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미집’ 송강호 “김지운 감독, 제 연기 보고 ‘께름칙하다’고” [인터뷰]
- 입력 2023. 09.20. 16:47:33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그가 연기한 캐릭터 자체가 ‘한국 현대 영화사’가 아닐까. 희극과 비극의 공존을 동시에 표현하면서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줬던 배우 송강호. 그가 이번엔 처음으로 카메라 뒤의 ‘감독’으로 분했다.
'거미집' 송강호 인터뷰
‘거미집’(감독 김지운)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영화다. 50년 전 한국, 대본 사전 심의는 물론 완성본 사후 심의 등 검열이 창작을 방해하던 시대 속에서도 걸작을 만들어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송강호가 분한 김열 감독은 영화를 다 찍고 나서 꾼 꿈에서 강력한 영감을 받고, 이틀만 더 찍으면 걸작이 될 것 같은 근거 없는 확신에 사로잡히는 인물.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우스꽝스럽고, 눈물 나는 안간힘을 쓴다.
“열등감, 일류 감독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이지만 끊임없이 자기의 능력을 의심하고, 좌절하고, 이런 과정을 보여줘요. 그렇지만 보편적인 시각에서 보면 김열 뿐만 아니죠.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인물이 많아요. 스스로도 그렇고요. 인물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어떤 감정을 보여주자, 어떤 특정한 영화감독의 이야기가 아닌. 그런 강점이 있는 것 같아요.”
김열은 성공적인 데뷔작 이후 만든 영화들이 모두 오리지널리티 없는 양산형 치정극이라며 평단의 혹평과 외면을 받는다. 특히 데뷔작마저도 선배 감독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작품으로 평가절하 되며 점점 더 고립과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확신으로 가득했던 김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강박에 사로잡힌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김열처럼 송강호도 열등감을 느낄 때가 있었을까.
“열등감은 항상 있어요. 잘생기고, 멋진 친구들을 보면 움츠려 들고, 열등감이 생기죠. 하하. 사람은 누구나 그렇잖아요. 자기보다 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보면 열등감이 있어요. 이건 자연스러운 열등감인 것 같아요.”
‘거미집’은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준다. 걸작의 강박에 사로잡힌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각자 충돌하는 개성과 욕망이 자아내는 드라마틱한 앙상블은 인생의 한 대목을 돌아보게 한다.
“모든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 실타래가 얽히기 시작하면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속에서 본인의 야심과 야망이 고군분투하며 광기에 집착하는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감독의 모습도 누구를 흉내 내야지 한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그 상황에서 자기에게 주문을 거는 장면도 있고, 주문이 상대방에게 설득을 시키려는 장면도 있죠. 다양하게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어요. 그게 다 표현되는 것 같아요. 화가 치미는 분노도 있지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보고 좋아서 칭찬하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은 것 같아요.”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은 2016년 ‘밀정’에 이어 7년 만에 ‘거미집’으로 재회했다. ‘조용한 가족’(1998)을 시작으로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 ‘거미집’까지 함께 맞춘 호흡만 5번째다.
“김지운 감독님은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집요하면서 진중하고, 영화를 촬영하고 풀어가는 단계가 침착하면서 정말 집요하게 찍으시는 분이죠. 그래서 좋아요. 그런 집요함이 있기 때문에 김지운 만의 스타일, 영화적인 미장센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이 변함없어요. ‘놈놈놈’ 때만 해도 지금의 산업적인 시스템과 많이 달랐어요. 현장에서 촬영도 길었고, 많은 실험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벽한 준비 하에 시작하거든요. 그런 차이점만 있을 뿐 기본적인 김지운 감독님의 집요하면서 열정적인 모습은 변함없어요.”
송강호는 한국 배우 최초 누적 관객 수 1억을 돌파한 배우이자 한국 영화 100년사 최고의 남자배우 1위로 꼽힌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 신’ 등 어떠한 찬사도, 그의 이름 앞에 붙었을 때 바로 납득이 될 터.
“후배들도 저에게 많이 물어봐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정답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정답을 적으면 안 된다고 해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정답을 보여준다면 정답은 정답이지만 감동이 없거든요. 우리가 모르는 정답을 적어내야 하는데 그게 정답이어야 해요. 박찬욱 감독님이 과거 인터뷰에서 ‘송강호는 정답이 아닌 정답을 적었는데 알고 보면 정답보다 더한 정답이다’라고 하셨어요. 김지운 감독님은 저의 연극을 봤는데 ‘이상하게 저 사람은 께름칙하다’라고 하셨죠.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 게 아닌, 내가 알고 있는 걸 안 보여준다는 것,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걸 보여주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아는 정답은 종류가 많아요. 그런데 못 찾아내는 거죠. 그리고 찾기가 힘들어요. 그걸 찾는 과정이 연기가 아닐까 싶어요. 후배들에게도 찾아가는 과정이 연기를 하는 거라고 얘길 하죠. 이건 누구의 가르침을 받기보다 체득되는 것 같아요.”
올해로 데뷔 33년. 배우 송강호도 연기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한계의 벽을 마주한 적 있었을까.
“딜레마가 있어요. 똑같은 답을 내는데도 시선과 호흡이 달라질 때 새로운 답이 되거든요. 그러나 전에 이걸 꺼냈으니 완전히 새로운 걸 꺼내야한다는 것만큼 이상한 게 없어요. 스포츠에도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게 말처럼 쉽지 만은 않아요. 어려운 과정인 거죠.”
명실상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국민 배우’ 송강호. ‘충무로의 자존심’이자 ‘한국영화의 자존심’인 그에게 영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답이 아닌 정답을 찾는 것 같아요. 그게 정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게 예술가의 본질이 아닌가 싶어요. 영화의 작업은 관객들에게 내가 아는 정답을 내밀었을 때 어떤 감동을 느끼는가, 영화를 본 후 가슴을 울렸다면 가장 큰 정답이 아닐까.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에게 의미가 돼요. 거대한 지구상에서 조그마한 나라가 늘 안주하지 않고, 한발자국이라도 발을 내딛는 영화를 끊임없이 도전하는 게 한국영화의 자부심이 아닐까 싶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