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에이트 쇼' 천우희 "역할로 살아 숨 쉬는 배우 되고파"[인터뷰]
입력 2024. 05.27. 07:00:00

천우희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같은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배우한테는 가장 큰 칭찬이지 않을까요? 저는 천우희로 보이기보다는 제가 연기하는 인물로서 살아있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요."

'더 에이트 쇼'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천우희는 도파민만을 추구하는 최상층 '8층' 역할을 맡아 본능과 유희에 충실한 캐릭터를 그려냈다.

"'더 에이트 쇼'를 선택할 당시에는 깊이 생각을 안 했어요. 일단 대본이 재밌었고,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했고. 많은 고민을 거치지 않고 '한번 해보지 뭐'했는데 대본을 읽을수록 쉽지 않은 캐릭터이더라고요. 정말 '모 아니면 도'였던 게 '8층'은 가장 독특한 캐릭터일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일차원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일차원적이면서도 다차원적어야 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죠"

'더 에이트 쇼'는 8명 인물의 구체적인 사연을 배제하고 계층을 부각했다. 오직 쇼 안에서 층수로 표현되는데. 이에 각 인물보다 8명의 앙상블을 맞추는 데 더 큰 노력이 들었다고 전했다. 천우희는 그 균형 속에서 본능적으로 도파민만을 추구하는 '8층'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사실 저는 처음에 대본 보면서 '내가 제대로 놀아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본능, 유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연기 해본 적 없으니까, 머리 풀고 제대로 놀아보자, 생각하고 접근했는데, 이야기를 계속 들여다보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8명 캐릭터 간의 앙상블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8명 각각이 보여주는 게 정확하다 보니까, 인물을 조금은 덜어내야 했어요. 그래서 '이 작품 안에서 최적의 롤은 해내자'라는 주의로 나가게 됐어요."

그렇기에 천우희가 처음에 상상한 '8층'의 이미지와 표현된 '8층'에는 차이가 있다고. 그는 "저는 매사에 무신경한 캐릭터를 생각했어요. 도파민이 충족됐을 때만 관심을 두고, 평소에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천우희는 한재림 감독과 대화를 거듭해 지금의 만화적인 '8층'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사실 아쉬움은 많아요. 그래도 불안했던 요소들을 잘 커버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저는 '8층'을 너무 현실적인 캐릭터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극 중에서 '8층'이 악처럼 보이는데, 너무 현실적으로 보이면 인간성 자체에 의문이 든다고 생각했어요. 제 캐릭터가 미움받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표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시청자가) '저 또라이는 저럴거 같았어' 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야 환기가 될 거로 생각했어요."



'8층'의 서사는 '더 에이트 쇼'가 끝나고 비로소 드러났다. 관심받지 못하는 행위 예술가. 그는 결국 미술관을 부수고 감옥에 가는 말로를 맞이했다. 미술관 앞에서 춤을 추는 '8층'의 입가에 드리운 씁쓸한 미소가 화제가 됐다.

"사람은 결국 인정욕구가 크기 때문에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을 때 아픔이 잘 표현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촬영 중후반까지도 '8층' 서사가 없었어요. 전사가 없다 보니까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도 불안감이 없지 않았죠. '내가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런데 오히려 너무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 어떤 전사를 대입해도 괜찮은 인물이기도 한 것 같아요. 마지막 미소로 '8층' 얘도 불쌍한 인간이구나,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 에이트 쇼'는 사실 2년 전에 촬영됐다. 이에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이로운 사기'와 촬영 기간이 겹쳤는데. 천우희는 당시 체력적 한계를 느꼈다고 회상했다.

"'더 에이트 쇼' 촬영이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이로운 사기'랑 촬영 기간이 겹치면서 체력 소모도 컸고, 심적인 부담도 컸어요. 연기적으로 에너지를 나누어 쓴다는 게 제 성에 안 찼어요. 내가 원하는 만큼, 주어진 역할만큼 책임을 다하면 못 할까 봐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아주 힘들고 나니까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되는 거에 대해 덤덤해지고 인정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내가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인정하게 되면서 나라는 사람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최근 천우희는 출연한 두 작품이 동시에 공개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JTBC 주말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 결혼 사기꾼 도다해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바. 도다해는 '더 에이트 쇼' 속 '8층'과는 달리 화재 트라우마를 지닌 어두운 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시간여행을 하는 복귀주(장기용)와 핑크빛 기류를 그려가고 있다.

"감사하죠. 저는 제가 맡은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나름 잘해왔다고 자신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호응이 좋아서 감사한 일이에요. 이번에 두 작품이 비교되면서 극대화된 것 같아요. 앞으로 무슨 역할을 맡든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힘을 얻어요. 두 작품이 정말 다른 작품이고 다른 인물인데, 둘 다 반응이 좋아서 행복해요."



당초 천우희는 '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를 가졌다. 상업 영화 '써니' 상미, '곡성' 무명을 비롯해 독립영화 '한공주' 한공주, '메기' 메기 등 다양한 장르에서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드라마 '이로운 사기'에 이어 '히어로는 아닙니다만'까지 복합적인 감정을 요구하는 작품에 도전해 '어려운 역할만 하는 배우'라는 평까지 듣고 있다.

"저는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내는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고통을 이겨냈을 때 성장할 수 있잖아요. 편안한 길을 가면 수월하고 즐거울 수 있지만, 좌절하고 깨지고 힘들더라도, 이겨냈을 때 얻어지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스스로 미흡하고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어려운 미션을 이뤄갈 때마다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 '나는 강인한 인간이구나' 받아들일 때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연기를 계속 하는 이유도 같아요."

이러한 천우희도 번아웃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 시간을 통해 배우로서 더 발전하기 위해 일상을 잘 꾸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정말 연기만 했어요. 연기를 하는게 즐겁고 재밌어서 거기 빠져서 막 그것만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에게 실망도 하고 자책도 했어요. 외부적인 상황도 겹치면서 그런 순간이 딱 오더라고요. 모든 의욕을 잃고 힘이 빠졌을 때, 저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배우는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해야 하는 직업인데, 내가 잘 살고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때부터 여행도 가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있어요. 오히려 그러면서 받는 에너지가 있더라고요. 성숙해지려고 했구나, 좋게 생각해요"

어느덧 연기 인생 20년을 맞이한 천우희. 마지막으로 20주년 소감을 전했다.

"20주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저는 장인에 대한 리스펙이 있어요. 장인이라는 게 직업적으로도 그렇지만 어떤 루틴을 가지고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연기를 20년 했다고 하니까, 진득하니 하는 건 하나 있구나 싶어요. 길을 잘 찾았구나 싶기도 해요. 마음으로는 평생 연기를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안 해 본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요. 잘할 수 있다는 자신도 있고 책임감도 있어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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