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그데이즈’ 윤여정, 또 윤며들다 [인터뷰]
- 입력 2024. 02.06. 10: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명불허전 솔직담백한 입담이다. 초로의 할머니가 하는 말이 아닌, 젊은이 이상의 신선하고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세대를 초월해 ‘윤며들게’ 만드는 배우 윤여정이다.
'도그데이즈' 윤여정 인터뷰
‘도그데이즈’는 성공한 건축가와 MZ 라이더, 싱글 남녀와 초보 엄빠까지 혼자여도 함께여도 외로운 이들이 특별한 단짝을 만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갓생 스토리를 그린 영화다. ‘그것만이 내 세상’ ‘영웅’ 조감독 출신 김덕민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도그데이즈’는 ‘대한민국 배우 최고의 기록’이란 영광을 안은 후 3년 만에 택한 한국영화 복귀작이다. 세계적인 배우가 됐기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저는 한때 ‘목소리’ 때문에 거부감 1위에 꼽혔던 배우에요. 너무 듣기 싫으니 나오지 말라는 말도 들었죠. 그러니 오래 살아야 해요. 이제 제 목소리가 좋다고 하는 게 신기한 세상이죠.”
‘아카데미 수상’에 대한 견해도 덧붙였다.
“세상이 변하는 게 쉽지 않아요. 조금씩 변해가는 건 고마운 일이죠. 장수시대가 됐잖아요. 오래 사니까 노인을 주제로 하는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아요. 상이라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라 생각해요. ‘봉준호’라는 사람이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린 거죠.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관심이 있었겠어요. 그 즈음에 모든 게 맞춰져야하는 ‘운’이라고 생각해요. 아시안 혐오, 팬데믹 등 여러 가지 맞아 떨어져 불가사의하게도 그 상을 받게 된 거라 생각하죠.”
1966년 TBC 공채 3기 탤런트 출신인 윤여정은 故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스크린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60년 가까이 걸어온 연기인생에서 아카데미 수상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어릴 때 ‘화녀’로 청룡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세상은 내 거구나, 나 정말 연기 잘하는 구나’ 싶었어요. 상이라는 게 주는 허망함과 아무 의미 없는 것임을 아는 나이에 (아카데미 상을) 받아 더 감사해요. 마치 ‘기쁜 사고’ 같은 일이라 생각하죠.”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한국인이 상을 받는 게 자연스러워진 현재. 할리우드에 도전하는 후배들을 향해 조언을 해 달라는 말에 윤여정은 남다른 유머 감각으로 진심을 전했다.
“저는 조언을 못하는 사람이에요. 조언은 공자님이나 하는 거죠. 성경에 나오는 좋은 말도 너무 많잖아요. 저는 할리우드에 대해 잘 몰라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라는 CF도 있잖아요. 내 것을 하다보면 세계적인 사람이 되어있겠지 싶어요. 그리고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겠어요? 안 되죠. 인생은 버티는 거예요. 제가 각광받기 시작한 건 2~3년 전밖에 안 돼요.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 그냥 내 것 열심히 하며 버티는 거죠.”
윤여정의 화법은 솔직하다 못해 직설적이다. ‘돌직구’를 던지지만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 품위를 지키는 그의 화법에 MZ세대들은 열광하고 있다. 솔직함의 비결은 무엇일까.
“정직한 것과 솔직한 것은 달라요. 경계선을 잘 타야 하죠. 품위 있게 늙으려고 고민도 했어요. 솔직함은 상대에게 무례할 수 있거든요. 또 저의 유머는 어렵고, 힘들게 살아와서 모든 걸 웃자고 생각하며 하게 된 거예요. 찰리 채플린이 한 명언 중 ‘모든 건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해요. 제가 농담하고 그러는 건 너무 힘들게 살아왔기에 즐겁자고 하는 거죠.”
올해로 일흔일곱, 배우 생활만 58년이다. 윤여정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언제일까.
“저의 첫 번째 화양연화는 아마도 데뷔작으로 청룡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순간이 아닐까요. ‘세상을 다 가졌구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카데미 수상은 저에게 행복한 사고 같은 거예요. 감사하지 않고, 명예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 거기에 매달려있으면 모든 일의 진행을 못할 것 같거든요. 두 번째 화양연화는 죽을 때쯤에야 생각날 것 같고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