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빵야', 이 작품을 꼭 봐야 하는 이유 [무대 SHOUT]
입력 2024. 07.02. 15:24:26

'빵야'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나는 이야기를 잘 안 해. 끔찍하잖아."

1945년, 근대와 현대의 경계선으로 여겨지는 그 해에 탄생한 장총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일본군의 주력 소총이었던 아리사카 99식 소총. 이 작품에서는 총을 의인화해 주인공 '빵야'로 등장시킨다.

연극 '빵야'는 드라마 작가 '나나'와 1945년 인천에서 생산된 일본군 99식 소총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해 1~2월에 초연을 마치고, 올해 6월 예스24아트원에서 재연을 개막했다.

한물간 드라마 작가 나나는 드라마 소재를 찾던 중, 소품창고에서 99식 소총 한 자루를 발견한다. 나나는 소총에 '빵야'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1945년 탄생한 빵야는 일본 관동군 장교인 '기무라'를 첫 주인으로 맞게 된다. 이후 일본군 조선인 병사, 중국팔로군, 제주도 국방경비대, 서북청년단, 남한 학도병, 북한 인민군, 토벌대, 돌격대 빨치산 소녀까지, 빵야는 영화 소품창고에 머무르기까지 지나온 기나긴 여정을 이야기한다.



'빵야'는 정말 역동적인 연극이다. 9명의 배우들이 무대에서 쉴 새 없이 등장인물들의 삶을 그려낸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해도 다른 배우들은 무대 뒤로 빠지지 않고 다 같이 열을 맞춰 군가를 부르고 동료가 되어준다. 또 계속해서 총을 쏘고, 총에 맞아 쓰러진다. 배우들이 힘을 합쳐 무대를 꽉 채워주면서 각 에피소드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상황을 서술하는 빵야와 나나의 티키타카도 돋보인다. 빵야의 일대기는 주로 두 사람이 짧게 떨어지는 대사들을 계속 주고 받으면서 설명된다. 많은 양의 대사를 빠른 속도감으로 주고 받아 배우들의 연습량과 호흡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음악, 조명 등 세밀한 연출도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특히 장총 주인마다 등장 음악의 악기가 달라지는 포인트, 또 각 에피소드에 걸맞은 물건에 조명이 쏘아지는 포인트 등이 인상적이다.



'빵야'는 9명의 배우들이 모두 공평하게 힘들다. 장총의 주인이었던 이들은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가 되는 등 계속해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로 인해 9명의 배우들이 모두 빛나는 극이 됐다.

빵야 역은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들이 캐스팅돼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박성훈, 박정원, 전성우, 홍승안은 모두 다른 느낌의 장총을 연기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특히 전성우는 빵야의 여정을 풀어나가며 점점 변화하는 감정을 잘 표현하고, 홍승안은 장총의 주인, 나나에게 주는 다정함과 따뜻함이 잘 느껴져 눈길을 끌었다.

또한 나나 역의 이진희, 전성민, 김국희 역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나나는 빵야의 일대기 뿐만 아니라 독백까지 더해져 유달리 대사가 많은 캐릭터다. 쉽지 않은 대사량에도 불구하고, 극의 긴장감을 더하고 빼는 역할까지 완벽히 해냈다.

이번 '빵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는 제작자와 원교 역할을 해냈던 허영손이다. 제작자는 나나가 계속해서 만나야 하는 감독으로, 극 초반부터 후반까지 계속해서 등장하는 역할 중 하나다. 허영손은 안정적인 발성에 생활 연기를 더해 많은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면서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어떻게 하면 은하수를 끌어와서 무기를 씻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빵야'가 좋았던 것은 역사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소한 웃음 포인트를 넣으면서도 비극적인 현대사를 하나하나 짚어준다. 또 장총의 주인으로도 선인과 악인이 모두 등장해 현실감까지 더했다.

'빵야'가 누구나 한 번쯤 봐야 할 법한 극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 연극은 역사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 편성을 받기 위해 잘 팔리는 글을 써야만 하는 나나의 고민은 결국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며 거듭해야 할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한편 연극 '빵야'는 예스24아트원 1관에서 오는 9월 8일까지 공연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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