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현 감독 “이장 15번 따라다녀, 토치로 화장 본 후 ‘파묘’ 생각” [인터뷰]
입력 2024. 02.28. 15:26:14

'파묘' 장재현 감독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우리들, 우리나라 땅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파묘’하고 싶었어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파묘’는 장재현 감독이 어렸을 적, 100년이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본 기억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래된 나무관에서 느꼈던 두려움, 궁금함, 호기심 등 복합적인 감정들을 작품에 담고 싶었던 장 감독은 파묘라는 신선한 소재에 동양 무속신앙을 가미해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장을 15번 정도 따라다녔어요. 소재에 접근할 때 표피를 보기보다, ‘코어’를 보려고 해요. 어느 날 아침, 급하게 장의사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30만 원을 줄 테니 따라 오라더라고요. 비가 오는데 진안까지 갔고, ‘돈은 괜찮으니 도와드리겠다’라고 했어요. 묘를 파는데 수로공사 때문에 관에 물이 들어갔어요. 관을 열고, 장의사님이 토치로 급하게 화장을 하셨고, 그 자리에서 다 태웠죠. ‘파묘’라는 과거를 들추어서 잘못된 걸 꺼내 없앤다는 코어, 정서가 그날 딱 왔어요. 우리들, 우리나라 땅을 돌이켜보면 엄청난 피해를 입었잖아요.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는데 파묘를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제 발바닥에 있는 티눈을 꺼내고, 또 나지 않게 레이저로 지지는 느낌이었죠.”



◆‘파묘’의 시작, 새로운 K오컬트 탄생

장재현 감독은 모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굿, 무당 등 무속신앙에 관심을 두고 ‘파묘’의 이야기 줄기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성격이) 생각보다 밝아요. 기본적으로 말도 많고요. 제가 밝은 성격이니까 반대로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하고, 동경했죠. 저는 어두운 세계관에 날라리 같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걸 좋아해요. 밝은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죠. 스무 살 넘어 사회에 나와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랑, 의리, 정을 얘기하는 건 교회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사회에 가는 순간, 그런 건 절대 이야기하지 않더라고요. 교회, 성당, 절 등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얘기하는 게 점점 사라져가고, 그것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어요. 저는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거라 생각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전작과 또 다른 결의 이야기다. 2015년 김윤석, 강동원이 출연한 ‘검은 사제들’은 천주교 구마 의식을 다뤘으며 2019년 이정재 주연의 ‘사바하’는 개신교, 불교 세계를 그렸다. ‘파묘’는 한국적이고 민속적인 것들을 담은 직관적인 영화로 새로운 오컬트 세계관을 연다.

“저는 영화를 봤을 때 감정이 중요해요. ‘검은 사제들’은 인간의 희망적인 이야기, 희생이 모든 걸 이길 수 있다는 걸 담고 있죠. ‘사바하’는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신은 존재하는 것 같긴 한데 인간은 왜 죽어 나가야하는지. 이번 영화는 개운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 ‘파묘’라는 소재를 잡았을 땐 음흉한 공포영화를 만들려고 했죠. 그렇게 만들려면 주인공은 박지용(김재철)이어야 해요. 공포영화의 99%는 대부분 피해자거든요. ‘검은 사제들’도 공포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면 영신(박소담)이 주인공이었을 거예요. ‘사바하’ 또한 금화(이재인)였을 거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는 공포영화를 즐겨보지 않아요.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할 뿐. ‘파묘’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거예요. 그때 극장에 튼 영화가 유럽의 웃긴 영화들이었고, 이 영화는 화끈하게 가야겠다 싶었어요. 사람들이 극장에서 익사이팅하게 해야겠다 싶어 주인공들도 다 바뀌었죠. 어떻게 보면 제가 해왔던 방법을 다시 선택한 거예요. 전문가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공포영화로 접근하기보다 긴장감을 주고, 신비롭게 보여주고 싶었죠. 뒤에 나오는 것들도 무섭게 보여주기보다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음양오행과 험한 것, 그리고 쇠말뚝

영화는 ‘음양오행’ ‘이름 없는 묘’ ‘혼령’ ‘동티’ ‘도깨비불’ ‘쇠말뚝’ 총 6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극 초반과 말미에는 상덕(최민식)과 화림(김고은)의 상세한 내레이션이 더해져 이해를 돕는다.

“시나리오 때도 막을 나눴다가 없앴다가 했어요. 시나리오 땐 안 나눴는데 영화를 편집하고 나니 사람들에게 복선으로 먼저 던져주는 게 좋겠더라고요. 약간 준비를 시켜주는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텍스트를 넣었어요. 그리고 앞에 내레이션은 뒤의 내레이션 때문에 넣었죠. 저희 영화에는 액션이 없어요. 감정적으로, 내레이션으로 풀어줘야 하는데 앞에 내레이션이 깔리면 뒤에 나와도 관객들이 받아들이거든요. 첫 챕터가 ‘음양오행’인데 세계관을 잡아줄 겸 뒤를 위해 앞이 필요했어요. 다소 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넣는 게 이득이 컸죠.”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서 시작된 파묘, 그리고 그곳에서 ‘험한 것’의 등장 이후 극 분위기는 반전된다. 마치 1부와 2부로 나뉜듯한 느낌을 주기도. 일각에서는 조상귀신, 일본 귀신의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가 ‘무속신앙계의 한일전’ 같다는 감상평도 나온다.

“저는 일본 영화를 좋아하고, 라쿠텐에서 쇼핑도 자주 해요. 하하. 일본에 포커스를 두기보다 우리 땅에 포커스를 맞췄죠. 우리나라, 우리가 가진 무의식적 정서에 공포감, 트라우마, 구세대와 신세대가 힘을 합쳐 뽑아낸 거에 집중했어요. 잠시 한 명(험한 것)을 모셔오긴 했지만. 그래서 그 존재를 괴기하게 보여주기보다 대사와 이미지로 은유하고 싶었어요. 옆 나라에 감정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죠. 1부, 2부가 나뉘는 건 이 이야기의 허리를 끊어버리고 싶었어요.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고 하는데 앞에 이야기와 꽤 연관이 있어요. 이야기 구조가 똑같아 이야기의 허리를 끊고 싶었죠. 이 영화는 주제와 잘 어울리고, 연막 구조와도 잘 어울려요. 중간에 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죠.”

초반,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다 후반에는 ‘쇠말뚝’이 등장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백두대간의 정기를 끊고자 쇠말뚝을 산간벽지 이곳저곳에 꽂아뒀다는 설이다.

“쇠말뚝이 중요하지만 저는 그게 생각나지 않도록 찍으려고 노력했어요. 쇠말뚝이 중요했으면 정확하게 보여줬을 거예요. 저는 그에 대한 확신이 없었거든요. 풍수지리에도 ‘파’가 있어요. 의견이 분분하죠. 저도 확신할 수 없었어요. 기운을 느끼고 싶어 육체화 시킨 것이죠. 영화가 끝나고도 잘 보여주지 않아요. 노력한 인물들을 마지막에 보여주지만 잘 보여주지 않고 마무리하려 한 거죠.”



◆숨은 의미, 떡밥 해석, 열연으로 이어진 호평

이처럼 영화는 개봉 이후 곳곳에 던져 놓은 떡밥, 숨은 의미 등에 대한 해석 욕구를 자극하며 입소문과 함께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화림이 일본어로 대사를 시작하는 점, 상덕이 파묘 후 백 원짜리 동전을 던지는 장면, 상덕, 영근(유해진), 화림, 봉길(이도현)이 과거 독립운동가의 이름에서 가져왔다는 점 등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화림은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캐릭터야 했어요. 뒤에 갑자기 일본말을 하면 관객들이 ‘왜 갑자기 일본어를 해?’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초반 일어 장면은) 캐릭터가 일본말을 할 줄 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한 신이었죠. 그리고 상덕이 백 원 동전을 던지는 장면은 시사회 때 그런 말이 나와 알게 됐어요. 저는 최민식 선배가 대변하는 이미지를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실제 풍수사들은 묘를 꺼낸 후 돈을 던져요. 보통 십 원짜리를 주는데 그날은 백 원짜리를 꺼내 던진 거예요. 스태프들도 ‘너무 이순신을 상징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는데 저는 그때 그러려니 했어요. 얻어걸린 거죠. 일본 스님 기순애는 ‘키츠네(きつね)’에서 따온 거예요. 옛분들이 키츠네 발음이 안 되어서 기순애라고 불렀다 하더라고요. 독립운동가 이름을 썼냐는 질문에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웃음)”

화림의 대살굿, 혼 부르기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봉길을 두고 하는 도깨비 놀이 또한 흥미를 더한다.

“대살굿이 존재는 해요. 저는 항상 굿 장면을 찍어왔는데 요즘은 비주얼로만 보이고 소비되는 게 있더라고요. 저는 굿의 목적이 보이는 게 좋았어요. 영화에서 굿이 세 번 나오는데 먼저 대살굿은 일꾼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자기가 신을 받아요. 칼로 몸을 그어 확인하죠. 그리고 불에 손을 넣어 확인해요. 그러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피를 줘요. 신을 부르고, 확인하고, 영양분을 주는 게 정확한 목적이 있는 거죠. 두 번째 혼 부르기는 돌아치는 혼을 부르는 구슬픈 굿이에요. 마지막에 나오는 무당 세 명과 봉길이가 하는 건 ‘도깨비 놀이’에요. 숨어있는 귀신을 살짝 깨워 정보를 취득하는 거죠.”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땅을 찾는 풍수사, 원혼을 달래는 무당, 예를 갖추는 장의사, 경문을 외는 무당까지.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의 팀플레이는 긴장감과 더불어 장르적 재미를 끌어올린다. 장재현 감독은 배우들의 열연에 감탄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유해진 선배님은 연기 장인이에요. 과하지 않게, 적당하게 대한민국에서 연기를 제일 잘하는 것 같아요. 유해진 선배는 기술적으로 최고죠. 김고은의 진가는 후반부에 나온다고 생각해요. 굿 퍼포먼스 자체가 화려하지만 후반부, 두려우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연기는 베테랑 밖에 못 하거든요. 다른 정령과 대화를 나눌 때 시퀀스를 보면서 김고은은 세계적인 배우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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