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 “‘명량’·‘한산’·‘노량’ 3부작, 천행이었다” [인터뷰]
입력 2023. 12.23. 09:00:00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10년이 이렇게 지났구나 생각이 드네요. 이순신 장군의 말을 빌리자면 ‘천행(天幸)이었다’. ‘명량’ 때는 세월호 참사, ‘한산’과 ‘노량’은 코로나 시국을 거쳤어요. ‘명량’ 때는 개봉을 못할 뻔했고, ‘한산’과 ‘노량’은 촬영을 못할 뻔 했죠. 만들어야 할 작품을 운이 좋아 만들게 됐고, 보여드려야 할 작품을 보여드리게 되어서 감격스러워요. 3부작을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고, 보여드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뿌듯해요.”

김한민 감독이 10년에 걸친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의 항해를 끝마쳤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웅 이순신과 세계 해전 역사상 손꼽히는 전투를 스크린에 옮긴다는 실현 가능과 불가능 사이,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시작으로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시리즈로 완성해냈다. 10년 여정을 끝마친 소회도 남다를 터.

“‘명량’에 힘입어 속편을 만드는 게 아닌, ‘한산’과 ‘노량’이 왜 만들어져야하고, 존재해야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있어 다행이었어요. 그래서 ‘노량’은 더 각별했죠. 장군님의 마지막 대사, 한 마디를 감히 주제넘게 덧붙일 수 있었어요. ‘싸움이 더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마라’라고 하시잖아요. 기어이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하고, 장군님의 온전한 대사 한 마디를 전체적인 언행 속에서 창조하고, 추출‧요약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아요. 감히 그렇게 해도 이순신 장군이 저를 그렇게 나무라할 것 같지 않아 거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죠. 그게 있었기 때문에 해전이 설계가 됐고,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노량: 죽음의 바다’는 1598년 노량 해협의 겨울 바다에서 살아서 돌아가려는 왜와 전쟁을 완전히 끝내려는 조선의 난전과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담아냈다. 기나긴 전쟁 속에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수많은 동료들을 잃고도 백성과 나라를 지켜야만 했던 장군 이순신의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왜 이순신 장군이 적들이 돌아가겠다고 다 끝난 전쟁에서 고독하게 이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려 했는지, 집요하게 하려 했는지가 중요한 화두였어요.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 완전한 항복과 종결에 대한 것들의 생각에 이르렀을 때 전율이 있었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 전쟁에 ‘노량’ 작품이 나오는 게 큰 의미가 있어요.”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통해 한산해전에서 ‘지장(智將: 지혜로운 장수)’, 명량해전에서 ‘용장(勇將: 용맹한 장수)’, 노량해전에서 ‘현장(賢將: 현명한 장수)’의 이순신을 그리고 싶었다고. ‘명량’에서는 최민식, ‘한산’에서는 박해일, 그리고 ‘노량’에서는 김윤석이 각각 이순신 장군 역을 연기했다.

“‘명량’에서는 용장의 이순신, ‘한산’에서는 지장의 모습. 치열한 전략전술이자 젊은 모습의 이순신으로서 박해일 배우를 캐스팅했어요. ‘노량’에서는 현장의 모습으로 지혜롭고, 해안을 가진 이순신의 모습을 김윤석 배우가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김윤석이라는 배우가 굉장히 희귀한 존재였어요.”

하나의 시리즈, 세 명의 캐스팅이라는 획기적인 기획으로 완성해낸 이순신 3부작. 김한민 감독은 처음부터 각기 다른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생각했던 것일까.

“두 생각이 양존했어요. 최민식 배우가 ‘명량’을 찍고 나서 ‘한 편이면 됐지, 나는 에너지를 다 쏟은 것 같아’라고 하시면서 해전에 맞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인공 이순신을 중심으로 라인업도 달라져요. ‘한산’에서 박해일이 이순신을 하게 됐을 때 적장부터 주변 장수들을 다르게 했죠. 캐릭터의 조합이라고 할까. 밸런스를 찾아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특이한 점은 왜, 명나라 등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국배우들로 캐스팅됐다는 것. 그 이유에 대해 김한민 감독은 “몰입이 안 되더라”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배우가 맞는 것 같더라고요. 몰입이 되고, 적장이지만 카리스마 있게 표현될 것 같았어요. ‘명량’에서 류승룡 배우 때는 본능적으로 기용했던 건데 이순신 3부작에서는 거기에 대한 판단이 확실히 있었어요.”



이순신 장군은 완전한 항복 없이는 후대가 다시 고통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며 종전을 원했다.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백성을 생각하고, 나라를 향한 의에 충실했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노량: 죽음의 바다’을 통해 담담한 시선으로,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역사가 스포’인 결말이기에 이를 표현하기 위한 고민도 깊었을 터.

“모두가 아는 역사이자 결말이잖아요. 이순신 장군의 죽음 장면을 찍지 말까 고민도 했어요. 잘 찍어도 밑진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찍기로 한 후 어디에 배치해야할까 고민했어요. 왜 안 찍을 수 없었냐면 거기에 장군님의 진정성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 장면을 안 찍는다?’ 그럼 저는 이 영화를 굉장히 허무하게, 100분의 해전만 보여준다 한들 올바른 결말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죠.”

‘노량: 죽음의 바다’를 관통하는 북소리는 마지막 전투에 임하는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결단을 그대로 투영한 듯 존재감 있게 등장한다. 장엄한 북소리는 최후의 전투만이 선사할 수 있는 울림과 감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장군의 대의가 결국 그 북소리에 총합되어 있고,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히데요시가 북소리를 듣고 고통스러워하잖아요. 마지막에 시마즈가 귀를 틀어막고, 토하면서 괴로워해요. 그 북소리는 장군의 뜻이고, 전쟁을 끝까지 수행해 중요한 상징성으로 북과 북소리가 가진 거죠. 고통 받고, 몸부림치고, 괴로워하고, 동요해서 심기일전 싸우게 되는 건 북소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이름 모를 왜군 병사로 시작해 명라나, 조선군, 이순신으로 이어지는 ‘롱테이크’ 신은 해상전의 백미로 손꼽힌다. 해당 장면은 원테이크 신으로 치열했던 전쟁 당시,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이끈다.

“이순신 장군이 그렇게 치열하게 마지막 전투에 임했던 지점을 치열하게 보여줬으면 했어요. 전쟁 설계에서 중요했죠. 실제로도 역사적 사실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고, 가장 많은 배가 부서졌어요. 아침까지 이어진 전쟁에 가장 많은 장수들이 죽었죠. 이순신 장군을 포함해서요. 그렇기에 커질 수밖에 없고, 길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 전투를 따라가게 하는 이해도다 명징성이 뚜렷해야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그 전쟁에 고독하게 서있었으면 했어요. 하나의 원테이크로 따라가자 싶더라고요. 이름 없는 명나라 병사로 시작해 그 끝에 이순신이 있게 하자고 설계했어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조선, 왜, 명나라까지 합류해 총 1000여 척이 싸운 역사적 해전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됐다. 임진왜란 7년간 전쟁 중 유일한 야간전이었던 현장의 치열함과 전술을 생생하게 구현하기 위해 촬영, 조명팀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어둠과 암흑 속에서 펼쳐지는 해전을 관객들이 어떻게 잘 따라가면서 피로하지 않게 보일 것인가 중요했어요. 반응을 봤을 때 ‘어두워서 못 봐주겠어요’라는 평에도 ‘영화관 상영관을 의심하라’라는 댓글이 달려있어 다행이었죠. (웃음) 3분의 2가 야간이고, 3분의 1이 낮에 벌어진 전쟁이에요. 그걸 위해 강원도 세트장에서 기둥이 없는 곳을 찾아 찍었고, 조명이나 이런 것들을 전체적으로 한국영화 최초로 LED 조명으로 밝혀 찍었죠. CG 쪽에서 도움을 받아야하는 것도 있었어요. CG 회사가 가장 많이 참여한 게 ‘노량’일 거예요. 25개 업체에서 800명 이상 참여한 영화죠. 할리우드 영화 같다고 하시던데 굉장한 시도였어요.”

임진왜란 7년간 수많은 전투 중 가장 성과 있는 승리를 거두며 전쟁의 종전을 알린 노량해전은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의 천성은 진한 감동을 더한다. 김한민 감독은 노량해전이 그 어떤 전투보다 벅찬 승리의 전투였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노량’은 이순신 정신을 리마인딩 해요. ‘명량’ 같은 경우, 모두가 두려움에 빠진 상태에서 용기로 전환하는데 중심에 이순신이 있었고, 그런 정신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봤죠. 집단적인 두려움에 빠진 상태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 그걸 용기로 바꾸는 건 대단한 거예요. 우리나라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필요한 정신이라 생각하죠. ‘한산’은 전체적으로 수세에 빠졌을 때 공세로 바꾸는 게 쉽지 않아요. 지휘하고, 수행하는 게 평소에 준비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고, 거짓됨 없이 정직하게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면 승세를 잡아낼 수 없죠. 그 정신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하죠. ‘노량’은 결국 어떤 부당한 침략을 통한 올바른 전쟁의 종결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리마인딩할 필요가 있어요. 전쟁이 종결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불행한 사례들이 이어지기에 이순신 장군의 정신, 대의는 ‘노량’을 보면서 리마인딩할 필요가 있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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