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12월 12일, 악당이 탄생한 그 밤” [인터뷰]
입력 2023. 11.22. 15:34:30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바리게이트를 넘어 주먹을 날려야하나, 총을 쏴야하나 고민했어요. 영화 속 인물들의 이름을 바꾼 것도 제 영화는 12월 14일에 끝나기 때문이죠. 이태신 장군이 전두광에게 와서 그 말을 할 때 인간적인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 같아요. 존재를 부정하는 걸 느꼈을 것 같더라고요. 기쁨의 순간을 누리지 못하고, 머뭇했지만 그 ‘인간’이 화장실이란 공간에 가서 ‘내가 이긴 건데’라며 정당화 시키고, 웃는 순간 그 ‘인간’은 ‘악마’가 된 거라 생각해요. 우리 현대사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악당이 탄생한 게 12월 12일, 그 밤이라고 생각하죠.”

1979년 12월 12일 밤, 한남동에서 들려온 총성. 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김성수 감독이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들려준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다. 김성수 감독이 고3때 한남동에서 총소리를 직접 들은 이후 꾸준히 품었던 의문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제가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는 역사적 정황이 잘 묘사됐어요. 이것을 열심히 찍으면 저들의 승리의 기적에 당위성을 부과하고, 멋진 근사한 악당이 될 수 있기에 ‘앗 뜨거!’하고 손을 놨죠. 10개월 후 용기를 냈어요. 제가 다큐멘터리를 하는 게 아니니까. 자부하는 건 제가 총소리를 직접 들었잖아요. (참모총장이) 납치되던 순간, 사운드를 들은 거예요.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사건에 관심이 많았어요. 장갑차가 지나가는 걸 보기도 했죠. 육교를 넘어가야 하는데 군인 아저씨가 막아서기도 했어요. 막는 과정에 총소리가 3~4발정도 났죠. ‘빨리 가라’는 말에 앉은뱅이걸음으로 내려간 기억이 나요.”



1212군사반란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서울의 봄’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시나리오 제안을 받은 김성수 감독은 연출을 수락하기까지 이 사건을 어떻게 그려야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그리고 그가 내린 답은 사건을 잘 모르는 관객들까지 12월 12일, 그날의 현장 속으로 데려가기 위해 큰 틀을 사실적으로 구축하되 그 안의 인물들의 성격과 구체적인 행적은 영화적으로 창작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 사람들이 내란죄, 군사반란죄로 재판을 받을 때 끝까지 맞서 싸운 사람들, 진짜 군인들 중에 그 사람들을 부각시키자 했어요. 수도경비사령관의 이야기를 만들면 승리의 기록이 아닌, 승리를 하기 위해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하고, 맞섰는가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수도경비사령관의 관점으로 보면 되겠다 싶었고, 선과악의 대립이라는 쉬운 대립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뻔한 결말이 있는 짧은 사건일지 모르지만 9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일들이 어떻게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는가 그 원리가 간단해 보였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당시 실재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전두광으로, 그의 절친이자 후계자가 되는 노태우는 노태건으로, 이들에 맞서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은 장태완이다. 이처럼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변경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겨 영화 상영이 멈출까?’란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1212군사반란 기록은 역사 정황이 많죠. 이것을 영화로 만드는 게 어렵더라고요. 처음에 본 시나리오도 훌륭한데 사실 정황적 묘사에 발목이 잡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인간 군상들의 욕망의 드라마였거든요. 이름을 조금씩 바꾸니까 자유로워졌어요. 역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걸 포기하는 대신, 창작의 자유로움을 얻게 됐죠.”

이태신은 장태완 소장을 모티브로 새롭게 그려진 캐릭터다. 장태완은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다뤄진 바.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불같으신 분이었어요. 호랑이 같고, 다혈질에 거침없는 분이었죠. 처음에 여러 사람과 싸우지만 나중에는 외롭게 고립되는. 그 당시 사령관, 리더하면 거침없는 사나이의 느낌이었는데 오늘날의 젊은 관객들이 볼 땐 그런 모습보다 합리적이고, 욕망이 많지 않는 자기 신념이 강한 사람. 저희 세대 때는 근사한 어른들 중 과묵하고, 묵묵하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아버지들의 모습으로 그렸어요. 영화 속에서는 정우성의 외피와 비슷하게 만들어 갔죠.”



권력 찬탈을 위해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보안사령관 전두광 역의 황정민은 예고편 공개 직후 파격 분장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황정민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목표 하에 하극상, 권모술수 등 탐욕의 민낯을 소름 돋는 열연으로 전두광을 그려냈다.

“‘아수라’ 때 연기에 감탄했어요. 이후 ‘리처드 3세’ 공연을 봤는데 셰익스피어 연극 중 역사적으로 실존 인물이자 제일 사악하며 내면이 뒤틀리고, 악행을 하는 인물이잖아요. 그때 (연기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을 때 또 공연을 보러 갔는데 말을 할 수 없이 잘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두광은 황정민이 해야겠다 싶었어요. (대머리 분장을 보고) 놀라진 않았어요. (황정민에게) 창작해 인물을 바꿀 것이기 때문에 인물을 똑같이 따라하거나, 흉내 내거나 그런 건 전혀 할 필요 없다고 했죠. 이 영화는 당신이 맡은 역할로 인해 출발하는 거라고. 다만 대머리가 되어서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야한다고 했어요. 정민 씨도 한 외국 배우를 얘기하며 완전히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그 모습으로 나타나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가발과 의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달라 했어요. 가발만 해도 1번부터 5번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들어진 거예요.”

정우성, 황정민 뿐만 아니라 안내상의 출연도 눈길을 끈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권이었던 안내상은 극중 신군부의 수뇌 중 한 명인 황영시 역으로 출연한다.

“그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어요. ‘나의 나라’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잘할 줄 몰랐어요. 그 캐릭터가 비열하면서도 정치의 끝단에 있는 복잡 미묘한, 뱀 같기도 한 그런 캐릭터인데 연기를 너무 잘하셨어요. 제안을 드릴 때 ‘작은 역할이고, 지방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괜찮으시냐’ 물었더니 ‘이런 영화는 제가 해야죠’ 하시더라고요.”



정해인, 이준혁의 특별출연도 반가움을 더한다. 정해인은 특전사령관의 곁을 지키는 특전사 오진호 소령으로 분하며 이준혁은 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의 경호원으로 등장한다.

“‘D.P.’를 너무 좋아해요.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진 것에 놀랐어요. 한준희 감독님과 아는 사이인데 너무 좋다고 말씀드리며 ‘이 역할을 해인 씨에게 맡기면 할까요?’ 했더니 한 감독님이 조금 도와주시기도 했죠. 이준혁 씨는 주변에서 다 좋은 이야기만 했어요. 괜찮은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죠. 작은 역할이라도 하겠다고 하셔서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경호원 역할을 늘렸어요. 그런데 편집 과정에서 러닝타임 문제로 덜어내게 됐는데 준혁 씨는 전혀 상관없다고, 영화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그의 진심이 느껴져 너무 고마웠어요.”

‘서울의 봄’은 우리나라의 운명을 바꾼 그 날, 반드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김질 시킨다. 김성수 감독은 “12월 12일 그날 밤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판단의 순간, 결정을 보며 생생하게 느꼈으면 한다”라고 바랐다.

“신군부 세력이 자기네 사리사욕을 위해 벌인 일을 진압군이 명분과 논리로 막을 수 있었지만 못 막았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못 막은 과정에 핵심기제가 있었는데 탐욕과 명분의 싸움이었죠. 탐욕은 더 많은 욕심을 불러오고, 욕심이 더 많은 사람들의 싸움이잖아요.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소수의 몇 사람만 자리를 지켰다고 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처구니없이 쉽게, 우리나라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해석한 게 실제와 다르지만 내 해석이 맞지 않을까 싶었죠. 신군부 사람들은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천수(天壽)’를 누리고 돌아가셨잖아요. 재판장에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을 받을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내부 고발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제대로 떡고물을 나눠 먹은 거죠. (신군부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 내부에서도 서로 의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설득하는 욕망 게임 같은 과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상상하는 걸 보여주고, 관객들도 ‘저랬을지 몰라’라고 설득시키고 싶었어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늑대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역사에서 벌어진, 앞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결정적인 사건에서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모여 판단과 결정을 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대단한 지혜와 역량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 순간적으로 느끼는 욕망, 본능으로 인해 즉흥적으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제 생각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