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경구 “황반장 수사물 아냐, 불의에 맞선 ‘소년들’의 이야기” [인터뷰]
- 입력 2023. 11.07. 07: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감독의 뚝심과 배우들의 진심이 만났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 ‘소년들’. 그 중심에는 배우 설경구가 서 있다.
'소년들' 설경구 인터뷰
‘소년들’은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른바 ‘재심사건’으로 유명한, 1999년 전북 완주군에서 발생했던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소재로 재구성한 영화다.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 금융범죄 실화극 ‘블랙머니’에 이어 정지영 감독의 ‘실화 3부작’으로도 불린다.
설경구는 우리슈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완주서 수사반장 황준철을 표현하기 위해 혹독한 체중 감량을 하기도. 뿐만 아니라 진범을 잡기 위한 형사의 열의와 현실의 벽 앞에 무기력해진 좌절감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감독님은 단순하게 ‘강철중 한 번 더 하자’라고 하셨어요. (‘강철중’ 이후) 그런 캐릭터를 피해왔거든요. ‘감시자들’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황준철은 경찰대를 나온 강철중 같은 느낌이었어요. 살아온 인생이 격렬했고요. 황준철은 ‘미친개’ 별명이 주어졌기에 사건에 집중해서 단순하게 접근했어요. 중요한 건 17년 후 피폐해진 모습이었죠. 모델은 있었어요. 약촌오거리 황반장님이었죠. 그분을 (실제로) 만나진 않았지만 이야기는 조금 들었어요. 파출소로 좌천된 모습을 감독님께서 따오신 것 같았죠. 재심한다고 했을 때도 몸과 마음이 다 망가졌다고 하시더라고요. 배신감에 상처가 컸는데 사모님이 (재심을) 하라고 해서 했다는 큰 틀을 (감독님께서) 많이 가져오셨어요.”
정지영 감독은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선보여온 바. 이번에는 영문도 모른 채 한순간에 살인범으로 지목된 것을 시작으로 17년 만에 무죄가 입증되기까지, 세 소년의 삶에 새겨진 주홍글씨와 사건의 이면을 담아냈다.
“정지영 감독님은 어른으로서 책임감이 있으신 것 같아요. 사회 이야기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시는 분이죠. 단식, 농성도 하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감독님 중 한 분이세요. 감독님은 거울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금방 또 잊혀지고, 묻히니까. 경찰들이 뒤죽박죽 난장판을 만들어놔도 이를 해결한 건 피해자분들이에요. 감독님은 이런 사건이 또 생길 수 있으니 거울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하셨죠.”
설경구는 정지영 감독처럼 나이가 먹고 싶다고 바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지영 감독님은 수평, 상하 없이 관계를 유지하세요. 그래서 이번 현장도 묘하게 느껴졌어요. 스태프들이 감독님에게 와서 거침없이 얘기하더라고요. 보통 무전기로 얘기하는데 감독님께서는 직접 뛰어오셨어요. 얘기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몇 번이나 하시던지요. ‘너 선배, 나 후배’ 이런 게 없었어요. 저도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죠. 정지영 감독님처럼 나이 먹고 싶어요.”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자부터 가로막으려는 자, 외면하려는 자까지. ‘소년들’은 1999년 과거의 잊혀진 사건이 아닌 2023년 현재, 외면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전하며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유치할 것 같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피해자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장면인데 촬영을 앞두고 어떻게 하나 싶었어요. 닭살이 돋을 만큼 싫었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눈물이 났어요. 감독님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 같았어요. 변호사님을 만났을 때도 ‘목소리를 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이건 황반장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소년들의 이야기죠. 불의에 맞서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는 이야기예요.”
설경구는 마지막까지 “이 영화는 봐야한다”라고 강조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하는데 흥행이 되어서가 아닌, 다양한 작품이 나와서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가 잘 되면 한국영화가 다시 살아날 것 같아요. 돈이 안 되는 영화들은 묻혀버리니까. 작은 영화뿐만 아니라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