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적 60분' 홍콩 ELS 대규모 손실 사태…KPI 시스템의 희생양[Ce:스포]
- 입력 2024. 02.02. 22:00:0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사라진 6조 원의 행방은 대체 어디일까.
'추적 60분'4
2일 오후 KBS1 '추적 60분'에서는 '홍콩 ELS 대규모 손실 사태, 5조 원의 청구서' 편이 방송된다.
“천...오백...사십칠만 원” 강우택(가명, 79세) 씨는 은행 창구에 앉아 은행원의 말을 따라 말하며 통장에 받아 적었다. 원금 3천만 원을 넣었던 통장엔 절반 가까이 줄은 액수가 적혔다. 강 씨는 3년 전 노후 자금 1억 3천만 원을 ELS(주가연계증권) 상품 4개에 가입했다. 그중 한 상품이 지난달 8일 처음으로 만기됐다. 다른 상품 3개도 만기가 다가오지만, 강 씨는 이번처럼 절반의 원금이라도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큰 폭으로 하락한 홍콩H지수가 좀처럼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 씨가 가입한 상품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홍콩 ELS'. ELS는 우리나라의 코스피, 미국의 S&P500 등 주가지수의 추이에 따라 수익률이 연계되는 파생상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만기되는 홍콩 ELS 가입액만 15조 원이 넘는다. 지난달 26일까지 만기 된 홍콩 ELS의 평균 확정 손실률은 53%였는데, 이번 상반기에만 5~6조 원의 원금 손실이 예상된다. 대규모 손실 사태가 다가오는 가운데, '추적 60분'은 먼저 그 중심에 있는 홍콩 ELS 가입자들을 만났다.
제작진이 만난 가입자들은 “은행이니까 믿었다”고 입을 모았다. 홍콩 ELS의 상품 판매액 약 82%가 은행에서 판매됐다. 앞선 강 씨도 수년간 예금·적금 등 안정적인 상품으로 자금을 관리해 준 은행원의 “좋은 상품이 있다”는 말을 믿고 홍콩 ELS에 가입했다. 이현자(가명, 69세) 씨는 “은행 말 한마디, 창구 직원 말 한마디를 믿고 가입했다”며 “전 직원이 창구에서 백이면 백, '원금 손실 없다'고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이 씨의 홍콩 ELS 가입액은 7억여 원. 귀농하며 처분한 서울 집을 판 돈이었다. 제작진은 이른 새벽 강원도 횡성군에서 이 씨를 만나, 이 씨가 3년 전 상품을 가입한 서울의 지점을 찾아갔다. 3억 원이 넘는 돈을 잃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씨는 지점장에게 대책을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확정된 게 없다” 다른 지점에서 만난 본사 직원 또한 이 씨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양해를 부탁했다.
원칙적으로 ELS에 가입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ELS는 원금 전액을 손실할 수 있는 고위험 금융 투자 상품이기에 가입자에게 투자 성향 평가, 가입 과정 녹취, 사후 전화 확인 등이 요구된다. 하지만 가입자들은 가입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고 제작진에게 전했다. 이 씨는 “형광펜으로 칠해진 곳에만 서명하면 됐다”고 주장했다.
다른 가입자들도 유형은 다르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한 제보자의 '해피콜(사후 전화 확인)' 녹취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을 설명받았느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만, 가입에는 문제가 없었다. 원금 손실 가능성 등 상품의 주요 내용을 자필로 따라 적어야 하는 부분에서 가입자의 필체와 다른 필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글씨를 못 적는 70대, 눈과 귀가 어두운 80대, 치매 환자인 90대 등이 홍콩 ELS에 가입하게 된 경위다. 전문가들은 은행 측의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에 대해 홍콩 ELS를 판매한 5대 시중은행 측의 입장을 물었으나 전부 “공식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고 전해 왔다. 제작진은 전·현직 은행원을 만나 왜 이런 판매가 일어나게 된 건지,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은행들은 왜 이토록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려 했던 것일까. 전·현직 은행원들은 KPI(핵심 성과 지표)를 그 이유로 뽑는다. 전직 은행원 이연정 씨는 은행원에겐 “KPI가 성과 평가의 전부”라고 말했다. KPI에 따라 승진이나 부서 이동 등이 이루어지는데 그중 높은 배점을 차지하는 것이 고위험 상품의 판매 실적이다. 은행에서 9년 동안 근무한 서형진(가명) 씨에 따르면, 판매 실적으로 전국 순위가 매겨지는데 그 순위가 전 직원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한 현직 은행원은 “하루하루 실적 체크를 하는 영업점도 있다”며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실적 압박에 의해 (고위험 상품이) 이렇게 판매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더 다양한 구조의 금융 상품을 판매한다. '추적 60분'은 미국의 금융 전문가를 만나 ELS 같은 고위험 투자 상품을 가입하기 위한 절차를 물었다. 재무상담가 크리스토퍼 워거스 씨는 가입 이전에 “고객이 진짜 어떤 위험 성향의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며 고객 파악을 위한 상담에 꽤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설명했다. 이후 상품 가입 시에도 고객에게 설명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위험 가능성이라 강조했다.
홍콩 ELS 소식이 낯설지만은 않다. 키코, DLS・DLF, 라임・옵티머스 등 과거에도 대규모 손실 사태가 일어났던 탓이다. 은행으로부터 DLF 불완전 판매의 피해를 입었던 양정선(가명) 씨의 차에는 항상 피켓들이 실려 있었다. 금융감독원, 우리은행 본사 등 서울 곳곳에서 피해 구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기 위해서였다.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양 씨는 피켓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양 씨는 “지금 (사태에도) 딱 맞는 말이지 않냐”며 “금융 사고 반복은 실수가 아니다”란 피켓을 꺼내 들었다. 제작진은 양 씨와 함께, 피해 구제를 외치던 DLF 사태 피해자들을 만났다.
DLF 사태 이후 금융 당국은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 관리・감독 강화 등 대책을 마련했다. 은행 또한 반복을 막겠다며 자정 노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또다시 5조 원의 손실을 앞둔 지금. 반복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추적 60분'은 매주 금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