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에이트 쇼' 문정희 "5층=비겁한 인물, 사랑스러움 못 느꼈다" [인터뷰]
- 입력 2024. 06.11. 08:00: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처음 봤을 때는 착하기만 한 캐릭터인줄 알았다. 가만 들여다 보니 어딘가 어색하고 과하다. 켜켜이 쌓은 연기 내공으로 문정희는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오지랖 넓은 5층을 완성했다.
문정희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감독 한재림)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런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문정희는 극 중 5층 참가자를 연기했다.
5층은 연기 경력이 긴 문정희에게도 도전이었다. '불쾌함'. 문정희가 5층에게서 처음 느낀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어려웠어요. 5층 캐릭터가 사랑스럽지 않았거든요. 그런 사람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요. 진짜 평화주의자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현실에 분명히 있는 캐릭터에요. 제 마음속에도 그런 부분이 약간 있다고 생각하고 저 자신을 돌아봤죠."
문정희가 생각했을 때 5층은 평화주의자가 아닌 비겁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해석한 5층의 모습을 자신과 연관시키며 접근점을 찾아갔다.
"제 생각에 5층은 비겁한 사람이에요. 쇼가 진행되면서 위층과 아래층이 점점 분리되는데, 5층은 중간에서 능동적으로 조화를 이루려는 사람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이지 않아요. 계단을 뛰어야 하는데 안 뛰고, 배변 봉투를 받아야 하는데 안 받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이럴 수 있지. 나와 이 사람은 분리되지 않았구나. 현실적인 사람이구나'하고 5층에 대한 애착이 조금 더 생겼어요."
한재림 감독과 5층 캐릭터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문정희는 한재림 감독이 5층의 에너지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디렉팅을 줬다고 얘기했다.
"더 에너지를 작게 가져가자는 디렉션을 초반에 많이 주셨어요. 처음에는 제 에너지랑 너무 다른 캐릭터라 힘들었죠. 그런데 5층은 7부 이후 6층한테 가위를 들기까지 에너지를 쌓아야 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이 여자 뭔가 있을 것 같은데, 하고 들여다보면 보이는 에너지였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많이 드러내지 않고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성적으로도 억눌린 사람이라고 생각했고요. 곳곳에 숨어두긴 했지만, 그런 억눌린 욕망이 삐쭉삐쭉 튀어나와서 환청을 듣고 환각을 보고, 결국 혁명을 거스르는 캐릭터인 거예요."
가장 임팩트 있었던 장면은 5층이 혁명을 망치는 장면이었는데. 문정희는 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6부 엔딩을 새벽에 찍었어요. 한 2시 넘어서 찍었는데, 같이 혼미하더라고요. 눈물은 나고, 뭘 하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날 안는 게 위로가 되는 거예요. 내가 위로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6층을 풀어줬는데, 일어나니까 혁명이 끝나고, 이렇게 되는 이 여자의 환상이 흥미롭더라고요. 5층을 가장 잘 대변하는 장면이었고 개인적으로도 그 목표를 향해 계속 갔던 것 같아요."
'더 에이트 쇼' 촬영은 밀폐된 세트장에서 진행됐다. 배우들은 6개월 동안 세트장 근처의 숙소에서 지내며 합숙 생활을 했다고. 연기에 몰입하기에 좋은 환경이었지만, 후반부 작품이 무거워지면서 심리적 부담도 커졌다고 전했다.
"저희끼리도 종종 층으로 불렀어요. 그게 좋은 기분은 아니에요. 한 4화쯤 넘어가면 위층 아래층 분리가 되는데, 그때 촬영할 때도 실제로 공포로 다가오더라고요. 촬영하러 가면 부담이 느껴졌어요. 전반부에는 8명이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면, 8층의 폭압적인 색이 나오고 저는 되게 불편했어요. 스스로 쇼의 시청자에게 도파민을 주기 위해 계급을 나누고 하는 면에서 스트레스나 압박감이 있었어요. 그걸 그대로 갖고 현장에 임하고 있어서 그런지 첫 컷에 많이 오케이가 됐어요."
'더 에이트 쇼'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문정희는 스스로 작품의 어떤 포인트가 호일지, 불호일지 생각해 보았다고.
"당연히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편안하고 즐거운 드라마는 아니잖아요. '더 에이트 쇼'는 불편함 속에서 웃을 수 있는 블랙 코미디에요. 한국에서 블랙 코미디 잘된 사례가 잘 없잖아요. 충분히 호불호 생길 거로 생각했고 저도 어느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지 생각해 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장면은 자유롭게 연기했던 부분인 것 같아요. 잔혹한 부분이 있지만, 웃기는 부분도 있잖아요. 작품을 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게 호라고 생각해요. 다르게 보면 폭압적인 게임이 불편할 수 있죠. 저희도 감독님께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었어요. 감독님께서 '현실은 이것보다 더하다. 불편하더라도 한번은 가야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런 의미에서 불호지 않을까요?"
요즘 '작품 기근'을 고백하는 배우들이 많아졌다. 문정희 역시 이에 대해 공감했다. 그러나 시대를 탓하지는 않는다. 담담히 좋은 작품이 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작품 기근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현실이 이렇다고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열심히 그다음을 준비해야죠. 저는 좋은 작품을 만나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저희 어머니가 저한테 '나는 전쟁 세대였어. 그때 도망 다니느라 뭘 못했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시대에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을 돌파할 기회를 스스로 모색하는 게 저한테 좋은 에너지가 될 거로 생각해요. 저 스스로 연기를 하다 보면 제 삶이 반영되는 게 느껴져요. 체력도 들어가고, 무드도 들어가고. 지금은 글도 쓰고 20년 만에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원안자로서 공연을 올릴 예정이에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