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계속된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 [인터뷰]
- 입력 2023. 10.06. 16:53:2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아티스트들에게 사형선고는 머무르고, 안주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를 바꿔보고, 리프래시 해보자는 생각에 실험하게 되더라고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새로운 것을 해보면 영화적인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김열 감독에게 스스로 주문하고, 질문하게 했죠. 그리고 제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도태되지 말고, 늙지 말아야겠다 싶었어요. GV에서 관개들이 질문할 때 영화가 안 늙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양한 측면에서 자꾸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김열 감독이 이야기하는 건 ‘거미집’을 만드는 저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 있죠.”
'거미집' 김지운 감독 인터뷰
“최악의 상황이 와도 시크하자, 쿨한 태도를 유지하자, 유머감각을 잃지 말자가 저의 신조에요. 그런데 영화 현장만 가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비판에 빠지고, 절망과 자기혐오에 빠지죠. 어쩔 때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일사분란하게 잘 맞춰 들어가 혼연일체가 되어 감동하기도 하는데 그건 저의 역량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감정 변화가 심하죠. ‘영화가 뭐길래? 평생을 영화 밖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았는데 영화 안에서는 비판, 자학을 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김열 감독에 꽤 많이 들어가 있어요. 개인적인 심상이 아닌, 감독 공통의 심상이 아닐까 싶죠. 김감독이 신감독을 만났을 때나 호세에게 하는 이야기 등은 실제 현장에서 느낀 크고 작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특히 호세에게 ‘나만 좋으려고 하는 거냐’라고 하는 장면은 실제로 제가 한 말이기도 하고요.”
‘거미집’의 시작은 팬데믹을 겪으면서부터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영화계는 좀처럼 회복세에 접어들지 못했고, 이를 지켜본 김지운 감독은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팬데믹 이후 영화가 이렇게 사라지는 건가?’ 싶었어요. 현대를 규정하는 것에 있어 가장 강력한 매체가 영화인데 말이죠. 영화라는 것은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근접한 형태로 묘사하는 매체에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인가’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마 저뿐만 아니라 팬데믹 기간 이후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감독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처음 영화를 사랑했을 때, 꿈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내가 영화에서 어떤 질문을 했는지 기억하고, 다시 소화하면서 ‘거미집’이라는 작품에 매칭시켰어요. 이 영화를 만들고, 관객과 언론에게 선보였을 때 어쩌면 영화에 대해 살짝 식었던 사랑, 의기소침해진 부분들을 북돋아 주고, 힘을 잃지 말라는 나에 대한 격려로 만든 거죠. 이 영화를 통해 혹시나 하는 의문의 시선, 불안의 형태로 살짝 식어진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영화가 됐다면 최고의 결과물이 아닐까요?”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의 현장은 온갖 방해와 몰이해를 딛고, 분투 끝에 완성된다. 아이러니와 고난을 딛고 앞으로 나아갔듯, 김지운 감독은 ‘거미집’을 통해 ‘영화 또한 계속되리라’는 낙관과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VIP 시사 후 뒤풀이를 하는데 ‘팬데믹 이전 한국영화 뒤풀이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떤 감독은 좋은 영화를 봐서 시나리오를 쓰러 가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좋은 기운을 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하다 보면 제가 좋아서 하고, 사랑해서 하는 거지만 어느 순간 자기 검열이 올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거치면서 사랑에 대한, 꿈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만든 영화에요. ‘거미집’을 통해 약간 식었던, 희미해졌던 영화에 대한 것들이 다시 회복되는 영화가 됐으면 합니다.”
‘조용한 가족’ 데뷔 이래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등 자기 복제나 장르의 반복 없이 한국 영화의 새 장을 열어온 김지운 감독. ‘거미집’ 이후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
“모르겠어요. 하하. 관객보다, 현재 영화의 패턴보다 한발자국, 반보정도 앞선 세련되거나 새롭게 안했던 것들을 해보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영화적으로 큰 비전, 야심을 추구하는 건 아니에요. 관객들의 흥미를 끌고 가려면 살짝 앞서야 하죠. 대중성을 떠나 실험하자는 것도 아니에요. ‘거미집’도 관객보다 반보 앞서나가 지지를 보내는 응원군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은 거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