 다양한 감성들이 응집되어 있는 곳이 결국 다른 스포츠도 아닌, 굉장히 단순한 경기인 마라톤, 달리기였죠. ‘불의 전차’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동작 하나하나와 경기에 임하는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긴장감, 그때 가질 수 있는 열정, 집념이 응축된 표정과 동작들이 굉장히 신선하고, 매력적이었어요. 그게 시발점이 됐죠. 그때부터 계속해서 달리는 영화에 관심을 가졌고, 조금 더 지나니 달리기의 꽃은 마라톤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단거리도 상당히 매력적인 경기지만 마라톤이 주는 것은 훨씬 더 드라마틱했죠. 사람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담아내기에 좋은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제규 감독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와 실존 인물인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까.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세 분의 스토리가 한 경기를 통해 집약된 게 신선했어요. 인위적으로 극화시켜 영화를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마라톤계에 대단한 세 인물이 한 대회 속,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 이야기에 매료됐죠.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어요. 과거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질 때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에 몰입되고, 교감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요. 1947년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 아버지 세대거나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세대에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죠. 나와 현재를 사는 내가 토양을 만들었던 바로 어머니, 아버지 시대에 있던 이야기기 때문에 그 시대를 통해 한 번쯤 들여다보는데 굉장히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 그분들의 세대가 멀리 있는 세대가 아닌, 우리 할아버지가 이렇게 살았구나, 그 시대가 어땠고, 그 시대 속에 젖어보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강제규 감독은 ‘쉬리’를 통해 첩보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태극기 휘날리며’로 역대 두 번째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199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끌며 한국 영화산업 한 가운데 있었던 그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대부분의 감독들이 ‘내 영화를 보고나면 살아가는 삶에 어떤 자극이 되거나 새로운 좌표가 되거나, 힘이 되는 등 관객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길 원할 거예요. 저는 그 지점에서 재미, 즐거움, 쾌감을 준다면 큰 의미가 돼요. 저의 경우, 그렇게 살아왔거든요. 영화를 통해 얻은 선물들이 많아요.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제 꿈이 바뀌기도 했고, 생각과 삶의 자세가 전환되기도 했어요. 그런 걸 경험한 세대라 더욱 그렇죠. 제가 받은 선물을 관객들에게 줘야한다는 생각들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영화를 선택하는 것들도 자꾸만 저도 모르게 잣대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보고, 기획을 보고, 아이템을 보는 것 같아요. 이번 ’1947 보스톤‘도 그런 기준에서 하게 됐죠.”
강제규 감독은 ‘1947 보스톤’의 역사적 사건, 그리고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 세 선수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꺾이지 않는 의지와 뜨거운 용기를 전하고자 한다. 보스톤 마라톤 대회의 생생한 현장감과 가슴 벅찬 카타르시스는 가슴 깊이 뜨거운 울림을 안길 것이다.
“저는 제 마음이 어디서 움직이는가, 어디서 출렁이고 피가 소용돌이 치는가 느낌을 가지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것은 창작자마다 포인트가 다르죠. 그래서 자기 스타일, 취향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뜨거움의 포인트는 어떤 스토리, 장르일 때 샘솟는 게 아니라 ‘2023년도에 이 영화를 왜 해야 하지?’란 생각이 들 때예요. 다른 사람들이 숱하게 해왔고, 특별히 이것을 할 존재가 없다면 동기부여가 안 되죠. 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요. 그런 부분에서 영화를 선택하고 할 때 선택의 기준은 이 시점에 영화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해요. 그 뜨거움이 기준의 척도인 거죠. 최근 극장가가 위축되어 있잖아요. 장기화되고 있는데 영화계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해 큰 선물은 못 주더라도 ‘잘 안 됐네’란 실망감 보단 ‘그래도 버텨줬네’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어려운 영화인들이 새 동력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2015년 이후 오랜만에 관객들과 만나게 됐어요. 제 영화를 어떻게 보고 느끼실지 궁금하네요. 설레기도 하고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