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가 J팝? 사대주의적 발상?
입력 2024. 07.04. 16:22:19
[유진모 칼럼] 걸 그룹 뉴진스를 둘러싼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아일릿이 뉴진스를 표절했다.'라며 하이브를 향해 날을 세운 것이 뉴진스의 컴백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우려를 낳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컴백 행보는 매우 순조로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들의 일본 진출 음반이 J팝으로 분류되며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일 세계일보는 "뉴진스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일본 데뷔 앨범 'Supernatural'이 네이버 바이브와 애플 뮤직 등 주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 J팝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보도했다.

또 이에 대해 어도어 측으로부터 “일본 음악 방송 활동을 위해서 일본 음반을 낸 것이고, 더 많은 팬이 쉽게 접근하기 위해 글로벌 유통을 선택한 것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유통이 다변화되고 콘텐츠가 빠르게 전파되는 환경에서 J팝과 K팝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들었다고 곁들였다.

과연 그럴까?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분위기이다. 역시 하이브 산하 빅히트 뮤직 소속 보이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0년 발표한 음반 ‘다이너마이트(Dynamite)’는 모든 가사가 영어로 돼 있지만 애플 뮤직 등에 K팝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들이 일본에서 2016년 발표한 음반 ‘유스(YOUTH)’, 2020년 발매한 음반 ‘맵 오브 더 솔 : 7 ∼ 더 저니 ∼(MAP OF THE SOUL : 7 ~ THE JOURNEY ~)’ 등은 수록곡들이 일본어로 되어 있음에도 K팝으로 분류되어 있다.

앨범이나 노래의 소속 구분은 가수의 소속사가 정해 음반·음원 유통사에 표기를 요청함에 따른다. 즉 뉴진스의 '슈퍼내추럴'이 J팝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은 어도어가 그렇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전례에 따르면 일부 K팝 가수들이 일본에서 앨범을 발표할 때 가사가 일본어로 이루어져 있을 경우 구분을 J팝으로 분류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한국어나 영어 가사를 사용하면서 굳이 그런 경우는 매우 보기 드문 케이스이다.

그렇다면 '슈퍼내추럴'의 가사는 어떤가. 타이틀 곡 ‘슈퍼내추럴’과 다른 수록 곡 ‘Right Now’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어가 섞여 있기는 하지만 영어와 한국어에 비해 비중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Right Now' 뮤직비디오는 “주말에 뭐 해?”, “같이 영화 보는 건 어때?”라고 스마트폰을 통해 한국어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언니, 지금 안 보내면 후회해요.”라는 한국어 대화 장면이 들어 있어 당연히 K팝 뮤직비디오를 보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어도어가 스스로 J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해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일본 활동을 위해 일본에서 음반을 냈다.'이다. 둘째, 더 많은 팬의 접근을 위해 글로벌 유통을 선택했다. 셋째, 글로벌 시대에 J팝과 K팝의 분류는 무의미하다.

첫째는 100번 지당하다. 일본에서 활동하기 위해 일본용 음반을 만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영어, 한국어, 일본어를 섞었다. 일본은 물론 전 세계 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이다. 쉽게 이야기해 전 세계에 팔아먹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아주 적확한 설명이다. 둘째는 팩트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내용이라 패스.

그러나 셋째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 그 주장이 맞는다면 다른 모든 K팝 가수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음반을 각 나라에 맞게 분류해야 할 것이다. 현재 외관상 그냥 팝이라고 하면 미국의 대중음악을 말하고, 나머지는 크게 영국의 브릿 팝, 한국의 K팝, 일본의 J팝 정도로 분류되고 있다. 어도어 논리에 따른다면 글로벌한 음반을 낼 때는 그냥 팝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나머지는 해당 국가에 맞추면 된다.

17세기 신대륙으로 이주한 유럽인들이 포크 음악에 현지의 토속 음악을 뒤섞어 컨트리앤드웨스턴을 만들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온 흑인들이 블루스와 재즈를 만들면서 현대 대중음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블루스는 리듬앤드블루스로 변전하고 컨트리앤드웨스턴과 혼합해 로큰롤로 발전했다.

이후 영국이 이를 받아들였다가 미국에 역수출되면서 파퓰러 뮤직, 혹은 팝 음악이라고 하면 미국과 영국의 대중음악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후 이지 리스팅 계열 등 다소 가벼운 음악 장르를 따로 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있지만 큰 그림으로 볼 때 팝이라고 하면 미국 혹은 미국과 영국의 대중음악을 말한다.



20세기 말에 일본이 세계적으로 팝을 크게 유행시키며 J팝이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현재 대한민국이 K팝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만든 가수와 음악을 단지 일본에서 발표했고, 일본어 가사 몇 개 삽입했다고 J팝으로 분류하는 것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일본 여가수 사카모토 큐는 1963년 '스키야키'라는 곡을 빌보드 100 1위에 올려 '동양 가수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0세기 일본은 이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J팝이 전 세계에 유행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준 것이다.

가수가 누구든, 가사나 멜로디가 어떻든, 스태프가 누구든 한국의 연예 기획사가 주축이 되어 기획하고 제작하면 모두 K팝으로 분류된다. 만약 어도어의 논리대로라면 5명의 멤버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된 걸 그룹 블랙스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멤버 중 인도인 스리야의 현지 인기가 높고 그래서 외국 활동 중 인도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 그들은 그렇다면 I팝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들은 K팝이고, 한국 걸 그룹으로 분류된다. 아니, 그들 스스로 그렇게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625전쟁 등의 트라우마 탓에 사대주의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크다. 특히 친일파 매국노에 대해서는 전율 그 이상의 배타적 감정을 지니고 있다. 일본 혹은 일본 문화라고 해서 무작정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음에도 필요 이상으로 거리를 두려 하는 배경이다.

물론 뉴진스의 J팝 분류는 뉴진스 멤버들이 스스로 알아서 한 게 아니라 어도어의 결정이고, 대표의 의지였을 것이다. 뉴진스, 아니 어도어는 스스로 '글로벌'을 외쳤고 사실 모든 K팝 가수들은 전 세계의 팬들을 대상으로 활동한다. 일본 팬들이 강력하게 원한 것도 아닌데 굳이 J팝이라는 정체성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혹시 사대주의적 발상은 아닌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는 없을까?

[유진모 칼럼 / 사진=셀럽미디어DB, 어도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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