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빙' 류승룡에게서 느껴지는 벽, 완벽[인터뷰]
- 입력 2023. 09.30. 14:00:00
-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류승룡이 잘하는 것들을 ‘무빙’에 모두 쏟아부었다. 연기가 무르익을수록 겸손한 마음 가짐으로 촬영장에 향한 류승룡의 내공이 뜨겁게 빛을 발휘했다.
류승룡
지난 20일,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이 마지막 3회를 끝으로 20부작 전편이 모두 공개되며 7주간의 여정을 끝냈다. ‘무빙’은 올해 나온 OTT 작품 가운데 최대 흥행작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은 바. 종영 후에도 N차 관람, 복선 해석 등으로 꾸준히 회자되며 벌써부터 시즌2를 기다리는 애청자들의 목소리도 크다.
그가 아닌 장주원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또 한 번 ‘인생캐’를 경신한 류승룡의 열연은 이번에도 통했다. 캐릭터만큼이나 ‘무빙’의 현장 자체에도 깊은 애정을 표한 류승룡은 마지막 촬영 날의 여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긴 호흡은 처음이고, 20부작의 시리즈물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세대와 세대를 다 그린 것도 처음이고 희노애락, 여러 가지 인간의 감정 변화들을 한 작품에 다 쏟아낸 것도 처음이어서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현장 가는 게 설레고 행복했다. 지금도 많이 생각나고 배우들과 스탭들의 케미도 너무 좋았고 그래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라 특히나 애착이 간다. (마지막 촬영 때) 뭉클하고 끝난 게 맞나 싶었다. 다음날 약간 금단 현상 같은 게 있더라. 맞아야하는데(웃음). 끝나고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서운하고 그리운 현장이었다.”
막대한 제작비와 막강한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은 ‘무빙’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흥행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짧아지는 요즘 드라마 트렌드와 달리, 20부작의 뚝심을 지킨 ‘무빙’에 시작조차 부담스러운 회 차에 대한 진입장벽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무빙’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 덕분이었다. 정성스레 벽돌을 쌓아올리듯 ‘무빙’은 캐릭터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각각의 사연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회도 놓칠 수 없게 만드는 저력을 발휘했다.
“제일 어렵다. 예전에 웹툰을 보고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빠르고, 짧은 것들을 선호해서 이런 클래식하고 진중한 게 공감할 수 있을까, 지겹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다행히 기다리면서 하나씩 인물들, 캐릭터들 서사들. 이유들, 전사들에 대해 이해하면서 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쌓인 것 같다. 끝까지 조마조마 했는데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하면 반응을 하는 구나. 관객 분들은 정말 솔직하다는 걸 느꼈고 그게 너무 감사하다.”
류승룡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무한재생 능력을 가진 장주원의 모습 외에도 깊숙한 내면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류승룡은 주원에게 지희(곽선영)와 두식(조인성)이 갖는 의미를 골똘히 생각하며 이들의 관계성에 대한 특별함을 짚었다. 고독하게 살아왔던 주원은 지희와 두식 그리고 희수(고윤정)를 만나면서 자신의 능력을 가치 있게 쓰며 다정한 남편이자, 믿음직한 동료, 든든한 아빠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았다. 이에 그는 한 사람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주는 영향자체가 또 하나의 초능력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적인 부분. 재생 능력이 있지만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마음에 상처를 받고 어린아이 같지 않나. 장주원한테 선한 위로가 방향제시든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그래서 저는 20화를 통틀어서 가장 초능력이 강한 사람은 지희라고 생각한다. 저를 변화시켰으니까. 방향 없이 목적 없이 거친 삶을 살던 누군가가 한 사람의 영향으로, 김두식을 만나 나의 목숨을 살려주고 충성해서 배우면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지시켜 준 게 누구에게나 그럴 수 있다는 걸 염두했던 것 같다. 누구나 준비돼있지 않은 이별들, 소중한 걸 잃었을 때 고통을 경험하기에 소중한 걸 지키려는 게 초능력이라 생각한다. 옆에 있는 가족들, 일상 그런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 컸다.”
10, 11화에 걸쳐 공개된 주원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아무리 다쳐도 회복되는 능력으로 폭력 조직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동료들에 배신당하고 이후 두식과 지희를 만나 새 삶을 살게 된 주원의 인생사를 보여주며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같이 한 캐릭터의 서사 속에서 다양한 호흡과 감정, 연기 변주를 선보이며 류승룡은 더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해냈다.
“원작에는 더 거친 모습이 많은데 20대부터 현재 모습을 그려내는 긴 호흡이 좋았다. 내 안의 모습들이 있고 각자 서사와 희로애락과 생로병사가 있어서 짧은 시간 내에 단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도 좋지만 긴 모습으로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하면서 훌륭한 콘텐츠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많은 작품들을 보고, 참여하고 여러 작품을 통해 공부하고 경험 쌓은 게 ‘무빙’에서 도움이 됐다.”
전작들에서도 숱하게 액션 연기를 경험한 류승룡은 느와르 액션도 노련하게 완급조절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무빙’에서 느꼈던 새로운 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녀들의 새로운 반응을 언급했다.
“집에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아빠가 무슨 촬영했다고. 그런데 ‘무빙’ 보고 펑펑 울더라. 우리 애들이 착해졌다. 중3, 고3 남자애들인데 집에 가면 별 이야기 안 하는데 보고 깜짝 놀랐다더라. 100대 1로 싸우고 무장공비로 폭탄이랑 하수도에서 싸우는 걸 보고 애들한테 ‘우리 아빠 맞아?’같은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웃음)”
각종 장비들이 난무하는가하면 거칠게 부딪히는 액션신이 많았던 만큼 류승룡은 촬영장에서 무엇보다 안전을 강조했다고. 몸을 내던지며 강한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촬영들이었지만 오히려 힘듦 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는 류승룡이다.
“집에서 좋은 걸 많이 해줬고 몸이 많이 굳어서 스트레칭을 많이 했다. 리허설도 많이 했고 무조건 안전이 현장에 모토였다. 다치면 현장도 막대한 손해가 되니까 그 점에 굉장히 주안점을 두고 안전하게 찍자고 했다. 액션은 통과하면 다른 무언가 또 있고 또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도장 깨기처럼. 산전수전 육해공 콘셉트부터 대상이 달라서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 너무 훌륭한 스탭들과 해서 나만 집중해서 잘하면 된다 였다. 육체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힘들다고 말한 적 없었고 보는 분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겠다는 설렘이 있었다.”
모든 떡밥들을 회수하고 해피엔딩을 끝을 맺은 ‘무빙’에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강풀작가의 원작 웹툰 속 세계관과 류승범이 재등장한 쿠키 영상 등을 통해 시즌2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 류승룡 역시 작품을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또 ‘무빙’에 속한 한 명의 캐릭터로서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표했다.
“시즌2에 대해서 들은 바는 없지만 저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원작이 있으니까 세월은 흐르고 세대는 교체되고 부모가 아이들을 지켜줬다면 늙어가는 부모들을 다음 세대가 지켜주고 그런 브릿지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서로 협업하고. 아무래도 번개맨이나 프랭크가 원작에 없어서 원작대로만 가지 않겠지만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하고 있다.”
매 작품마다 강렬한 연기변신으로, 장르 불문하고 인생캐릭터를 수집해온 류승룡. 믿고 보는 배우로 각인되기 까지 류승룡이 걸어온 길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다작을 하고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이 한때는 마음의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하지만 류승룡은 이에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면서 그의 도전은 어느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극 중 주원이 벽을 어렵지 않게 부수고 지희를 구했던 것처럼, 류승룡은 마음 속의 벽을 허물고 거침없이 세상을 마주했다.
“너무 감사하고 부담은 당연하다. 예전에 1년에 여러 작품을 할 때 이준익 감독님한테 여러 작품을 해서 캐릭터가 소비되는 거 같다고 걱정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게 그때 이준익 감독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땅을 깊게 파면 손가락은 아프지만 맑고 깨끗한 물이 나온다’. 새벽 아침에 문경에서 그날의 분위기. 그날의 향기 다 기억에 난다. 그때 용기가 나서 한 게 ‘최종병기 활’, ‘내 안의 모든 것’, ‘7번방의 선물’이었다. 한국배우가 변발하고 만주어하는 걸 꺼릴 수 있지만 끝까지 해보자 했고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됐고 모토가 돼서 모든 작품에 있어서 한계를 두지 말기로 했다. 벽은 생각보다 얇다 뚫고 나오면. ‘무빙’을 그렇게 접근했다. 그러고 나니까 그다음 챕터가 있더라. 인생이 그런 것 같다. 부담은 되지만 또 다음에 어떤 캐릭터를 만났을 때 끝까지 파보면 그 벽은 의외로 얇을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배우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류승룡이지만, 그는 여전히 연기는 어렵다 한다. 새로운 작품과 해보지 않은 연기를 적당하고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류승룡은 늘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한다.
“연기 너무 어렵다. 감정을 세공하는 거니까. 누군가 앵글에 오케이한 점을 360도로 보면 모든 앵글이 다 되는데 감정도 어떤 게 맞는지 어떻게 아나. 거기에 가장 알맞은, 어중간 말고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조율, 튜닝 이게 저의 화두다. 연기할 때도 삶도 그렇고 적절한 조율점, 과유불급이 되지 않는 지점을 찾아가고 있다. 과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부족해서 안배한 적도 있고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것 같다.”
류승룡은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바라보는 배우가 됐다. 그는 오랜 시간 연극무대에서 다진 연기력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차근차근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해를 거듭할수록 필모그래피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류승룡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서 큰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분인데 김효경 교수님께서 저에게 ‘넌 늦게 피는 꽃이야 조급해하지마’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저희 학교 출신들의 엄청난 은사님이신데 감사하게도 저를 늦게 피는 꽃이라고 하셨듯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기간이 길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 또 우리나라에 훌륭한 이야기꾼들, 이야기, 기획자, 감독자들이 많으셔서 그것들을 표현하는 기회의 장이 많아 그러한 점이 감사하다. 항상 제 상상 이상의 작품을 만난다. 이야기가 풍부하고 구현 능력이 풍부한 이 나라에서 배우를 한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20년 동안 많은 작품을 제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매 작품마다 다음이 더 궁금해지고, 기다리게 만드는 류승룡의 재발견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무빙’ 속 장주원처럼 대중들에게 소중한 추억과 기억을 오래도록 남기고 싶다는 류승룡이다.
“소중한 것에 대한 중요함. 일상에 대한 소중함. 저도 누군가의 한마디로 인해서 마음이 치유되고 위로를 받았듯이 극중에서도 말 한 마디에 위로가 되고 사람 인생이 바뀌지 않나. 그 작품의 선택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위로와 공감을 얻어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