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소년의 몸부림 [씨네리뷰]
입력 2023. 09.26. 11:48:44

'화란'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둘의 만남은 필연일까, 악연일까. 치건(송중기)은 선일까, 악일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갔을 때에도 의문은 끊이질 않았다. 러닝 타임 내내 어둡고 버석한 분위기가 이어졌던 '화란'은 쉽게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지 않는 영화였다.

'화란'은 가난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10대 소년 연규(홍사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폭력을 일삼는 알콜중독자 새 아빠, 이를 방관하는 엄마, 그리고 이복 동생 하얀(김형서)와 함께 살며 연규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연규의 유일한 꿈은 돈을 모아 엄마와 네덜란드로 떠나는 것. 복지가 잘돼있어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산다는 이유만으로 연규는 '화란'(네덜란드)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못 벗어나던 연규에게 손을 내민 건 바로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이었다. 치건은 자신과 닮아보였던 연규에게 '절대 찾아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연규가 치건을 찾아가고 조직의 일원이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화란' 속 가상의 도시 명안시는 이들에게 감옥이었다. 집에서 벗어난 연규는 치건과 엮이면서 오히려 더 큰 지옥에 빠진다. 오토바이를 훔쳐 되팔고, 고금리 사채를 쓰게 하는 등 불법적인 일을 하며 스스로에 회의감을 느낀다. 소년이 도망친 곳은 '재앙과 난리'를 의미하는 화란(禍亂)이었다.

영화 소개에서 장르를 '느와르 드라마'로 정의했지만 '해바라기', '신세계' 등 기존의 느와르와는 다르다. 잔혹한 장면들은 다수 등장하지만 화려한 액션은 없다. 느와르의 어둡고 건조한 분위기만 있을 뿐, 그 안에서 이들의 혈투는 물리적이지 않고 주로 눈빛과 표정으로 이어진다.

찢어진 한쪽 귀, 처연한 얼굴 등 지금껏 보왔던 송중기의 모습과는 정말 다르다. 드라마 '빈센조', '재벌집 막내아들' 등에서 보여줬던 깔끔한 이미지들은 온데간데 없다. 대사가 많지 않아도 송중기는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홍사빈, 김형서, 정재광의 신인같지 않은 열연도 인상적이다. 홍사빈은 송중기와 함께 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에너지를 보여줬고, 김형서도 당찬 성격의 하얀을 자신만의 색깔로 잘 표현해냈다. 정재광 역시 강렬한 카리스마로 주연 배우 못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15세 이상 관람가에 맞지 않게 잔인한 장면들이 적잖게 등장한다. 신체 일부를 제거하는 신에서는 많은 관객들이 앓는 소리를 내기도. 눈뜨고 보기 힘든 가혹한 장면들이 가끔 나와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어두운 분위기, 소외계층의 이야기, 무거운 메시지까지 '화란'은 독립영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상업영화의 공식이 들어갈까 봐 노개런티로 출연했다는 송중기, 정말 그가 없었다면 독립영화로 마주했을 작품이다.

지난 5월 열린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화란'은 오는 10월 11일 개봉된다.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4분.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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