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작' 박예영, 바다처럼 빛나는 배우 [인터뷰]
- 입력 2024. 03.06. 07:00:0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이 배우가 그 배우였어?"
박예영
'세작'에서 박예영을 마주한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매 작품마다 적절한 옷을 찾아 입는 박예영은 첫 사극인 '세작'에서도 또 한번의 이미지 변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극본 김선덕, 연출 조남국 / 이하 '세작')은 높은 자리에 있지만 마음은 비천한 임금 이인과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세작(첩자)이 된 여인의 잔혹한 운명을 그린 이야기다.
이어 "엄마 친구분께서 TV에서 나오는 제 모습을 보고 남편분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더라. '저거 예영인가, 아닌가'하면서 계속 긴가민가 하셨다고 했다"며 "초반에는 대사가 거의 없어서 목소리도 안 들리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다 보니 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박예영은 오디션을 통해 '세작'에 합류했다. 그는 "'세작' 이전의 모든 작품을 회사 없이 혼자 했었다. 그래서 '세작'도 앞선 작품들처럼 똑같이 미팅을 하고 오디션을 보고서 함께하게 됐다"고 전했다.
박예영은 이인(조정석)의 총애를 받는 지밀상궁 동상궁 역을 맡았다. 아무도 모르는 이인의 치명적인 비밀을 알고 있는 혼자만 알고 있는 증인이자 그를 오랫동안 연모해온 캐릭터다. 작가와 함께 고민해 정한 동상궁의 키워드는 '순애보'였다.
"방향이 너무 많아서 가지를 어느 쪽으로 뻗어야 될까 고민했었다. 그래서 테스트 촬영 때 작가님을 만나 뵀을 때 한 번만 시간을 좀 내달라고 부탁드려서 구석에서 동상궁의 키워드를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순애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뒤로 갈수록 대본이나 드라마를 보면 순애보라는 게 잘 보이고 이해되는데, 초반에는 '순애보라서 이런 결정을 하나?' 싶은 부분이 있어 어려웠다. 쭉 가다 보니 정말로 이인에 대한 사랑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동상궁은 극 초반 대사가 많지 않았다. 박예영은 대사량이 적은 만큼 표정에 더욱 신경 써서 연기했다. 그는 "아무래도 대사가 없을 땐 표정이나 호흡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그 장면들이 어떻게 표현이 돼야 할지 고민했다"며 "강약 조절 같은 부분들을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대사가 있었다면 덜 지었을 것 같은 표정을 더 지어보는 등 감독님하고 얘기를 해가면서 맞춰갔던 것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동상궁이 지밀상궁이라는 큰 틀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박예영은 "사실 동상궁 자체가 기존의 지밀상궁과는 큰 차이가 있다"며 "지밀상궁이지만 이인의 약점을 쥐고 대들기도 하고, 그 시대라면 절대 못할 것 같은 대사를 주고 받을 때도 많았다. 결국 고증이 무너지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인과 둘만 있을 때가 아닌, 다른 인물과 함께 3명 이상 함께 있을 때의 행동을 조심했다. 다른 인물과 있을 땐 이인에 제대로 왕 대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출부의 도움을 받아 고증에 신경 썼다"고 덧붙였다.
극 초반에는 동상궁의 행동에 확신이 들지 않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에 권력욕인지, 이인을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보여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동상궁의 권력욕은 0에 가까웠고, 중간에 오히려 몽우가 등장하면서 눈이 뒤집어졌던 것 같다. 나만 옆에 있을 수 있었고, 남에게는 폭군이었는데 왜 자꾸 저 사람을 옆에 두는지 신경 쓰였을 거다. 초반에는 몽우가 남자라고 알면서도 질투를 한다. 그래서 나중에 여자인걸 알게 됐을 땐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을 것이다. 이길 수 없는 단 하나의 무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아니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권력욕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냥 옆에 있고 싶은 마음이다."
이에 박예영은 동상궁이 이인에게 매혹된 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동상궁은 이인에게 너무 매혹이 돼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한다. 동상궁의 행동은 이인의 사랑을 곱씹다 보면 결국엔 다 이해된다고 생각한다. 선왕을 죽이고, 결국 나중에 대비에 대드는 것까지도 다 이인에 의해서 움직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예영에게 '세작'은 또 한번의 성장으로, 동상궁은 아픈 손가락으로 남게 됐다. 그는 "안 해봤던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작품이어서 정말 새롭고 신선한 순간이 많았다. 그런 것들이 저를 성장시켜줬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동상궁이 아픈 손가락이라 가슴이 아팠다. 이번에도 짝사랑이라 지금껏 맡았던 역할들과 비슷한 결이긴 하지만, 사극이라서 더 빌런처럼 그려질 수 있었다. 그래도 늘 다른 캐릭터들은 마지막쯤 정신을 차리는 느낌이라 아픈 손가락까지는 아니었는데, 동상궁은 조금 덜 아픈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 했다.
박예영은 2013년 영화 '월동준비'로 데뷔한 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구경이', '안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얼굴을 비쳐왔다.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로 시작했던 연기였지만, 매 작품마다 만들어지는 좋았던 순간들이 모여 그를 배우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결국 좋았던 순간들이 연기를 계속 하게 만들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어도 서로를 고마워할 줄 아는 그 시간들이 또 기대를 하게 만든다. 좋았던 시간들이 결국에는 훨씬 더 많고, 지나보면 제가 다 배웠던 시간이라서 연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또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갯마을 차차차' 속 왕작가, '안나'의 한지원, '세작'의 동상궁까지, 박예영은 매 작품마다 캐릭터를 실존하는 인물처럼 잘 소화해냈다. 이에 전작을 보고서 '같은 배우였어?'하는 반응도 심심찮게 들린다고.
"예전에는 영화제에 다른 영화 2개로 참석을 해도 같은 배우인지 모를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은 제가 출연한 작품을 제게 추천해 주신 적도 있었다. 그래서 제가 나온 거라고 했더니, 머리 스타일도 화장법도 다르니까 그제야 알아채더라. 처음에는 이게 장점이라고 못 느꼈고, 내가 특징 없이 연기를 하는 건가 싶었다. 누군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된 것 같다."
박예영은 '바다 같은 배우'를 꿈꾼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게, 누군가에게는 차갑게 느껴지는, 때로는 잔잔하면서도 거친 바다처럼, 그는 다양한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배우가 되기를 원한다.
"예전에 부산 영화제에서도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즉흥적으로 '바다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어린 마음에 말했거든요. 바다는 겉으로 보면 잔잔할 때도 있고, 가끔씩 파도가 칠 때도 있죠. 그렇지만 그 안에 있는 게 정말 다양하고, 그 끝을 알 수 없게끔 보이고 싶어요. 정말 어렵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목표로 삼아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씨제스스튜디오, 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