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용 감독 “‘원더랜드’는 인공지능 리얼리즘 영화” [인터뷰]
- 입력 2024. 06.11. 09: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단편영화부터 영화제 트레일러, 복합영화공연 등 다양한 행보를 이어오던 김태용 감독이 오랜만에 장편영화로 돌아왔다. 자신의 삶과 소중한 인연을 되돌아보는 기회와 함께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한 스푼까지. 역시 ‘감성 장인’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인터뷰
“계기가 정확히 생각나진 않는데 2016년 정도? 그리워하는 사람을 구현해서 같이 살아있는 것처럼 통화해보면 어떨까, 그런 이야기를 탕 배우에게 했어요. 너무 (영상통화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한참을 생각해보니 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리워한다는 게 가장 큰 욕망인데 이와 관련된 기술이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우리는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게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이야기를 나눴죠. 영상통화를 끊고 나면 가끔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특히 코로나19 때는 영상통화, 화상 등을 많이 했으니까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고. 만남이라는 게 실체적인 만남과 가상의 만남이 헷갈리기 시작하면서 가족도 확장되고, 만남도 확장되는 다양한 케이스를 영화로 해보자 싶어 만들게 됐어요.”
김태용 감독은 각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내 보는 이들이 ‘원더랜드’라는 가상세계를 가까운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도록 설계해갔다. 어쩌면 조금 낯설 수 있는 소재와 시나리오임에도 현실이란 땅에 발을 내딛도록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인공지능이 터미네이터처럼 공격하거나 싸워야하는 대상으로 익숙했어요. 우리 삶의 일부가 될 거라 생각을 안 했던 시기였죠. 그런데 생각보다 금방 올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인공지능을 가지고 우리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타인과의 관계로 인공지능을 인격화시켜 사랑하는 사람을 복원해서 계속 살리고 있다면?’ 이런 과정이 조금 떠 있는 이야기고, 관념적이라 과학기술의 속도와 잘 맞아야 했어요. VR을 쓰고 들어가는 것도 언젠가 가능하지만 영상통화를 중심으로 움직여보자 싶더라고요. 땅에 붙은 이야기로 보이기 위해 과학기술 자문을 많이 받았어요.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영화적 상상력을 표현하기 위해 데이터 화면이 숫자, 문자, 기호인데 입자로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연구가 되어 있으니 물리적인 물성 같은 걸 데이터로 이해하는 영화적 상상력을 써보자 싶었죠. 우리 영화만이 가지는 데이터는 물성 있는 입자거든요. 과학기술이 새로우면서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과학기술 안에서 움직여 인공지능 리얼리즘 같은 영화로 느껴졌으면 했어요.”
영화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가 보편화된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원더랜드’에 접속한다. ‘원더랜드’는 삶과 죽음 사이,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마주한 인물들이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섬세하게 담아낸다. 삶, 죽음, 현실과 사후세계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제일 궁금한 세상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아 죽는다는 게 뭔지 궁금했죠. 우리가 떠나보낸 사람이 있잖아요. 죽음 이후 죄와 벌을 나누는 게 아닌, 결국 살아있는 사람을 위안하는 거니까요. 남은 사람들, 떠날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식인데 AI라는 기술도 우리의 욕망을 계속 대변하면서 기술 발전, 상품화가 될 텐데 이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 계속 발전해가는 방식이 못 헤어지게 하고, 두려움을 없애려 하는 것 같아요. 진짜, 가짜가 아닌 믿음이 중요한 거라면 그쪽 세계를 ‘원더랜드’라고 하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 ‘원더랜드 서비스’라 한 이유도 세계를 연결시켜준다는 느낌으로 한 거예요.”
가슴을 울리는 상상력, 공감을 자극하는 스토리는 물론,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도 눈길을 끈다. ‘원더랜드’는 탕웨이부터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그리고 특별출연 공유까지 배우들의 캐스팅 소식은 일찌감치 관객들의 관심을 모은 바.
“다양한 캐릭터들이 시너지가 됐으면 했어요. 각자 받아들이는 태도가 파편화된 에피소드이기에 각 배우마다 존재감이 있어야 했죠. 존재감이 다 큰 배우들이 들어와 상생하기도 하고, 나쁜 의미로 충돌하기도 했어요. 시너지가 에피소드에 있다고 생각했죠. 그 작전 안에서 존재감이 있는 배우들을 찾아야 했어요. 정유미는 ‘가족의 탄생’ 이후 10년 만났어요. 연결감이 개인적으로 있었죠. 진실성이라고 해야 할까. 분량은 작더라도 기계한테 진짜 엄마라고 할 수 있는 진실성, 그게 다른 에피소드의 결과이기도 했고요. 탕웨이는 처음부터 캐스팅한 건 아니었어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제안하지 않았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외국 배우가 맡아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탕웨이가 출연한 ‘만추’나 ‘헤어질 결심’은 외국 사람이라는 게 핵심이잖아요. 그러나 저희는 외국 사람이 핵심은 아니기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가족 관계라고 캐스팅이 쉬운 건 아니에요. 설명도 해야 하고, 어려움이 있죠.”
앞서 김태용 감독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관계를 유쾌하고 담백하게 풀어내 ‘가족의 탄생’으로 선보였다. ‘가족의 탄생’이 ‘밥상’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가깝고도 먼 존재인 가족의 의미를 들여다봤다면 ‘원더랜드’는 함께한 ‘시간’을 중심으로 멀리 있지만 가까운 존재, 가족의 의미를 되짚는다.
“제작사 대표님도 시나리오를 보시더니 ‘SF 가족의 탄생 같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주제를 담기보다 다양한 케이스를 통해 확장되는 걸 좋아해요. ‘가족의 탄생’ 같은 느낌이 있다면 관계가 AI까지 들어온 세상에서 우리 관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저희 어머니가 로봇청소기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얘기하시는 것처럼요.”
죽음과 영원한 이별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머지않은,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무엇일까. ‘원더랜드’는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까지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김태용 감독은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라고 소망했다.
“저는 여운이 있는 영화들을 좋아해요. 영화관을 나오고 나서도 계속 그 인물들이 떠오르고, ‘선택이 옳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그런 선택을 한 배경은 무엇일까’라며 인물들의 선택에 대한 영화를 좋아하더라고요. 우리 영화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허무맹랑한 얘기라도 인물들은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면 하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