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풍’, 황혼을 향해 내딛는 걸음 [씨네리뷰]
- 입력 2024. 01.31. 09: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한 편의 시가 우정이 되고, 우정은 삶의 마침표가 된다. ‘삶’이라는 것, ‘죽음’이라는 것. 각자가 던지는 삶의 마침표에 대한 고민이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에 들어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배우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을 통해 보여준다.
'소풍'
어린 시절,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온 은심(나문희)은 오랜 친구이자 사돈 지간인 금순(김영옥)하고만 연을 이어왔다. 금순은 나물 캐다 시장에 갖다 팔며 자식들을 키운 억척스러운 섬마을 할매지만 음식 솜씨는 기막히고, 달력 뒷장에 친구를 그리워하며 시 쓰기를 좋아하는 천상 소녀감성의 소유자다.
태호는 남해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며 고향을 지키는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인물. 어린 시절부터 짝사랑하던 은심을 만나자, 마치 옛 시절로 돌아간 듯 추억이 떠오른다. 마을에 리조트가 들어선다는 것에 반대운동을 하던 것도, 자신에게 조금 문제가 있다는 것도 잠시 잊고 말이다.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는 은심, 금순, 태호 등 노년의 삶뿐만 아니라 존엄사, 죽음 등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며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더욱 ‘남의 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앞서 남편 故 유윤식 씨를 떠나보낸 나문희는 “우리 작품에서는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다. 촬영을 할 때만 해도 연명치료에 대한 상황이 달랐다”면서 “우리 영감의 경우에도 연명치료를 하는 게 싫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 그런 절차를 거치는 게 쉽지 않았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보건소에서 백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 그 병원도 입원 등 절차가 힘들었다. 그걸 못 한 사람은 갔다. 영화가 현실과 다른 것은 그게 변했다”라고 전했다.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와 주제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나문희는 “작품이 현실과 아주 가까워 큰 이슈가 되지 않을까. 감히 그런 생각을 해봤다”라고 덧붙였다.
깊이 있는 소재와 메시지지만 나문희, 김영옥은 마치 10대로 돌아간 듯한 얼굴로 찰떡 호흡을 자랑한다. 실제로도 절친이라는 두 사람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연기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든다.
여기에 박근형도 우정에 힘을 보탠다.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났지만 어린 시절 우정을 여전히 간직한 이들의 모습은 뭉클함을 자아낸다. 더 나아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이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상의 소중함까지 깨닫게 만든다.
또 영화는 가수 임영웅의 자작곡 ‘모래 알갱이’와 나태주 시인의 시가 삽입돼 감동을 더한다. 특히 엔딩에 등장하는 ‘모래 알갱이’는 짙은 여운을 남긴다.
‘소풍’은 2월 7일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된다. 같은 날 개봉하는 윤여정 주연의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 조진웅‧김희애가 출연하는 ‘데드맨’(감독 하준원), ‘킹스맨’ 매튜 본 감독의 신작 ‘아가일’과 맞붙기에 관객들의 발걸음을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러닝타임은 113분. 12세이상관람가.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