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승룡 "'닭강정'=극호, 이런 장르 더 확장됐으면"[인터뷰]
- 입력 2024. 04.01. 15:16:36
-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닭(鷄) 전문 배우요? 찾아보니까 한계(韓鷄) 홍보대사는 아직 없더라고요. 제가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웃음)."
류승룡
닭(鷄)전문 배우. 유일무이한 수식어다. 영화 '극한직업',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닭강정'까지. 배우 류승룡이 연이은 작품에서 '닭(鷄)'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이번에는 제목부터 '닭강정'이다.
"처음에 이병헌 감독에게 '닭강정'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농담하는 줄 알았다. 작품 뭐 준비하냐고 물으니까 '딸이 닭강정으로 변했는데 그 딸을 구하는 아버지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 진짜 말도 안 되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냥 해프닝으로 지나갔는데, 진짜 정식으로 회사로 대본이 왔다. 그제서야 원작 웹툰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웹툰과 시나리오를 보고 이 작품이 영상화, 드라마화된다면 어떨까 기대가 컸다. 설렘과 기대를 안고 대본을 봤고 쭉 봤다. 설정 자체가 정말 재밌었다. 그리고 그걸 풀어가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저는 '극호'였다."
'닭강정'은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다. 독특한 소재와 'B급 유머코드'에 대한 신선함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있는가 하면, 공감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많았다.
"취향이 예상대로 많이 나뉘는구나 싶더라. 우리 작품은 취향을 타는 작품이다. 체감하고 있다. (우리 작품의 진입 장벽이 높아 보는 걸 망설일 수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저 역시 이병헌 감독님이 처음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잉?'이라고 생각했었다. 더군다나 초반부에는 연극톤으로 나오지 않나. 리얼리티랑 너무 동떨어지니까 '이게 뭐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딸이 닭강정으로 변한다'는 로그라인은 어쩌면 이 작품의 이해를 돕는 에피타이저 같은 설정이다. 이 부분을 초반에 다 보여줘야 무리 없이 이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뒤에도 엄청난 설정들이 많지 않나. (이 작품이) '극호'인 분들을 보면 한 번에 보시는 분들이 많더라. 물론 취향에 따라 아쉬운 부분도 있겠지만 '보물찾기'하는 재미가 있다. (허들을 잘 넘어서) 재진입한다면 가속이 붙어서 끝까지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미디 장인' 류승룡에게도 '닭강정'은 낯선 세계였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K-코미디물'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봤다고도 했다.
"이런 장르의 작품이 제 필모그래피에 마지막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이 작품을 기반으로 이런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커지고, 더 확장되기를 바란다. 처음에는 다 생경하지 않나. 나중에는 웹툰 '감자마을' 같은 작품도 영상화되는 날이 오지 않겠나(웃음)."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다'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류승룡이 '닭강정'을 선택한 이유는 '극한직업'을 함께한 이병헌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저는 이병헌 감독님을 '나른한 천재'라고 부른다. '극한직업' 때는 사실 당황했었다. '말맛' 좋은 코미디물을 만드는 감독님인데 말수도 없고 정말 조용하더라. 처음 보시는 분들이라면 놀랄 수도 있다. 평상시에는 생각에 꽉 차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생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솔루션을 툭툭 주고 간다. 이번 작품 때도 그랬다. 그런 부분이 잘 맞았다. 안재홍 배우도 이미 감독님과 작업을 해 본 배우였다. 대부분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감독님의 스타일을 충분히 잘 알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팀워크가 정말 잘 맞았다."
이병헌 감독과 함께 했던 '극한직업'은 류승룡을 천만 배우로 등극하게 해 준 네 번째 작품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을 함께하면서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부담감은 서로 전혀 없었다. 이병헌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잘 된 작품들이 이미 있지 않나. '둘이 재밌는 시도를 해보자. 우리끼리 재밌게 만들어보자' 그런 마음들이 컸다. 그런 작품을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류승룡은 이병헌 감독의 페르소나답게 기상천외한 스토리 안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묵직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그 덕에 기상천외한 스토리 속 이병헌 감독표 '말맛' 코미디가 빛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감독님이 원작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다. 기본 골격이 잘되어 있었고, 캐릭터들이 생동감 있게 잘 살아있었다. 자유롭게 열려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코미디적인 부분도 크지만 부성애도 큰 포인트 아니냐. 제작발표회 때도 이야기했었는데, 영화 '테이큰' 주인공처럼 정말로 딸이 '닭강정'으로 변했라고 생각하고 그걸 더 리얼하고 솔직하게, 또 진실되게 연기하려고 했다. (몰입하다 보니까) 이번에는 소품(닭강정)을 먹지 못하겠더라. 본의 아니게 '간헐적 단닭'을 하기도 했다(웃음)."
최근 여러 차례 '은퇴설'에 휩싸일 만큼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안재홍과는 '닭강정'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다. 류승룡은 안재홍과의 호흡에 대해 "신선하고 놀랐다"라고 했다.
"안재홍 배우는 그 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탁월한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궁금한 배우다. 함께한 현장도 정말 좋았다. 좋은 스포츠 경기를 하듯이 뒷맛이 개운했다. 서로 의지도 많이 했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안재홍의 연기를 보고) 자극도 많이 받았다. 정말 훌륭한 배우다."
'닭강정'을 통해 다시 한번 코믹 연기의 한계를 뛰어넘은 류승룡. 하지만 아쉽게도 류승룡표 코미디는 차기작인 영화 '아마존 활명수' 이후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코미디는 계속할 거다.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발굴해 주시는 작가님들이 있고, 그걸 기획하는 제작사와 믿고 투자하시는 분들, 구현해 주는 훌륭한 스태프들이 있다. 그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라에 배우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 다만, 코미디는 찍어둔 작품이 하나 더 있다. 개봉날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후에는 코미디 안식년을 가지려고 한다. '류승룡 코미디 보고 싶은데 왜 안 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잠시 쉬어가려고 한다. 늘 경계에 있다. 새로운 도전을 했을 때의 생경함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같은 모습 때문에 식상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그 미묘한 경계에서 잘 조율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