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동산' 전도연, 두려움과 설렘 그 사이 [인터뷰]
입력 2024. 06.14. 15:11:00

전도연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카메라 앞과 달리 무대에서는 작은 실수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배우로서는 리스크가 클 수 밖에 없는 무대, 그곳에 '대한민국 대표 배우' 전도연이 올랐다. 이미 연기로는 충분한 인정을 받은 그가 27년 만에 다시 연극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도연은 지난 4일을 시작으로 연극 '벚꽃동산'(연출 사이먼 스톤)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고전을 현대 한국사회 배경으로 재창작한 연극으로,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송도영(전도연)이 서울로 돌아온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일주일 간 공연을 마친 전도연은 "무대가 익숙하다기보다는 적응해 나가는 중인 것 같다. 아마 공연 끝날 때까지 그럴 것 같다. 무대에서의 익숙함은 앞으로도 저한테는 없을 것 같고, 이로 인해 불안한 건 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조금씩 즐기고 있는 것 같다"고 무대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무엇보다 '벚꽃동산'은 전도연의 무대 복귀작으로 개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전도연은 "그동안 연극 제의는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영화든 드라마든 무겁고 어두운 작품들을 많이 해서 연극에서는 저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면서 "아쉽게도 제안이 들어왔던 것들은 다 어둡고 재미가 없었다. 너무 무겁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더라. 적어도 제가 참여하려면 그 전에 내가 뭘 하는지는 알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고사했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렇다면 수많은 작품 중에서 '벚꽃동산'을 무대 복귀작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도연은 "'벚꽃동산' 원작을 읽었는데, 사실 재미없게 느껴져서 거절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이먼 스톤이 연출한 '메디아'를 국립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봤는데 무대 위의 배우들이 부러웠다. 저도 배우다 보니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으로 피가 끓는 기분이 들었다. 그 무대를 보고 사이먼 연출가의 무대가 궁금해져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고 전했다.



전도연이 연기한 송도영은 원작의 여주인공 '류바'를 재해석한 캐릭터다. 도영은 가족들과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아름다운 저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도 두 딸의 연애 상대와 썸을 타고 키스한다. 또 대책 없이 술과 남자에 중독돼 있다.

극 중 도영의 행동들을 사실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다. 전도연 역시 자신이 연기하는 도영을 처음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송도영은 누구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저도 이렇게까지 괜찮을까 라는 생각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나의 상처와 고통, 아픔을 딸에게 고스란히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것이 제일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엄마라면 그런 아픔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고 나와는 다르게 살기를 바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 자식들이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알게 된다. 송도영은 그게 단편적으로 한 번에 보여서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겪게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전도연에게 당황스러웠던 도영은 사실 그의 본래 성격이 녹여져 있는 캐릭터였다. 사이먼 스톤은 본격적인 연습에 앞서 일주일 동안 워크숍을 진행해 캐릭터를 구성하고 대본을 집필했다.

"사실 워크샵 일주일 내내 막말 대잔치였다. 사실 저는 당황스러워서 제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했다. 시나리오를 두고 배우끼리 토론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책을 다시 읽고서 원작의 루바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작은 변화를 두려워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저와 닮아 있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탄생한 송도영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당신은 세월을 비껴가지 못했군요. 나는 비껴간 것 같은데"와 같은 대사를 던져도 마냥 밉지만은 않은 인물. 연출가가 각 배우들을 녹여내 만들었던 만큼, 송도영 역시 전도연이라서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됐다.

"정말 낯 뜨겁긴 한데 '벚꽃동산'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사이먼이 날 정말 사랑스럽게 봤구나' 생각했다. 사이먼이 '대본이 늦게 나와도 스트레스 받지 마라. 너희들을 투영했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질 거다'라고 말했는데, 막상 대본을 받고 나선 '도대체 나에게서 어떤 모습을 봤길래 이런 대본이 나왔지?' 싶었다. 사이먼은 송도영이 사랑스러움으로 납득되는 캐릭터로 보이길 바랐던 것 같다."



그동안 영화, 드라마를 통해 인정 받았던 전도연은 '벚꽃동산'에서도 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칭찬에 대해서도 정작 전도연은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연기를 잘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저는 잘하는 걸 뽐내고 싶어서 연기를 하는 건 아니었다. 어릴 땐 내가 잘하는 것도 보이고 싶고, 수상하면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 것 같았지만, 그런 시간을 겪으면서 이제는 '내가 이 작품을 받아들인 만큼 관객들에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사실 제가 연기를 잘하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면 무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무대는 중간에 제가 실수를 해도 누가 끊어주지 않고, 그걸 가려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저를 온전히 무대에, 관객들 앞에 내던져야 된다. 어떻게 보면 이건 조금 더 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그런 시간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전도연에게 오랜만에 도전한 극 연기는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는 잘한 모습만 편집해서 나오지만, 연극은 내가 무엇을 하든 관객에게 온전히 보여서 굉장히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도 "연기에만 집중하고 잘할 수 있게 환경을 너무 잘 만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다. 그래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계속한다. 사이먼도 늘 '도연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하면서 무대를 만들어줬다. 정말 감사함이 많은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갖고 있던 갈증이 잘 해소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대에서 함께 연기하는 순간은 정말 즐겁다. 물론 연기를, 일을 좋아하지만 순간순간을 무대에서 즐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벚꽃동산'은 오는 7월 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다. 약 3주 동안의 공연을 남겨두고 있는 전도연은 "아직까지는 관객분들의 눈을 못 보고 있는데, 꼭 마지막이 아니어도 눈을 맞출 수 있는 용기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배우들과 연습을 하면서 정말 끈끈한 관계가 됐는데 매일같이 '오늘 공연이 마지막 무대인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아직까지 마지막 공연이 어떨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열심히 체력 관리를 하면서 잘 마치려 한다"고 전했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Studio AL, LG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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