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말의 바보', 꼭 12부작이었어야 하나요?[OTT리뷰]
- 입력 2024. 05.02. 14:58:23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빠른 호흡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겐 종말 직전의 느긋한 분위기를 따라가기 어려웠던걸까. 분명 디스토피아물인데 긴장감이 없다. 공개 후 국내외 반응까지도 모두 뜨뜻미지근한 상황이다.
'종말의 바보'
지난달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종말의 바보'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D-200,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과 그런데도 끝까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종말의 바보'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
이 작품은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게 된다면?'이라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종말이 선포된 뒤, 세상 속 질서는 이미 무뎌진지 오래다. 탈옥수들은 아이들을 납치해 인신매매를 저질렀고, 돈 있는 부유층들은 한반도를 떠나 안전지대인 외국으로 떠난다.
서울 밖의 도시인 웅천시 주민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앞두고 각자의 방식대로 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중학교 교사인 세경(안은진)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전투근무지원 대대 중대장 인아(김윤혜), 원동성당의 보좌신부 성재(전성우)도 아비규환이 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당초 '종말의 바보'는 지난해 공개 예정이었으나 유아인의 마약 이슈가 불거지면서 공개가 무기한 연기됐다. 이후 약 1년 뒤 결국 유아인 리스크를 떠안은 채 마침내 공개됐다. 이와 관련해 김진민 감독은 제작발표회를 통해 "이 인물을 빼고 가기에는 네 친구라는 축이 있어서 다 뺄 수가 없었다"며 "굉장히 노력을 했고, 스토리텔링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분량을 조정했다. 필요한 부분은 쓸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전한 바 있다.
유아인은 극 중 생명공학연구소 연구인인 하윤상 역을 맡았다. 윤상은 세경과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이자 인아, 성재의 오랜 친구다. 중심 인물 중 하나였기에 유아인을 완벽하게 지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아인 지우기'를 어설프게 시도하면서 이해되지 않는 대목들이 많아졌다. 윤상의 서사만 줄어들면서 개연성은 떨어졌고, 전체적인 서사를 겉핥기 식으로 다뤄 스토리, 인물 등에 몰입하기 어려워졌다.
또 원작에서는 소행성 충돌까지 8년을 예고한 뒤, 3년 남짓 남은 시점을 다룬다. 하지만 드라마는 300일 후 종말을 선포하고, 200일이 남은 시점을 다룬다는 차이가 생겼다. 극적인 전개를 위해 이와 같이 설정을 변경한 듯 하나, 전체적인 드라마는 그리 긴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종말의 바보'는 종말을 맞이한 순간, 각계각층의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인물의 시점 변화가 너무 잦고, 스토리의 전개 시점과 계속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잠깐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스토리를 따라가기 버겁다.
쉽게 말해 과유불급이다. 많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욕심을 부렸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됐다. 너무 많은 서사를 담아내 전개가 늘어졌고, 결국 12부작까지 달하게 된 듯하다. 전체적으로 산만해서 '도대체 종말은 언제쯤 오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믿고 볼만하다. 특히 안은진은 겉보기와 달리 복잡한 내면을 가진 세경 캐릭터에 적합한 캐스팅이었다. 앞서 '연인'에서도 주체적인 길채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강단 있는 연기로 몰입도를 높여줬다. 김윤혜는 지금까지와 다른 이미지로 완벽하게 변신했고, 전성우는 '열혈사제'에 이어 또 보좌신부로 등장해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이 외에 박혁권, 김여진, 박호산, 차화연 등 조연 배우들 역시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정말 배우들의 호연만 남았다. 유아인 리스크를 이겨내고 겨우 공개됐지만,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빈틈 가득했던 '종말의 바보', 12부작은 너무나도 긴 호흡으로 다가온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