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속·고민·검열” 하정우의 숙명 [‘1947 보스톤’ 인터뷰]
- 입력 2023. 10.05. 09: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늘 저를 단속하려고 해요. ‘내가 고여 있진 않나? 안일한 선택을 하고 있진 않나? 어떻게 이걸 발전해 나갈 것인가’, 그런 것들은 계속해왔던 고민이죠. ‘비스티 보이즈’를 찍고, ‘멋진 하루’를 찍었을 때 두 캐릭터가 너무 똑같다는 평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앞니를 하나 뽑고 연기를 해야 하나?’ 싶었죠. 배우가 가진 숙명인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을까, 깨달음인 것 같죠. ‘새로운 표현법을 만들 수 있을까?’는 늘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늘 경계하고, 고민스러운 건 고여 있진 않은가. 작품보다 상업적인 걸 생각하는 건 아닌가. 그런 걸 깨닫게 되면 다음 스텝에서는 어떤 방향성으로 가져가야하는지 생각하는 것 같아요.”
'1947 보스톤' 하정우 인터뷰
지난여름 ‘비공식작전’으로 관객과 만났던 하정우는 약 두 달 만에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으로 추석 극장가 문을 두드렸다.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하정우는 시나리오가 아닌, 강제규 감독을 보고 작품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문이기도 한 강제규 감독님의 ‘쉬리’를 보고 놀랐어요. 한국형 블록버스터 첫 출발을 알린 작품이 ‘쉬리’잖아요. 군 휴가 때 나와서 봤는데 놀라웠고, 반가웠죠. 그리고 멋졌어요. ‘태극기 휘날리며’도 멋졌고요. 학생의 신분으로 배우를 꿈꿀 때 압구정에서 강제규 감독님을 뵀어요. 한 가게에서 연출부와 열띤 토론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거기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어요. 그런데 같이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마이웨이’ 때도 캐스팅을 안 하시더라고요. 하하. 사석에서 만난 강 감독님은 굉장히 로맨티스트였어요. 감독님 집에 놀러도 가고, 친분을 쌓아갔죠. 형, 동생 사이로 가깝게 지내게 됐어요. 이후 영화를 하신다며 제안을 주셨죠. 그냥 강제규 감독님과 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들었어요. 영화가 마라톤 소재라 지루한가? 싶었는데 단순한 마라톤 영화가 아니라 좋았죠. 국대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다는 무게감에 대해 이 시나리오를 통해 알게 됐어요. 일장기를 달고, 대회에 참여하고, 일본의 탄압을 받고, 서윤복 선수를 만나 다시 태극마크를 다는 여정이 마라톤이 주가 아닌, 강한 드라마로 느껴졌죠.”
특히 현장 촬영은 물론, 긴 후반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강제규 감독을 향한 신뢰가 더욱 두터워졌다고 한다.
“감독님은 혼자만의 세계를 고집하지 않고, 많은 의견들을 문턱 없이 받아들여주시고, 말씀해주셨어요. 소통을 참 잘하시더라고요. 고집 안에 갇힐 수 있는데 감독님은 유연하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아닌 건 아니라고 설명해주셔서 좋았어요. 특히 너무나 예상치 않게 후반작업을 하셨잖아요. 언론배급시사 2주 전까지 마지막 작업을 하셨어요. 그것 또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완성본을 만들어놓고, ‘이정도면 충분히 됐지’라고 할 법 한데 감독님은 끝까지 후반작업을 하셨죠. 영화 안에 그 힘들이 담겨질 거라 믿어요. 엄청난 노력과 숙성의 시간, 후반작업의 시간을 거친 작품이 아니었나 싶죠. 잘 버텨내신 게 감동적이었어요.”
하정우는 극중 1947년 보스톤의 기적을 이끄는 한국 마라톤의 전설 손기정 역으로 분했다.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달려야 했던 나라 잃은 선수의 울분부터 해방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는 구제 대회의 출전을 이끄는 감독의 리더십까지 담아내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터.
“손기정 선생님이 이북출신이세요. 손기정 선생님의 기질, 그분의 어떤 캐릭터적인 부분들이 큰아버지와 상당히 닮아있어 쉽게 이해가 됐죠. 그러나 주어진 신을 받아 그 안에서 어떻게 캐릭터를 표현할지 고민했어요. 기능적인 역할도 있어야 했거든요. 어떤 전사와 에피소드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걸 이해하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하지만 서윤복 선수에게 다그치고, 이끌고, 보스톤까지 가게 되는 모습들은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어요.”
인터뷰가 무르익을 즈음, 올 여름 시장에 나와 부진한 성적을 거둔 ‘비공식작전’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과 ‘신과함께’ 시리즈의 주지훈과 재회로 화제를 모았던 ‘비공식작전’은 최종 105만 관객을 동원하며 기대 이하 성적을 올린 것. 약 두 달 만에 신작을 내놓은 그는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크진 않을까.
“시대의 흐름이나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형태, 그런 것들을 살펴보고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비공식작전’의 경우, 개인적으로 재밌던 영화고, 재밌게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하는 건 철저하게 검열을 해봐야하죠. 아직은 그 상처, 아픔이 아물진 않았지만 한발자국 떨어져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를 가져보려 해요. 지금 ‘로비’ 촬영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됐어요. 제작하고, 촬영하는데 있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죠. 추석 시즌 ‘보스톤’을 통해 넘겨보면 구체적인 깨달음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