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최민식, 장재현 감독 향한 믿음 [인터뷰]
입력 2024. 02.23. 18:00:00

'파묘' 최민식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2024년 사전 예매율 최고 기록을 세운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 배우 최민식은 “천지신명께서 도와주시나 싶다”라며 허허 웃음을 지었다. 이 기세를 몰아 영화는 개봉 첫날, 33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달성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는 ‘파묘’ 개봉 후 최민식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오컬트 장인’ 수식어를 얻은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자 데뷔 35년 만에 최민식의 오컬트 장르 첫 도전 작품으로 많은 관심을 모은 바. 그는 왜 이 작품에 출연을 결심했을까.

“장재현 감독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 땅에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트라우마를 뽑아내고, 약을 발라주고 싶다고. 그 정서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국뽕’으로 느껴지지 않았죠. 이런 생각과 표현은 저도 처음 들어 봤어요. 전작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에서 보여줬듯 신과 인간의 관계, 종교, 인간과 종교는 떼어 내려고 해도 뗄 수 없잖아요. 종교 외 영역을 확장하고, 표현하고, 건드린다는 게 자칫 잘못하면 위험하고 고루해질 수 있는데 이에 대해 굉장히 열려있는 감독이었어요. 그리고 만듦새가 ‘어떻게 이렇게 영화적으로 재미지지?’ 싶더라고요. 사실 그건 실력인데 그런 게 좋았어요. 전작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있으니까 대본을 보고, 친근함을 느꼈죠.”

최민식은 극중 조선 팔도 땅을 찾고, 땅을 파는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 역으로 분했다. “김고은이 다 했기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싶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자연과 땅에 대한 철학만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인물과 서사를 완성해낸 최민식이다.

“40년 땅 파먹고 살았던 분을 어떻게 메우겠어요. 책을 본다고 해서 그게 만들어질 리는 만무하죠. 그거 하나 표현하고 싶었던 건 이 사람은 평생 자연을 바라보며 살았잖아요. 인간의 길흉화복을 터의 모양새, 형태, 질감을 평생 연구한 사람이라 산에 올라가더라도 일반 등산객처럼 산을 바라보지 않겠구나, 뭔가 깊이 바라보겠구나 싶었어요. 흙냄새, 맛도 보고, 나무, 풀 한포기를 보더라도 깊게 바라보는 태도가 김상덕의 큰 줄기가 되지 않을까 잡고 갔죠.”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들의 협업은 과학과 미신 사이 미묘한 줄타기를 보여주며 재미를 더한다. 일명 ‘파벤져스’로 불리는 이들의 팀플레이는 긴장감과 함께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체험을 선사하기도. 최민식은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다가도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과 함께하는 장면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연기로 중심을 잡는다.

“저희는 경쟁하는 직업이 아니에요. 저는 이번에 벽돌이 되어야 했죠. 건축으로 치면 색깔이 일정한, 연출가의 색깔에 맞춰야했어요. 제가 튀어나오거나 색깔이 튀면 안 됐죠. 이번 ‘파묘’는 고은이의 퍼포먼스가 돋보여야 했어요. 누가 더 돋보이는가는 정교한 연출에서 나오는 것이죠. 배우 혼자 돋보이면 안 돼요. 전체를 흩트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해야 했어요. 경쟁하는 게 아니고요.”

1989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데뷔한 최민식은 이후 영화 ‘쉬리’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명량’ 등 작품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실감 나게 연기하며 몰입을 더했다. 매 작품 리얼한 연기로 현실감을 더한 그의 연기 진가는 ‘파묘’에서도 빛난다.

“허구의 삶, 허구의 인간을 현실에 있을 법하게 그리는 일이 제 일이에요. 장 감독님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김상덕은 이런 인물이라고 얘기하면서 골백번 생각하고, 결국 카메라 앞에 섰을 땐 그 인물이 되어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이게 배우의 가장 외로운 순간이기도 해요. 그 누구도 제 작업에 개입이 안 되니까요. 디렉션은 줄 수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저 혼자 감당해야 하죠. 가장 외로운 순간이에요. 절벽에 떠밀려 서있는 느낌이랄까. 많은 대화를 하고, 마인드 컨트롤과 상상도 하고, 외형적, 내면적인 조건을 구분해서 여러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을 내가 만든 어떤 무형의 인물에 자꾸 다가가야 했어요. 그리고 밀착되어야 했죠. 밀착된 상태에서 나가야 하니까요.”



풍수사 상덕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장재현 감독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장재현 감독은) 배울 점이 많은 친구에요. 이제 상업영화 세 편째인데 카펫처럼 촘촘하게 구멍 없이 만들죠.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하고, 빌드업 하는 과정이 여간 쉽지 않거든요. 사람이 하는 일이라 지치기도 하는데 그런 걸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흙 색깔까지 체크하더라고요. 저는 ‘흙이 다 거기서 거기지, 콩가루나 과자 좀 더 넣어 봐’라고 했는데 (감독님은) ‘그 흙 색깔이 아니에요’라고 하더라고요. 힘들면 그냥 하자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는데 감독님은 그게 아니었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도깨비불도 CG가 아닌 진짜에요. 진짜 불을 만들기에 ‘과학 기술은 액세서리냐? 왜 그런 고생을 해서 만들어’라고 했는데도 만들더라고요. 그런 모습에 믿음이 갔어요.”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과 닮은 점이 있다면 배우 활동만 42년, 한 길만 걸어왔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연기 인생을 되돌아보면 어떤 마음이냐는 질문에 최민식은 “되돌아봐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며 답보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얼마 전,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어요. 그분들도 하시는데 저는 아직 핏덩이에요. (경력이) 35년이다, 뭐다라고 하는데 누가 그걸 세고 앉아있나요. 제가 세어서도 안 되고요. 그건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이죠. 저는 앞으로도 할 게 많아요.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작업도 많거든요. 의욕도 더 생기고, 노인네 흉내를 내고 싶지 않아요. ‘내가 왕년에 이랬지’ 이런 건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배우뿐만 아니라 창작을 하는 사람, 미술, 음악 등 분야에서 한 획을 긋고,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존경받는 분들을 보면 절대 그런 분들이 없어요. 미친 듯이 하죠. 몸이 말을 안 들어도요.”

최민식의 연기 열정은 아직 뜨겁다. 아직 해보지 못한 장르, 캐릭터에 욕심도 드러낸 그다.

“제가 만져보지 못한 세상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유명한 작품을 했다고 해서 이 세상을 다 아는 건 아니잖아요. 제 인생, 작품은 한정되어 있어요. 앞으로 제가 겪어봐야할 영화적 세상, 여태까지 한 작품은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죠. 못해보고 죽는 건 얼마나 아쉬운 일이에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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