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 김남길이 추구하는 주인공의 역할[인터뷰]
입력 2023. 10.03. 17:07:49

김남길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김남길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매 작품과 캐릭터마다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한 김남길이 역사적 아픔 속 우리가 미처 몰랐던, 가려져 있던 숨은 영웅의 활약상을 보여주며 진한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선사했다. 시대극에 걸 맞는 고강도 액션은 물론, 애틋한 멜로 뒤 처연한 눈빛까지 김남길은 그가 잘하고 자신 있는 모든 역량을 ‘도적’에 쏟아 부었다.

드라마 ‘선덕여왕’, ‘명불허전’, 영화 ‘미인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도리화가’ 등 그동안 사극과 시대극에 심심찮게 도전해왔던 김남길이 ‘도적: 칼의 소리’을 통해 익숙한 듯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일본의 횡포가 극에 달한 시점, 일본도 조선도 아닌 간도에서 삶을 꾸리고, 때로는 거칠게 저항하는 이윤을 김남길은 낯설지만 매력적이게 그려냈다.

‘도적: 칼의 소리’(이하 ‘도적’)는 1920년 중국의 땅, 일본의 돈, 조선의 사람이 모여든 무법천지의 땅 간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 된 이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 김남길은 극 중 노비에서 일본군으로 그리고 간도를 주름잡는 도적단의 리더가 된 이윤으로 분했다.

총격전부터 대지를 가로지르는 마상 액션, 활, 칼, 도끼, 낫, 맨손으로 벌이는 격투, 도적단의 주특기를 조명한 명정촌 등 현란한 액션신을 담은 ‘도적’은 한국형 웨스턴 액션 활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 북간도의 도시 명정을 배경으로, 당대 조선인들의 역사적 아픔을 관통하면서도, 동서양을 넘나드는 액션을 더한 ‘도적’은 김남길에게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왔다고.

“사극은 시대극과 다르고 역사도 더 앞에 있지 않나. 사극의 잔재가 남은 개화기 시대와 일제 가 섞여서 보이는 것들을 근 현대 이야기와 같이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살아보지 않은 간도라는 중국과 일본, 조선 사람이 어우러져 응집돼있는 도시가 우리가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것과 웨스턴적인 부분을 차용하면 좋겠더라. 그래서 그런 웨스턴 장르의 오리지널티를 따라가기보다 그 시대 만주 쪽의 이야기들이나 소재들을 들고 그 안의 사람들 이야기도 재밌었다.”

김남길은 ‘도적’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선보이게 된 점에도 남다른 마음을 드러냈다. 시대적 배경만 가져오고 허구의 인물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자칫 전달 의도가 왜곡되거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길 원했다고. 이에 ‘도적’에서 웨스턴 장르를 표방한 이유도 분명히 밝혔다.

“시대적 배경을 글로벌적으로 보여주는 게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책임감이 든다. 재미를 포기할 수도 없고 침략 전쟁이나 해외의 사건들을 모티브한 영화도 재밌게 보면 그 사건을 찾아보지 않나. 십자군 전쟁이나 남북전쟁 등 웨스턴 장르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런 시대도 있었고 여러 가지 일을 극복해서 왔고 아시아에도 장르적인 부분의 사연이 존재한다고 보여지길 바랐다.”


‘도적’에서는 선과 악을 뚜렷하게 구분 짓지 않는다. 조선인과 독립군의 입장에서는 일본군, 친일파가 무조건적인 악의 축이지만, ‘도적’은 이들의 악행을 집중적으로 비추기보다는 평범한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다. 김남길도 조선과 일본을 단순히 이율배반적인 관계로만 그리지 않은 ‘도적’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이윤은 시대적, 정치적 영향에 휩쓸리기보다 그 시대를 그저 받아들이고 살았을 이름 모를 누군가들을 대변하고 있는 인물이기에 김남길은 그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온전히 표현할 수 있었다.

“명확한 빌런이 없어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게 매력적이기도 했다.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지 않나. 조선 사람 입장에서 주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독립에 대한 열망이 클 거고 그 안에서 행동으로 옮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그 시대가 어떤 사람이 잘못해서 빼앗긴 건 아니니까. 그러한 관점으로 보는 사람과 그 시대를 어쩔 수 없이 통과하고 사는 이들이라고 봤다. 드라마에서 메인 빌런이면 일본군과 친일파들이라서 당연히 조선을 침략한 근거지인 일본을 주적으로 할 수밖에 없지만 전쟁이 나면 나라를 지키고 싶은 이들도 있지만 그런 건 잘 모르고 가족을 지키고 싶은데 등 떠밀려서 온 사람도 있지 않겠나.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이윤은 중간적인 입장인 거다. 만약에 ‘도적’이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안 할 수도 있었다. 늘 상 일제 시대 이야기를 하면 독립군과 일본 조선으로 갈라놓는데 그게 아니라 중립적 인물이 매력적이었다. 나라, 시대보다 나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사람들로부터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는 이데올로기적인 부분에서 맞닿아있다. 작가님이 표현하고 싶은 것도 나라를 잃은 명분적인 복수와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살다보니 쉽지 않고 죽은 사람은 안타깝지만 우리는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간도로 가고 도적단들이 각자 이익을 위해 살긴 하나 맞닿아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액션신은 김남길의 주특기다. ‘도적’에서는 20kg의 윈체스터 장총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한 손으로 능수능란하게 총을 돌리는 모습은 서부극 주인공의 한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이를 위해 김남길을 총 잡는 모습이 손에 익혀지도록 틈틈이 연습했다. 더불어 김남길은 이윤의 절제된 감정선을 액션에도 투영하고자 했다. 이에 전작의 캐릭터들보다 비교적 가라앉은 정서를 유지하며, 액션신에도 완급조절로 몰입도를 높였다.

“‘아일랜드’ 찍을 때도 눈 뜨면 총 몇 번 돌려보고 그랬다. 제주도에서 촬영할 때 ‘아일랜드’는 준비 중이었고 ‘도적’은 초반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 여태까지는 책임감 있고 능동적으로 더 뭔가를 하거나 밝거나 유쾌하거나 진중한 느낌을 했다면 이번에는 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액션을 해도 촬영하면서 장기룡이나 오오카 경시를 지금 죽이면 안 되나.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데 왜 안 죽이나. 그런 것에 답답함이 있었다. 뒤에 올 수 있는 불안요소가 있지만 이윤은 가족들이 먹고사는 걸 들여다보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거다. 그렇다보니 예전 같으면 우리 가족들과 터전을 위협하는 건 다 죽어야 돼, 찾아가서 죽일 수 있고 제거할 수 있는데 윤이는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성향적으로도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때처럼 완전히 직업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 이상 그 시대의 차분함을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쫓고 쫓기던 사이에서 조력 관계로 거듭나는 언년이 역의 이호정과 이윤의 액션신도 빼놓을 수 없다. 김남길은 상대적으로 경험은 부족했지만 액션에 진심이었던 이호정의 열정을 높이 샀다. 특히 극의 설정 상, 비슷한 액션실력을 겸비한 캐릭터였던 만큼 김남길은 이호정과의 적당한 합을 맞추는데 중점을 두고자했다.

“액션을 안 해 봤던 친구가 작품 하나 열심히 한다고 해서 액션을 잘하지 않는다. 그게 쌓여야 하는데 (호정이는) 액션에 대한 경험이 없음에도 민폐 끼치고 싶지 않다며 미리 연습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저는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연도 그렇고 작품에 소외감 드는 게 싫다. 그렇게 생각하면 외로워서 액션하는데도 수월하지 않다. 액션에 대해 익숙하지 않고 경험이 없어서 주먹 뻗는 것도 힘들고 자칫하면 엉성해 보이는데 용기를 주고 싶은 건 너무 잘하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내 경험치 만큼 따라오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경험치에 맞는 눈높이에 맞춰서 둘이 합을 맞추려면 중간점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도 그에 맞는 눈높이를 찾을 것이고 네가 노력해서 이 만큼을 채워주면 그 합을 보여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호정이가 그런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나서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부분이 예쁘고 기특하다. 여배우들이 그런 역할과 액션을 한다는 게 신체적으로 가진 힘듦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고 너무 하고 싶어서 했고 열심히 한다는 마음이 예쁘더라. 호정이는 더 잘되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김남길이 최근 선보인 작품들은 대체로 액션 장르를 머금고 있었다. 필모그래피가 늘어남에 따라 액션 장르도 섭렵 중인 김남길에게 액션을 선호하는 마음이 작품 출연을 결정짓는데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까. 김남길은 어떤 이야기와 캐릭터이든 적절하게 배치돼있는 액션물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장르든 액션이 있는 캐릭터와 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캐릭터적으로 어떤 표현법에 있어서 법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응징에 대한 방법, 수단이 너무 폭력적으로 비춰지면 안 되겠지만 내성적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적으로 그런 서사를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활용도가 좋다고 본다. 액션을 좋아하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고 특유의 여유로움과 재치를 가진 김남길을 보고 있자면 티 없이 맑은 영혼을 가진 듯하다. 그러한 모습에서도 김남길은 연기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연기를 바라보는 마음에서 만큼은 아이 같은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기에 그는 새로운 작품을 접할 때에도 어떠한 편견이나 굴레에 갇히지 않으려고 했다.

“철든다는 게 무겁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물론 철 안 들고 철부지로 산다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걸 고민하고 깊이 생각하려고 하는데 캐릭터나 어떤 작품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확고하게 내가 가진 기준이 있는 게 중요한데 유연성을 갖추고 그들이 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이야기, 메시지가 거창하지 않더라도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게 납득이 안 되면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게 열려있으려면 고정이 박혀있지 않아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그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내가 받아들일 수 있구나라고 도움이 됐다. 천진난만하긴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커가는 과정이 있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들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게 되지 않나.”

김남길은 꾸준히 다작 활동을 이어오면서도 NGO ‘길스토리’를 운영하며 10여 년째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배우로서 다양한 곳에 목소리를 내고 본업이 아닌 분야에 마음을 쏟아 붓는 일은 진심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김남길이 꾸준히 다른 세계에도 관심을 갖고 실천을 행하는 이유도 사실은 연기가 밑바탕이 되어서였다. 그는 결국 어느 작품이든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곁에서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몸소 보고 느껴야한다는 주의다.

“연기와 다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영향력을 돌려주고 이런 걸 떠나서 하다 보니 그런 것이고 배우들이 유명인으로서 갖고 있는 대중들의 사랑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건 아니지만 배우는 조금 더 삶에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가수는 노래, 트레이닝해서 보이는데 배우는 기본적인 발성이나 발음으로 표현법은 늘 수 있어도 나이가 먹으면 그 얼굴에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한다. NGO나 다른데 시선을 열어두는 건 관심을 갖되 같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보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비정치, 비종교적인 입장을 취해도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작품에 유연성을 갖고 싶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거라 세상이나 삶에 대해 관심을 들여다봐야 그런 고민, 작품, 캐릭터를 위해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지 무슨 이야기할지 다르니까 사실 촉을 세우기보다 얕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 따라 달라지는 눈빛, 목소리, 돌변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에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사람 냄새 나는 배우. 김남길을 표현하는 말이다.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그의 삶에 대한 철학은 정직하게도 연기와 맞닿아있었다. 이에 작품 앞에 이름을 내세울 수 있는, 믿고 보는 주연 배우가 되었지만 그가 항상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있는 이유다.

“더불어 사는 건 잘 모른다. 시대적으로 하고자 하는 추구하는 게 달라서. 다만 살아가면서 나누는 게 더불어 잘 사는 게 아닐까. 저는 주인공은 조연을 빛나는 게 하는 역할이지 자기가 빛나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험이 돼서 극을 끌고 갈 수 있다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고 그 안에 누군가 소외감 드는 게 싫다. 저도 들어봤었고 그런 것 때문에 꿈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한 적도 있어서 같이 이 세상을 살고 사회 일원으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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