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바보' 김진민 감독, 후회 없는 선택 [인터뷰]
입력 2024. 05.17. 10:00:00

김진민 감독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마이네임', '인간 수업' 등 스릴러에 강한 김진민 감독이 잔잔한 디스토피아물로 찾아왔다. 쉽지 않은 대본, 출연 배우의 리스크, 작품 공개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계속됐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해냈다는 점에서 작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D-200,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김진민 감독은 "희한한 디스토피아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안 해본 것 같은데 내가 한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느낌이 있어서 한번 부딪혀 보자는 마음이었다"며 "작가님이 좋은 필력을 가지신 분이라 이런 작품을 기획하고 의도를 했을 때의 이유를 잘 따라가 보면 뭔가 연출로서 얻어지는 게 있을 것 같았다"고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당시를 회상했다.

'종말의 바보'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가운데, 약간의 설정에 차이를 뒀다. 원작에서는 소행성 충돌까지 8년을 예고한 뒤, 3년 남짓 남은 시점을 다루지만 드라마는 300일 후 종말을 선포하고, 200일이 남은 시점이 등장한다. 또한 원작에서는 지구 전체의 종말을 예고했으나 드라마에서는 한반도 일대와 일본이 파괴된다.

"작가님이 설정 자체를 바꾸신 거라서 저도 여쭤봤었다. 원작은 꽤 많은 시간이 남은 상태에서 지구 전체에 종말이 온다는 설정에서 일본의 한 지역 사람들을 토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드라마는 특정한 부분의 타격으로 인해 탈출의 가능성도 있는 설정이다. 처음에 작가님 미팅을 할 때 왜 큰 설정을 바꾸셨냐고 말씀드렸더니 다 죽으면 드라마가 안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대로 가면 남아 있는 사람들의 넋두리 혹은 그 사람들의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게 될 것 같은데, 그걸 가지고 극성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다. 저도 200일 정도면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시간이고, 그 시간이라면 등장인물들의 절실함이 좀 더 잘 드러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설정에 대한 이견은 빨리 사라졌고, 그 안에서 연출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당초 '종말의 바보'는 지난해 공개 예정이었으나 출연 배우 유아인의 마약 이슈가 불거지면서 공개가 무기한 연기됐다. 이후 오랜 기다림 끝에 공개된 것에 대해 김 감독은 "시청자분들이 많이 사랑했던 배우이기 때문에 시청자분들이 굉장히 당황하고 힘들었을 거다. 또 그것 때문에 이 드라마를 안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많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겪어나가면서 감당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러면서 "다행히 그 많은 작품들 중에 유일하게 공개가 된 작품"이라며 "어쨌든 대중들이 만들어주는 장르다. 그래서 시청자분들이 여러 말씀들을 충분히 하실 수 있다. 어떠한 반응이나 질책들은 제가 감당을 해야 하고 또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죄송한 마음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유아인을 캐스팅한 이유로 "안은진이 연기를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상대이면서도 나왔을 때 임팩트가 있는 인물을 원했다"고 전했다. 이어 "유아인이라면 안은진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 욕심을 생겼다. 또 현장에서도 안은진 뿐만 아니라 전성우처럼 많은 신을 만나는 배우들에게 정말 도움을 많이 줬다"고 고마움을 드러내면서 "편집 중에도 정말 캐스팅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가운데 이슈가 발생했다. 같이 했던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고마움이 훨씬 많고, 그에 대한 원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종말의 바보'는 오랜 시간 끝에 겨우 베일을 벗었다. 하지만 극 중 캐릭터들이 많은 공감을 못 사는 점, 12부작이라는 긴 호흡 등으로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먼저, 극을 이끌고 나가는 세경(안은진)은 중학교 교사로, 종말이 예고된 이후에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세경의 남자친구인 윤상(유아인)은 함께 안전한 미국으로 떠나려 하지만, 세경은 끝까지 이를 거부하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남는다. 아이들을 향한 희생정신은 돋보이는 인물이지만, 사실상 세경의 행동과 선택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공감을 얻기 쉽지 않았다.

"세경이는 '이렇게 안 살면 나는 못 살 것 같아'라고 스스로에 대해 충분한 질문을 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도망갈 생각을 접고, 옆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살인도 저지르고, 마지막에는 총을 들고 뛰어든다. 그리고 드라마 내에서는 어쨌든 가장 억울한 죽음이 누굴까 생각하면 어른조차 되지 못하고 죽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희생을 큰 주제로 잡았다고 생각한다. 또 아이들의 선생님인 세경을 왜 주인공으로 했냐고 물으면 미래를 살아볼 기회조차 없는 애들한테 사람들이 가장 공감을 많이 느낄 것 같았다. 특별한 사회적인 이슈가 아니더라도 작가로서의 가장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또한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가 루즈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작가님이 10부작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 2부에서 주요 인물인 네 주인공들의 선택과 나머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며 "그 뒤는 어떤 리듬으로 가야 이 이야기가 전달력을 가질지 고민하고 했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루한 정도는 첫 번째 문제가 아니었고, 어느 정도의 시간으로 해야 이 이야기가 잘 전달이 될지를 생각했다. 컷의 길이, 음악이 들어갈 자리, 그리고 사람들이 감정을 곱씹어 볼 시간에 대한 최절약본이다. 거기다가 유아인 씨 이슈도 있어서 저희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버전"이라면서도 "하지만 지루하거나 혼란스러운 것은 시청자분들의 판단이다. 보시는 분들의 판단은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개를 한 이후에는 각 시청자분들이 각자의 말씀을 해주실 당연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아쉬운 성적을 거뒀지만, '종말의 바보'만이 가진 차별점은 확실했다. 김 감독 역시 '잔잔한 디스토피아물'이라는 장르가 쉽지 않지만 색다른 매력을 주는 것은 맞다고 전했다.

"요즘 드라마의 트렌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색다른 게 없는지 찾는 분들에게는 복잡하면서도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존의 디스토피아물을 기대한다면 허들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디스토피아라고 하면 굉장히 도파민을 도는 장르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도파민에 브레이크를 많이 걸다 보니 보시면서 힘들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 드라마는 조금 다른 재미라서 시청자분들이 이 안에 젖어 들어가는 데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디스토피아물이 생존 투쟁, 히어로물로 가면 설득하기는 쉬울 테다. 하지만 '종말의 바보'는 어떤 사람들의 남은 삶에서 나의 모습을 찾는 부분이 있다. 심오한 철학은 아니지만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니?'와 같은 질문이 분명히 들어가야 했다."

결국 김 감독에게 '종말의 바보'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쉽지 않은 대본부터 출연 배우의 사회적 이슈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계속됐다. 그래서일까. '종말의 바보'가 끝내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에 홀가분한 마음을 드러내는 그였다.

"이 대본은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고민해야 될 게 정말 너무 많았다. 이 고민의 끝이 시청자들에게 연결이 될지 안 될지는 결국 제 손에 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잠도 안 오고 속이 메슥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나중에는 내성이 생겨 계속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고민 자체가 좀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일이 터졌을 때에도 오히려 조금 덤덤했던 것 같다.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다들 각자의 최선을 다했고, 그런 고생들을 제가 다 봐왔기 때문에 기다림의 시간이 언젠가는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끝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와서 정말 감사하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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